'77만원 세대', '삼포 세대'라는 말을 듣는 요즘 청년들은 그들의 돈을 어디에 쓸까요? '2030의 지갑' 기획은 청년들의 새로운 소비 형태와 이로 인해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편집자말] |
편의점을 훑어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출근길에 편의점에서 우유나 커피 혹은 탄산수를 산다. 배가 고프면 초콜릿이나 견과류를 구입한다. 딱히 선호하는 상품은 없고, 그때그때 사고 싶은 걸 사는데, 대체로 '1+1 상품'을 산다. 특정한 브랜드의 음식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면, 1+1 상품을 외면하고 굳이 다른 걸 사기가 힘들다.
부모님을 비롯한 중장년층은 '편의점은 비싸다'라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개별 상품의 가격은 대형마트는 물론 중대형 마트보다 훨씬 비싸다. 그런데 1+1에 통신사 할인, 카드 할인 등이 적용되면 대형마트보다도 값싸게 상품을 살 수 있다. 취업을 준비할 때는 '돈이 없어서', 직장을 가지고 난 뒤에는 '합리적 소비'라는 명분으로 1+1상품을 줄곧 사 왔다.
1+1상품의 구입은 왠지 모를 안도감을 준다. 엥겔지수(가계 소비지출 총액에서 식생활비가 차지하는 비율)가 유난히 높은 나로서는 1+1 혹은 '햄버거를 사면 음료수를 드립니다' 같은 '덤'이 붙어있어야 그나마 무언가를 살 때 죄책감을 덜 느꼈다. 비록 계획에 없었던 신상품 과자를 사더라도, 1+1이라면 '싸게 샀다'며 정당화할 수 있었다. 식욕이 넘쳐서 먹고 싶은 것은 많고, 돈은 한정되어 있고, 대형마트까지 가는 길은 먼 상황에서 나름의 절약방법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 '1+1'
나와 같은 2030 청년들이 편의점 이용객의 절반 이상 (54%, 2016년 CU멤버십 조사 기준)이며, <대학내일>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25세~35세는 1주일에 평균 3.9회 편의점에 간다. 편의점에서의 소비는 나를 포함한 청년들에게 일상적이면서 가장 빈번한 소비다. 어느새 편의점만 가면 먼저 1+1이 어디 있는지 훑어보는 나를 보며, 다른 청년들도 나처럼 1+1 상품을 선호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트위터를 통해 누리꾼들에게 '2030인 당신은 비슷한 품질의 편의점 1+1 상품과 원래 구매하던 상품 중 어떤 것을 살 것이냐'는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응답한 113명 중 77%가 1+1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신뢰할 만한 설문조사는 아니겠지만, 실제로 1+1 상품을 사려고 보면 이미 동이 난 경우가 많았던 경험까지 감안한다면 청년들이 1+1 상품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2015년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1+1' 상품의 경우 약 160%의 매출 신장을 보였다고(미니스톱 기준)한다. 확실히 잘 팔린다는 것이다.
전상인의 <편의점 사회학>에서는 "우리는 편의점에 의해 소비하는 인간으로 길든다. 필요에 의해 편의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에 의해 필요가 생긴다"고 말한다. 청년들은 굳이 두 개씩이나 필요없음에도, 1+1 구성의 상품을 택한다. 그것이 요즘 말로 '개이득'이기 때문이다.
'가성비' 따지는 소비에 익숙해진 청년들
신림동 고시촌에 사는 취업준비생 A(남, 29)씨는 1주일에 세 번쯤 편의점에 간다. "하나 사면 '덤'을 주는 샌드위치나 삼각김밥을 산다. 혹은 1+1으로 초코바나 초콜릿을 구입한다. 너무 빨리 팔려서 없어서 못 살때가 많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무언가를 사면 얼마나 배가 채워질 수 있느냐를 따진다. 물론 나도 편의점 음식 중에서도 할인 안 하는 비싼 것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사기엔 왠지 불안하다. 그런걸 사면 나중에 돈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중산층 청년들은 1+1을 살 때도, 맛이나 품질 등 질적인 것을 고려해서 결정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지갑 사정'은 1+1을 고르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A씨뿐만 아니라 1+1상품을 자주 산다는 청년 10명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그들에게는 공통된 의견이 있었다. "돈이 충분하지 않으니까 1+1을 고를 뿐, 돈이 많으면 좋아하는 상품이 우선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상품 별로 다르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B(여, 31)씨는 "엄청 좋아하는 상품은 1+1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산다. 이를테면 나에게는 '맥스봉' 같은 경우다. 그런데 음료수 같은 경우에는 딱히 선호하는 게 없어서 그냥 1+1 상품을 산다"고 말했다. C(여, 29)씨는 "탄산수나 초콜릿 등은 1+1 상품이 많이 나오고, 신상품일 경우에도 호기심 때문에 산다. 하지만 렌즈보존액이나 생리대같이 원래 쓰던 브랜드가 명확한 경우는 굳이 1+1을 사지 않는다"고 밝혔다.
직장이나 친구들끼리 있을 때 주로 1+1이나 2+1을 고른다는 경우가 많았다. "다 같이 있을때 1+1 음료수를 많이 사먹는다" "자취를 동생과 함께 하므로 나눠먹으면 좋다. 각각 다른 맛이 교차구매가 가능한 경우 두 가지 맛으로 먹을 수 있으니까" "원플원 혼자 먹을 땐 잘 안 사게 된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청년들 입장에서 2+1상품은 크게 구매 욕구를 자극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요즘 2+1이 늘어나고 있는데, 가져가다 보면 짐스럽다" "비효율적이다" "3개나 같은 걸 먹다 보면 질린다" "좋아하는 상품 아니면 2+1은 안 고른다" 등의 의견이 주를 이뤘다.
청년에겐 더 많은 선택지가 필요하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나는 어느 새부터인가 코카콜라 대신 펩시를, 칠성사이다 대신 스프라이트를 먹었다. 그건 내가 특별히 의도하는 바는 아니었고, 그저 펩시와 스프라이트가 1+1 상품으로 자주 나왔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다이어트를 위해 '코카콜라 제로'를 먹었을 때, 우습게도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다. 1300원짜리 코카콜라를 사먹을 돈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1+1 펩시도 그럭저럭 먹을만하니, 근 몇년간 편의점에서 코카콜라를 사먹어본 적이 없었다.
절대빈곤을 겪는 청년은 없으나,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청년은 많아진다. 소비를 통해 느끼는 '불안감'이 상대적 빈곤의 척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불안감이 적을수록 '가성비'보다는 무언가를 사는 데서 오는 만족감 자체를 중시하게 된다. 불안감이 클수록 소비를 안 하거나 '가성비'에 몰두한다. "이거 행사 상품(1+1)인가요"라고 물어보고, 맞다고 하면 진열대로 뛰어가서 사는 고시촌 청년들처럼 말이다. (<조선일보> 2월 18일자, 불금편의점...신림동 고시촌선 1+1상품 불티 인용)
1+1 상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청년들이 편의점에서 '할인 상품'이 아닌 것도 '죄책감'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 안전망이 없고 양질의 일자리가 많지 않아서 청년들은 한 치 앞도 못 본다. 미래가 불투명하니 1000원~2000원짜리를 고를 때도 왠지 재고 따지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나 역시 아직 불안하다. 통장 잔고가 걱정되어서, 돈 쓸 곳도 많은데 사치(?)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럼에도 먹고 살아야하니까, 또 습관처럼 1+1 상품을 고른다. 하나를 사더라도 확 '땡기는'걸 사고 싶은데, 막상 그게 잘 안된다.
작가 김애란은 편의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어떤 안심이 드는 건, 편의점에 감으로써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그때의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녀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 시민이 된다."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 중)
편의점에 가서 구입하게 되는 청년들의 어떤 '일상'이 1+1 상품이나 '덤'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다채롭고 재미있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