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
비좁은 시설에서 돌고래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2014년에 4마리, 2015년에 5마리, 2016년에 4마리가 죽은 데 이어 2017년에도 이미 2마리가 죽었습니다. 올해 1월 28일 거제씨월드에서,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2월 13일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에서 돌고래가 죽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올해 얼마나 더 많은 돌고래가 죽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울산의 경우에는 사설 업체가 아니라 공공기관이 직접 나서서 논란이 된 돌고래를 수입하고 이것이 폐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습니다. 시민 세금 2억 원을 몰래 돌고래 수입 예산으로 편성하여 결국 낭비해버린 울산 남구청의 불통 행정도 문제이지만, 이를 용인한 환경부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한국 정부가 왜 비윤리적인 일본의 돌고래 학살을 용인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였습니다.
'오락거리' 된 고래, '인간적'인가 돌고래는 야생에서 최소 10마리 이상 무리와 어울려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 마리를 잡으려면 이 무리 전체를 잡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한 무리를 포획한 뒤 팔 수 있는 돌고래는 살려두고 나머지는 죽입니다. 이런 돌고래 집단 살육은 심각한 개체수 감소로 이어져 해양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번에 울산에 들여온 돌고래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가 반입 5일 만에 급작스럽게 폐사했는데, 사인은 출혈성 기관지 폐렴입니다. 30시간이 넘는 운송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면역력 약화가 폐사의 원인으로 보인다는 것이 부검을 담당한 수의사의 소견입니다. 이와 관련한 기사
"울산 돌고래, 백두산 호랑이는 왜 죽었을까?"... 부검의 병리학자 정규식 교수 인터뷰를 보면 울산 남구의 관리부실이 돌고래 폐사의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동물 운송과정에서 폐사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을 규정한 동물보호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으며, 돌고래 폐사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은 오늘도 여전히 문을 열고 관람객들을 받고 있으며, 돌고래쇼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검 결과가 공개되었음에도 울산 남구는 침묵하고 있으며, 죽은 돌고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돌고래 한 마리가 뭐 그리 대수냐고 하시겠지만, 이 문제는 돌고래를 통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생태적 측면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노력입니다. '비인간인격체' 돌고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움직임은 사회적 약자의 외침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아니지만, 인격을 가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자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결국, 동물의 생태적 습성을 무시한 채 고래를 좁은 수조에 가두고 인간의 오락거리로 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인간적'인가 하는 자각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환경부가 마련해놓은 기준에 의하면, 수족관 돌고래는 1마리당 수조의 수표면 면적이 84㎡를 충족하면 시설 사육이 가능합니다. 1마리가 증가할 때 35%를 추가하면 된다고 하니, 돌고래 세 마리의 수조일 경우에는 수표면 면적이 144㎡ 정도면 시설로서 괜찮다고 합니다.
즉 가로와 세로가 각각 10m, 14m에 불과한 수조에서 몸길이가 3m에 이르는 돌고래 세 마리가 지내는 겁니다. 이 공간에서 돌고래가 자유롭게 헤엄치면서 다른 개체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참고로 유럽연합은 돌고래 세 마리의 수조는 수표면이 최소 275㎡ 이상 되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한국보다 최소 규격이 두 배는 넓은 셈입니다. 한국의 시설은 돌고래 감옥 같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돌고래 폐사가 이어지자 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얼마 전 시민단체들은 정부 부처와 합동으로 전국의 고래류 사육시설에 대한 현장 조사를 나갔습니다. 내부 시설은 보여줄 수 없다는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둘러본 수조는 너무 좁았습니다. 돌고래들은 그 안에서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건강에도 이상이 있는 개체도 발견되는 등 문제가 많았습니다.
쇼가 끝나면 관람객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내부 목욕탕 같은 보조 풀장에 돌고래들을 두는데, 돌고래쇼 업체 운영자들은 오히려 이 좁은 시설이 환경부의 '규격요건'을 충족시킨다면서, 자신들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항변합니다.
그런데, 돌고래에게는 수조에 가둬놓는 것 자체가 문제로 작용합니다. 생태적으로 긴 거리를 매일 이동하며 다른 개체들과 교류해야 하는 고래들을 야생에서 계속 잡아 와서 좁은 수조에 가둬두는 것이 문명국가로서 올바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많은 나라가 점차 돌고래 수족관을 폐쇄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또한 이미 수족관 시설에서 사육되고 있는 고래류에 대해서도 보다 강화된 동물복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입니다. 유럽연합의 수족관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연합체인 유럽수족관포유류협회(European Association of Aquatic Mammals)에서는 2014년부터 이제는 더 이상 수조 규격으로 사육 고래류의 복지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즉 아무리 수조가 넓어도 돌고래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럽수족관포유류협회는 수조 규격 대신 '객관적 동물복지 지표(objective indicators to animal well-being)'를 사용하여 수족관 내 고래류의 사육 상황을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객관적 동물복지 지표들은 동물의 행동(behavior), 생리(physiology), 감정(feelings), 보건(health), 생산능력(production) 등을 각각 따져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도 현재 이미 시설에서 사육되고 있는 고래류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또한 큰 돌고래나 벨루가 등의 수입은 금지해야 마땅합니다. 이들의 전시나 공연을 위한 수족관 건립 역시 불허해야 합니다. 한국은 서해와 남해 일대에서 상괭이가 살고 있고, 제주도에서는 남방큰돌고래가 살고 있습니다. 동해에도 참돌고래들이 있습니다.
이들 각 해역의 고래들을 잘 지키고 보호해서 생태적으로 고래를 관찰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수족관을 굳이 찾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야생 고래를 잡아 와서 좁은 수조에 가두고 반생태적인 '고문'을 하다가 폐사에 이르게 하는 고래류의 수족관 전시는 이제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족관 시설의 생존 돌고래들에 대한 폐사 방지와 자연방류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생태교육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돌고래가 죽어가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래 정책은 그 사회 해양생태정책의 가늠자입니다
한국에서 돌고래를 비롯한 고래류는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형고래로는 한반도 해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밍크고래입니다. 우연히 그물에 걸려 죽은 밍크고래는 최초 발견자에게 소유권이 인정되고 있으며, 고래 고기 경매시장에서 한 마리에 5천만 원~1억 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어민들은 밍크고래의 서식환경과 이동 경로를 파악하여 고래들이 다닐 만한 바다 길목에 엄청나게 많은 그물을 던져놓고 '우연히'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예 불법포획에 나서기도 합니다. 해양생태계의 건강함을 지켜주는 소중한 고래들이 한국에서는 바다의 로또 취급이나 받고 있으니 참 씁쓸합니다. 밍크고래의 로또화를 막기 위해서는 고래 고기의 유통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거나, 유통 허가 규모를 매년 조금씩 줄여나가는 방식의 접근을 통해 고래들이 포획되지 않고 바다에서 인간과 공존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혁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토종 돌고래 상괭이는 2005년 3만 6천 마리가 있었는데, 10년 사이에 2만 마리가 줄어들어 현재는 1만 마리 정도 남아 있습니다. 급격한 개체 수 감소를 막고자 상괭이는 2016년 9월 해양수산부에 의해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밍크고래는 한국 해역에 약 1600마리 정도 남아 있다는 것이 고래연구센터의 추산이고, 이마저도 매년 200마리 정도가 혼획과 불법포획으로 잡혀 죽어가고 있어서 보호 대책이 더욱 절실합니다. 밍크고래 역시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하고, 포획과 고래 고기의 유통 등을 시급히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향후 10년 이내에 한국 해역의 유일한 대형 고래류인 밍크고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주 해역에 약 100여 마리 남아 있는 남방큰돌고래는 2012년에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된 이후로 다행히 개체 수가 감소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해군기지, 연안 난개발, 과도한 선박 운항, 제주 해역에 들어서는 해상풍력발전단지, 환경오염에 의한 해양생태계 악화, 해안 매립 등의 원인으로 인해 여전히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원래 제주 바다 전역을 빙글빙글 돌며 살아온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이제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와 제주시 구좌읍 일대에서만 주로 발견되고 있을 뿐입니다.
돌고래쇼를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자연으로 방류된 제돌이와 춘삼이,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는 새끼까지 낳고 개체 수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지금 해상풍력발전단지가 지어질 계획입니다. 제주 해역을 돌고래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과도한 해안개발을 막지 않으면 제주의 소중한 보물 남방큰돌고래의 개체 수가 100마리 이하로 떨어지고, 지금보다 심각한 멸종위기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나라의 고래 정책은 그 나라의 해양환경정책의 가늠자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래 정책은 어떠할까요? 고래 고기의 합법적인 유통과 판매, 은밀하게 이뤄지는 고래 불법포획과 우연을 가장한 의도적인 포획, 좁은 수조에 고래를 가두고 이뤄지는 돌고래쇼와 고래 체험, 논란이 되고 있는 잔혹한 일본 다이지 돌고래의 수입 허가 등의 사례를 보면 결국 한국의 고래 정책은 고래를 먹을거리, 오락거리, 사냥거리로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을 윤리적으로, 인도적으로 대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비인간인격체로 대우받는 돌고래를 좁은 수조에 가두는 것은 인간이 아직 돈벌이를 위해 타생명을 마구 이용하는 야만적인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고백할 뿐입니다. 좁은 곳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에게 최소한 보다 나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나아가 이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탄핵 이후 새로 만드는 한국 사회가 '공존'의 길로 한 걸음 내디뎌 가기를 소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핫핑크돌핀스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