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치와 얼마나 가깝나요? 저는 생활 속의 '정치'에 대해 저 자신에게 자주 묻습니다. 정치는 정치인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왔던 세월들이 더 많았기에, 그간 도외시했습니다. 우리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숨 쉬는 순간순간이 사실 '정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죠. 왜냐면 정치와 현실 세계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말하면 '정치'를 정치인의 전유물로 여기고자 했던 특정 집단들이 의도적으로 분리시켰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민주주의가 꽃 피우기 시작한 게 고작 30년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수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죠.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나라도 민주주의를 향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봤듯이, 우리는 갈 길이 멉니다. 빈부격차는 점점 심화되어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점차 올라가고, 삶의 질 척도에서도 OECD 하위권을 면치 못합니다.
자살률,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에 반해 출산율은 저조합니다. 안 좋다는 지표는 죄다 우리나라의 몫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걸까요? 근면한 국민성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독재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국민들이 어떻게, 왜.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는 책이 얼마 전에 출간됐습니다. 2016년 2월,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진행된 무제한 필리버스터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은수미 전 의원이 쓴 책 <희망마중>입니다. 그때 은수미 의원이 마지막에 했던 발언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죠.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이 책에선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닌 이유'를 약 25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은수미 전 의원이 감옥 생활을 마감하고 사회로 복귀한 시점부터,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정치철학을 이 책에 온전히 다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덟 챕터로 이뤄진 이 책의 목차는, 평소 제가 선배 세대의 정치인들에게 물어보고 싶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 자리는 있을까', '민주화 세대를 말한다면', '비정규직에게 87 민주화란' 등의 제목이 그랬습니다.
그는 머리말에서 "자신의 경험에 기대어 민주화 세대에 대해 조금 긴 듯한 이야기를 풀어놨다"며, "'왕년에 말이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잘난 체로 비춰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없던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기성세대들은 현 세대들의 아픔(예를 들어 3포 세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은수미 전 의원이 밝혔듯이 당시엔 일자리 숫자가 졸업자 숫자보다 많았기에 구직이 전혀 어렵지 않게 이뤄졌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느라 성적을 제대로 못 받고, 가까스로 졸업만 해도 취업이 됐습니다.
지금처럼 취업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경쟁을 이기고, 바늘구멍을 뚫어야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어쩌다가 희망도 없이, 선배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동원되는 그런 존재가 되었을까요. 비정규직, 하청, 도급 등 청년 노동자들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부려지고 희생되고 있습니다. 이에 은수미 전 의원은 87년 민주화 세대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또한 자신의 포부에 대해서도 밝혔습니다.
"민주화 세대는 87년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냈지만, 2000년대 이후 아웃소싱을 함께 만든 것도 민주화 세대이다. 이 같은 깨달음 앞에 선 순간 평범한 시민으로 살자던 결심이 흔들렸다. 할 만큼 하지 못했으며 충분히 하지 않았으며 해야 할 것이 더 있었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갈지 모르지만 나 자신은 세상을 제치고 잘 살기 어려웠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 157p.어떤 정치인?
우린 국회의원들이 서민을 위해 정치해주길 바랍니다.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온전히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인이 되어주길 희망합니다. 그러나 TV속에 비춰지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었죠. 국민을 떠받들고 살기는커녕, 자신과 당의 이익을 위해 온 몸을 불사릅니다. 국민의 삶을 놓고 자기들끼리 협상을 하기도 합니다.
대의민주주의란 우리의 대표자를 뽑아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도입된 제도이지, 결코 자신들끼리 이익과 권력을 나눠먹으라고 도입된 제도가 아닙니다. 사회에선 안 그랬던 사람이, 여의도에 들어가기만 하면 달라지는 모습. 우리는 많이 봤습니다. 이에 은수미 전 의원은 정치인에게 세 부류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기술자', '평론가',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정치 기술자는 정치의 본질을 타협과 조율로 본다. 정치적 의제이든 입법적 사안이든 지역에서 표를 모아 당산이 되는 것이 우선이며 그 핵심은 타협과 조율이다.(중략) 정치 평론가는 자신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한, 즉 신념윤리에 충실한 정치인이다. 신념윤리에 입각해 가치관과 소신을 피력하는 것만으론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없다.(중략) 소명을 가진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결합된 정치인이다." - 180p.은수미 전 의원은 "국회의원 정원의 10퍼센트 약 30명 정도만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해준다면 정치는 정의로운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자신을 바라보며, 19대 국회에서 자신은 평론가였다고 평가했습니다. "간혹 정치 기술자로서 처신했고 대개는 소명으로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4년 내내 평론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준비한다은수미 전 의원은 아무런 연고도 없이 뛰어든 성남 중원에서 혈혈단신으로 총선을 치렀다고 합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했고, 비록 실패하더라도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정치에 더 헌신, 열심히 뛰었다는 은수미 전 의원의 모습이 잘 묘사되었습니다.
비록 낙선했지만 기존 정치와는 다른 정치를 하겠다는 마음을 중원의 시민들이 알아줬고, 앞으로는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정치인이 되겠다는 결기가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선지 그의 페이스북 소개란엔 '현재 성남 중원에서 20대 총선 낙선 후 21대 총선 준비중'이란 문구가 눈에 띕니다.
그는 또 책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포스트 민주주의'라 표현합니다. 이는 영국의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가 주장한 내용입니다. 주인의 자리를 재벌 대기업과 일부 기득권 세력에게 내주고 시민은 여론조사의 수동적인 응답자이거나 몇 년에 한 번씩 투표하는 기계로 전락한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답은 무엇일까요?
은수미 전 의원은 포스트 민주주의의 해결 방안으로 정치조직을 구성하고 공론장을 만들 것을 주장합니다. 옛 지구당의 대안으로 새로운 정치 플랫폼을 만들어 정치에 대한 얘기를 가감 없이 할 수 있는 토론장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 시대의 가장 큰 장점은 SNS 활성화입니다. 따라서 SNS를 활용한 토론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토론장의 주인공은 시민, 그중에서도 디지털 시대의 원주민이자 미래세대의 주인공인 '청년'이 중심에 서야한다고 은수미 전 의원은 역설합니다.
21대 총선을 준비하는 은수미 전 의원의 머릿속 구상엔, 현 시대를 살아가는 흙수저 청년들의 아픔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선지 마지막 맺음말의 커다란 문구가 눈의 띄네요.
"청년, 정치하라."필리버스터의 히어로, 은수미 전 의원의 국회 재입성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