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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색채의 산벚꽃나무 어둠이 깃들기 전 하얀 꽃잎과 하늘빛이 어울려 빚어낸 색채가 신비롭다.
신비한 색채의 산벚꽃나무어둠이 깃들기 전 하얀 꽃잎과 하늘빛이 어울려 빚어낸 색채가 신비롭다. ⓒ 이종헌

일요일 오후 집 근처 원미산에 올랐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활짝 피었던 개나리 진달래는 어느덧 꽃잎을 떨구고 대신 산벚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었다. 영랑은 그의 시에서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라고 절규했지만 봄 동산은 꽃이 져도 슬프지 않으니 내일이면 또 어디선가 이름 모를 꽃들이 불쑥불쑥 고운 자태를 뽐낼 것이기 때문이다.

해발 167미터의 야트막한 산이라도 시내와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은데다 울창한 수목과 다양한 운동시설, 벤치, 잘 정비된 둘레길 등이 있어 원미산엔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굳이 등산화에 배낭 짊어지고 나서지 않아도, 헐렁한 운동복 차림만으로도 잠시 고단한 속세를 벗어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산, 녹지공간이 그다지 많지 않은 도시이기에 부천시민들에게 원미산은 참말 금쪽같은 산이다.

흐린 하늘 때문에 저녁노을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게 아쉽지만 대체로 휴일 오후의 풍경은 평화롭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노부부의 모습도 보이고,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 손을 잡고 꽃길을 거니는 젊은 엄마 아빠, 그리고 두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중년의 부부의 모습도 보인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그들의 발걸음은 조급하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는 흥에 겨우며, 웃음소리는 천진난만하다.

톨스토이의 이른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에, "산의 도움으로" 라는 대답은 너무 식상한 것인가? 우리가 먹는 먹거리로부터, 우리가 숨 쉬는 공기,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치유의 공간으로서 우리는 정말 산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는다.

원미산에서 바라본 부천시내 원경 진달래가 아름다운 원미산에서는 해마다 이맘 때 쯤 진달래 축제가 열린다.
원미산에서 바라본 부천시내 원경진달래가 아름다운 원미산에서는 해마다 이맘 때 쯤 진달래 축제가 열린다. ⓒ 이종헌

문득 대나무 통을 두드리는 듯한 딱따구리의 울음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숲을 한 바퀴 찬찬히 돌아본다. 산 아래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지만 아직 이곳은 바람과 나무와 꽃과 새들이 그 주인이다. 푸드득 하고 이방인의 침입에 놀란 산꿩이 힘찬 날갯짓을 한다.

등산로 한쪽에 잘 정돈된 무덤이 있고 무덤가엔 연분홍 진달래가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다. 그 진달래가 좋았는지 파릇파릇 싹이 돋은 무덤가 잔디밭에 젊은 연인이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이분법이 산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인가? 모두가 하나고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그래서 무덤가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의 모습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해발 167미터 정상에 있는 원미정(遠美亭)에 오르니 남동쪽으로 소래산과 수락산, 관악산 연봉들이 줄지어 서있고 동북쪽으로 도봉산 북한산 등이 우뚝 솟아있을 것이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보이지는 않는다. 서쪽으로 한때는 드넓은 곡창지대였을 부천, 부평 뜰이 보이고 계양산 너머로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있다.

산 이름은 옛날 부평관아의 한 부사가 멀리 동쪽에 아리따운 자태로 서있는 산을 보고 멀 원(遠)자와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서 원미산으로 했다는 설이 있으나 본디 우리말로 '멀뫼', 또는 '먼뫼'를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한다. 향토사전을 보니 멀뫼를 우두머리 산 또는 신성한 산으로 풀이한다고 하지만 이 작은 산에 그런 거창한 이름보다는 차라리 멀리 있는 산이라는 뜻의  '먼산'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산을 내려오면서 보니 등산로 옆 벤치 위에 반듯하게 깎은 사과 두 조각이 놓여있다. 어느 마음씨 고운 사람의 산짐승을 위한 작은 배려이리라. 산새인지 다람쥐인지 행복한 밤이 되겠다. 

산짐승을 위한 배려 누군가, 곱게 깎은 사과 두 조각을 번치 위에 남겨놓고 간 이는?
산짐승을 위한 배려누군가, 곱게 깎은 사과 두 조각을 번치 위에 남겨놓고 간 이는? ⓒ 이종헌



#원미산#현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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