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털에서 부동산 정책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예상 외의 제목을 발견했다. <문재인·안철수 측 "부동산 보유세 인상 계획 없다">(중앙일보, 2017. 4. 19)가 그것이다. 깜짝 놀라서 내용을 읽어보니, 낯익은 이름이 등장한다. 문재인 후보 쪽에는 홍종학 정책본부 부본부장이고, 안철수 후보 쪽에는 채이배 캠프 공약단장이다.
묘하게 닮은 홍종학 부본부장과 채이배 단장묘하게도 두 사람이 주장하는 바가 비슷하다. 홍 부본부장은 보유세 인상에 대해 "장기적으론 옳은 방향"이란 전제를 달면서도 "현재로선 추진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고 하고, "중도금 대출 규제, 분양가 상한제(공공택지와 일부 민간택지에만 적용), 뉴스테이(중산층 임대주택) 같은 현 정부 주요 부동산 정책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까지 2015년 현재 GDP의 0.78% 수준인 부동산 보유세를 GDP의 1% 수준까지 인상하는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후보의 기존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다. 안철수 후보 측의 채이배 단장도 보유세 인상에 대해 "보유세를 올려야 한다는 원칙엔 공감하지만 현재로선 올릴 계획이 없다. 국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밝혔다고 한다.
혹시 중앙일보 측이 오보를 낸 것 아닌가 해서 검색을 해보니, 이미 서울경제신문이 4월 13일자 기사로 동일한 내용을 보도했고, SBS도 중앙일보 보도 후인 4월 21일 뉴스 시간에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서울경제신문이 기사 가운데 단 소제목 하나("자칫 발목 잡힐라…한발 빼는 文·安")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표현한 것 같다.
안철수 후보 측이야 지금 보수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그렇다 치고, 문재인 캠프 쪽 홍종학 부본부장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유세 다니느라 정신없는 문재인 후보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끝에 기존 입장을 바꾸기로 결정했을 리가 없다. 문 후보는 아예 홍 부본부장의 인터뷰 내용 자체를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보유세 강화 정책은 불평등과 불공정을 해소할 핵심 개혁 정책바위를 깨는 석공(石工)에게는 중요한 진리가 한 가지 있다고 한다. 아무리 큰 바위라도 한 곳을 정확하게 때리면 둘로 쪼개진다는 원리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한국 사회를 바로 잡고자 할 때 석공의 타격점 역할을 할 수 있는 핵심 개혁 정책이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만악의 근원이 되어 버렸다. 부동산은 공직자 부패의 온상이자 기득권층의 부당 치부 수단이 됐고, 계층 간·지역 간 불평등의 근원이자 경제 불안정과 고비용-저효율의 원인이 됐다. 이를 그냥 두고서는 불평등 해소와 적폐 청산, 그리고 공정사회 건설은 요원하다.
2015년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4.2%를 차지하고 소득 상위 10%가 48.5%를 차지하여, 소득 집중도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미국에 육박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것도 불평등의 실상을 과소평가한 수치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부동산 소득(매매차익 + 순임대소득)의 대부분이 통계에서 누락되었으니 말이다. 토지+자유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2015년의 부동산 소득은 356조 원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그 해 GDP의 22.8%에 해당한다. 이것을 넣어서 소득 집중도를 다시 계산한다면 그 수준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토지자산은 개인의 경우 상위 10%가 전체 토지의 65%를 차지하고 법인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토지의 75%를 차지하여(2013년 현재 가액 기준), 소득보다 훨씬 심한 불평등을 드러낸다.
최근 재벌·대기업의 토지소유가 급증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2008~2014년 6년 사이에 상위 1%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은 546조 원에서 966조 원으로 77% 포인트나 증가했고, 상위 10개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은 180조 원에서 448조 원으로 147% 포인트나 폭증했다. 이는 재벌·대기업이 종합부동산세 감세로 인한 보유세 부담 완화와 법인세 감세로 인한 사내유보금 증가를 틈타서 토지투기에 몰두한 결과다.
부동산보유세, 특히 토지보유세는 불로소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불평등을 완화하고, 토지 보유 비용을 높여서 투기를 방지하며, 국민들로 하여금 노력소득을 추구하게 해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 재벌·대기업의 토지 투기를 막는 효과를 발휘해 대기업을 건전하게 만들기도 한다. 보유세 강화에 이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행에 옮겼던 정부가 바로 참여정부다.
이처럼 중요한 정책 공약을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다는 애매모호한 이유(가격 상승 때문에 불안하다는 건지, 가격 하락 우려 때문에 불안하다는 건지 알 수 없다)를 내세워 포기하겠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조세저항을 잠재우고 보유세 정책에 새로운 지평을 연 이재명 시장사실 보유세를 인상하겠다던 문재인 후보의 기존 공약도 개혁 정책으로서는 한참 모자란다. 현재 GDP의 0.78% 수준인 부동산 보유세를 GDP의 1% 수준까지 올릴 경우 세수 증가는 3조 원 남짓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승민 후보가 보유세 강화 입장을 선명하게 밝히고 있고, 심상정 후보가 보유세 실효세율을 두 배로 인상(세수 증가는 약 12조 원)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문재인 후보는 지나치게 신중한 입장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안 하겠다고 하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참여정부 때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세금폭탄론'에 시달려서 생긴 '종부세 포비아'가 작용하는 것 같지도 않다. 왜냐하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기간 중에 이재명 시장이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을 결합한 공약을 내세우면서 보유세에 대한 조세저항 문제를 완전히 잠재우고 무려 15.5조 원의 증세가 가능함을 명쾌하게 입증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시장은 종부세를 폐지하는 대신 모든 토지 보유자에게 국토보유세를 부과하고, 그 세수는 몽땅 모든 국민에게 1/n씩 분배하는 기본소득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재명 캠프 산하 토지주택·기본소득위원회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이 정책으로 전체 가구의 95%가 순수혜 가구가 되고, 다른 기본소득 배당금까지 합할 경우 전체 가구의 97%가 순수혜 가구가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이재명 시장은 국토보유세를 1/n씩 분배하는 토지배당 외에, 특정 연령대의 국민에게 1인당 연 100만원씩 지급하는 생애주기별 배당과 농어민, 장애인에게 1인당 연 100만원씩 지급하는 특수배당을 약속했다). 전체 가구의 97%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정책이 극소수의 조세저항 때문에 좌초할 리는 만무하다.
이재명 시장의 '국토보유세 + 기본소득' 공약은 우리나라 보유세 정책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조세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부동산 보유세 강화를 원칙적으로 지지하면서도 그 시행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조세저항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재명 시장은 보유세 강화를 기본소득과 결합함으로써 이런 우려를 일거에 불식했다. 홍종학 부본부장처럼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시장 상황을 들어 시행에 반대한다든지, 채이배 단장처럼 "원칙엔 공감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현재로서는 올릴 계획이 없다고 말하는 자기 분열적 언설(言說)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문재인 캠프는 왜 이재명 시장이 열어놓은 새 길을 활용하려고 하지 않는가? 문재인 후보의 평소 성품을 생각할 때 이것은 후보의 생각이 아닌 것 같다. 문 후보는 경선 승리 후 여러 차례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입장을 천명했으니 말이다.
자기 정체성과도, 문재인 후보의 생각과도 엇박자를 낸 홍종학 부본부장그렇다면 이번의 보유세 강화 포기 입장은 홍종학 부본부장을 비롯한 정책 캠프 인사들의 생각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경제 관료 출신들은 대개 개혁적인 공약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시민단체 맏형을 자처하는 경실련의 정책위원장 출신인 홍종학 부본부장이 나서서 입장 변화를 '당당히' 밝히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더욱이 "현 정부 주요 부동산 정책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위험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임대업자에게 과도한 특혜를 몰아주어 말썽이 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 뉴스테이 사업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고약하기까지 하다. 홍 부본장이 이런 발언을 하면 그동안 적폐 청산을 외쳐온 문재인 후보의 입장은 뭐가 되는가?
중대한 선거에서 정치공학을 고려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학이 가치의 본질을 훼손할 정도가 되면 그건 곤란하다. "정권 교체해서 뭐 하려고?"하는 평범한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거나, "그건 집권 후에 하면 되지"라고 대답한다면, 그 정치세력은 이미 정도(正道)에서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문재인 후보 측에 간곡히 호소한다. 원래 가려던 길로 돌아오시라. 그게 뭔지 모르겠다면 고쳐 말한다. 2012년의 문재인으로 돌아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