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월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28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가 제안한 '개혁공동정부 준비위원회' 위원장직 수락 의사를 밝혔다.
'개혁공동정부 준비위원회'는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난 28일 안철수 후보가 던진 승부수다. 그리고 이 위원회는 안 후보가 집권하게 될 경우 사실상 인수위 같은 역할을 하면서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 등을 결정하게 되는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갖게 된다.
따라서 김종인 위원장(여기서부터 호칭을 위원장으로 통일)의 기자회견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언론의 관심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여러 가지 사안에 걸쳐서 매우 논쟁적인 주장을 펼쳤다.
필자는 김 위원장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서 몇 가지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최악의 국정농단 사건에 의해 치러지는 조기 대선의 기본 성격을 뒤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개혁공동정부 준비위원회, 홍준표는 포함하고 문재인은 배제첫째, 역사적 책임의 본질을 호도하여 국정농단 세력과 홍준표 후보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김 위원장은 개혁공동정부 준비위원회 구성 대상에 있어 '탄핵반대 세력과 계파패권 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을 포괄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소위 탄핵을 반대한 골수 친박 세력과 민주당 내 친문 세력을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탄핵찬성 세력은 포함하고 있다. 심지어 김 위원장 측근인 최명길 의원은 홍준표 후보는 친박 패권에 의해 피해를 받았다는 이유로 포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 세력 포함 대상이 거기까지 이르게 되므로 바른정당 포함 여부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민주당 내 상당수 세력은 친문이라는 이유로 제외된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 골수 친박과 동급으로 취급되고 있다. 한국 정치를 잘 모르는 외국사람들이 보면 친문이 친박과 비슷한 잘못을 저지른 세력인 것처럼 오인할 수 있을 정도의 주장이다.
이는 국정농단 세력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특히 여러 반인권적 발언을 통해서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위협하고 있는 홍준표 후보에 대해서도 개혁공동 정부의 자격이 있다고 한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홍준표 후보까지 포함한 김종인 측의 발언에 대해서 안철수 후보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안철수 후보가 결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처음에 안철수 후보는 국정농단 세력 출신 후보들은 출마 자격도 없다고 했으며,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가진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에 대한 선택만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 안철수는 분명 문재인과 친문을 기존 보수 세력보다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 본인이 28일에 탄핵반대 세력과 계파패권 세력 배제를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했다. 이것 때문에 김종인측이 저런 말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안철수 후보는 이와 같은 상황을 초래한 데에 매우 중요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민주당 내 친문에 대한 이들의 주장에 대해선 반박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는다. 다만 친문을 무슨 수로 구분할 수 있을지 참 이해가 안 간다.
왜냐하면 지금 민주당은 소위 친문/비문 가릴 것 없이 똘똘 뭉쳐서 일사불란한 선거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민주당 전체는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한 친문 세력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면 친문과 비문을 무슨 수로 구분할 수 있을까? 여기서 김종인은 아주 놀라운 발언을 하였다. 그는 민주당에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가 패권세력인지 구분할 줄 안다'고 했다. 그러므로 '개혁공동정부 준비위원회' 동승 여부는 김종인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정치인을 이런 식으로 구분한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경악스럽다.
김종인, 무슨 권한으로 내각 구성 언급하나지금 김종인 위원장의 말을 보면 그는 내각 구성에 있어 매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기로 안철수 후보와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안철수-김종인의 이 합의는 자칫 잘못하면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은 인사에게 과도한 권한을 위임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조기 대선이 최악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치러지는 것을 감안해 보면 위와 같은 문제점은 결코 간단하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이에 대한 분석을 위해 김종인 대표의 말을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자. 다음은 김종인 위원장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 내각 구성의 전권을 안 후보에게 넘겨받은 것인가. "내가 사람을 추려 놓으면 당선자가 최종 판단을 하는 것이다. 전권을 가진다고 해서 임명까지 하는 것은 아니다."
- 추천권은 받은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일을 하겠나. 오늘 발표까지 상당히 시간을 소요했는데, 안 후보와 얘기가 정확히 확정되지 않았다면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종인의 이 말은 2가지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먼저 형식적인 측면을 따져보도록 하자. 우선 헌법에 의하면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각 구성에 있어 직접적인 권한을 갖는 인물은 국무총리와 대통령이다.
지금 김종인은 대권후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와 같은 말을 하려면 안 후보가 안 후보 집권시 그를 국무총리로 임명하겠다는 공식적인 발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않다. 그러면 김종인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우선 이 점부터가 문제다.
그 다음으로 발언 내용 자체만 놓고 봐도 문제가 심각하다. 만약 김종인이 국무총리가 되면 내각 구성 단계에 있어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김종인 발언 내용이 국무총리의 각료제청권과 외형상 비슷해 보일 수도 있으나 내용적으로 보면 질적으로 완전히 판이하다.
국무총리 각료제청권은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다. 그래서 대통령이 국무위원을 임명하려면 국무총리 제청이라는 사전 단계를 거치게 한 것이다. 그런데 국무총리의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한 우리 헌법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국무총리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국무총리의 제청이 형식적인 절차 이상의 의미를 담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보면 지금 김종인의 말은 그가 국무총리를 한다고 해도 상당히 위험한 주장이다. 지금 김종인의 말을 보면 그는 흡사 내각제하에서의 총리가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지금 김종인은 내각 구성에 있어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실질적인 구성 권한은 김종인 본인에게 있다는 식의 언급을 하고 있다.
김종인이 이런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김종인에게 과연 누가 그런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안철수 후보가 집권하게 될 경우 실질적인 인사권을 누가 행사하는 것인가? 안철수인가? 김종인인가?
필자는 김종인의 이 말을 듣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김종인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국민주권에 의해 위임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침해할 수 있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과연 지금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알면서도 김종인에게 그런 언질을 준 것인가? 아니면 모르고 준 것인가?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보수 세력에 의한 진보 내부의 의식의 식민화 현상 그리고 보수 세력의 '반노무현' 정치 전략을 분석한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반노무현주의, 탈호남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책을 최근에 낸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