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줄곧 주창한 '스트롱맨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안보를 위시한 우파 결집 전략은 일정 부분 통한 듯 했으나, 선두 탈환에는 턱없이 못미쳤다. 어찌 보면 홍 후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다 꺼내 치른 선거였다. 유세 막바지, 홍 후보의 유세를 쫓은 일부 취재진은 입을 모아 말했다.
"선거 끝나면 어쩌려고 저럴까."유세 초반부터 강도를 높인 색깔론과 막말, 호남을 배제한 지역 차별성 발언, 친박(친박근혜)계 징계 해제와 바른정당 탈당파 일괄 복당 조치까지. 성완종 사건으로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처지에, 그가 택할 수 있는 전략은 그리 많지 않았다. 표가 나올 법한 진영을 향한 선택과 집중, 이를 위한 배제와 억지 통합이 그것이었다.
[패인①] '아무 말' 대잔치"민주당 1등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을 향해) 에라이, 이 도둑놈의 새끼들."
"설거지는 하늘이 정해준 여자가 하는 일."
"부모님 상도 3년이면 탈상하는데 아직도 세월호 배지 달고..."
"장인 영감탱이."
홍 후보가 유세 기간 쏟아낸 막말 '총결산'이다. 고인 비하부터, 특정 집단을 겨냥한 원색 비난, 성 역할 고정 발언, 의혹 중심의 네거티브, 농담을 가장한 비속어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자전에세이의 '돼지발정제 강간 모의' 가담 논란도 한몫했다. 후보 자신은 "(막말로) 매도하지마라, 가장 전달하기 쉬운 서민의 말로 말하는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서민을 위한다는 그의 배려는 여론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반대로, 야권 주자를 향한 맹목적인 비난과 막말은 어느 정도 우파 결집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내 한 당직자는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선택이었다"면서 "결과적으로 지지율 반등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후보의 그런 전략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힘을 모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순 정치 평론가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진보 정권 집권의) 공포감을 불러 일으켜 충성도가 떨어지는 보수에게 '이걸 막기 위해서는 썩 마음에는 안 들지만 홍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프레임을 적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도 "보수 선명성 경쟁으로 선거를 치른 것은 1차적으로 성공한 것 같다"고 내다봤다.
[패인②]양날의 칼이 된 호남·중도층 포기"충청도는 대한민국에서 우파가 제일 많은 지역이다."지난달 27일, 홍 후보는 충남 아산 온양온천역 유세에서 "영충(영남+충청) 정권을 만들어보자"고 천명했다(
관련 기사 : "영남 충청 정권 세워보겠다" 대놓고 '호남홀대' 점화하는 홍준표). "호남 민심을 배제하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홍 후보는 "나는 거(그곳) 민심 안 봅니다"라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 1중대, 국민의당은 호남 2중대다."홍 후보의 이 같은 '호남 배제' 발언은 선거 운동 초반부터 계속돼왔다. 홍 후보의 '보수 우파 결집' 전략 중 하나였다. 문제는 집중 공략한 '영충'의 표가 홍 후보에게 쏟아지느냐에 있었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우파 성향이 다소 강한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어느 정도 결집 효과가 드러났다. 황 평론가는 "막판의 보수표 결집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사전투표율이 높았던 것도, 보수 표에 상당한 경계심을 줬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TK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이 집중 전략이 다소 먹히지 못했다. 홍 후보로부터 홀대받은 호남은 3% 미만의 '싸늘한' 지지율로 그를 심판했다.
중도 보수층의 표 분산이 현실화된 것이다. 엄 대표는 "홍 후보에게는 (보수 결집 전략이) 양날의 칼이었다"라면서 "본선에서는 중도 성향의 표를 획득하느냐 마냐가 관건인데, 이 지점에서는 다소 부족했던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패인③] 막판 '억지 비빔밥' 자충수홍 후보는 지난 6일 서청원·윤상현·최경환 등 핵심 친박 인사들의 징계를 해제하고, 바른정당 탈당파 13인의 복당을 허용하는 긴급 조치를 내렸다. 선거 막판, '실버크로스'를 향한 홍 후보의 다급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대선에서는 지게작대기라도 필요하다."홍 후보의 '지게작대기 모아 태산' 전략은, 대선 이후 벌어질 내홍의 불씨를 그대로 안은 것이었다. 탄핵을 주도한 바른정당 의원들의 복당을 허용하면서, 당내 일부 친박계와 이들을 따르는 극우진영의 분노도 함께 샀다. 한 당직자는 "홍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세였다면, 그런 호소가 안 먹혔겠으나 상승세가 있기 때문에 입이 있어도 말을 못했다"면서 "결과가 나쁘다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향후 당권 문제를 논의하는 데도 결정적인 사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 끝나도 '홍준표당'? 당권 장악 가능할까"당권에 매달리는 추한 짓은 하지 않는다."홍 후보는 줄곧 대선 이후 당권에 매달리지 않겠노라고 공언했다. 그는 지난달 21일 관훈토론 자리에서 "저는 당권으로 대선을 치를 만큼 바보가 아니다"라며 "당권은 이미 한 번 잡아봤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후보 자신의 뜻과 달리, 당 안팎에서는 홍 후보가 대선 이후 당권 장악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강한 대통령'에서 '강한 야권 수장'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득표율 30%의 마지노선을 통과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가 얻은 지지율 24.03%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에게 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얻은 수준이다.
현재로썬 탈당파 복당 문제, 친박계 징계 해제 등 대선 기간 풀어놓은 산적한 골칫거리들을 마주하는 일이 먼저다. 한 당직자는 "전시와 평시는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당내) 포용과 통합을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