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원영호 집배원은 7월 6일(목) 오전 11시경 안양우체국 앞에서 분신해 즉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7월 8일(토) 오전 사망하였습니다. 집배노조는 고인을 추모하며 앞으로도 장시간중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지난 8일 전국집배노동조합은 고 원영호 집배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국집배노동조합은 장시간 중노동에 허덕여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만든 이 현실을 바꿔나가겠습니다"라며 아래와 같이 집배원들의 고된 노동환경을 다시 한 번 알렸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마음이었으면 우체국 앞에서 본인의 몸에 불을 질렀을지 그 마음을 헤아리면 또다시 마음이 아려옵니다. 또한, 이번 분신 건에 대한 내외부적인 오보와 폄하에 대하여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판단이 들기에 전국집배노동조합은 고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면 반박하고 싸워나갈 것입니다. (중략)안양 지역 신도시로 인한 물량의 급증에도 적정인력이 증원되지 않아 고충을 토로한 사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떠한 형식의 진상조사를 통해서라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고인의 분신을 업무와 연관 없다고 폄하해버리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더 이상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20년 넘게 성실하게 일해온 베테랑 집배원의 분신은 충격과 슬픔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맞다. 일어나면 안 될 일이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 더욱이 그의 죽음을 폄훼하고 사실을 곡해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사정이, 사회적인 인식이 그렇지 않다. 지난 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간 무한요금제의 진실 - 과로 자살의 시대'편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심각한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 과로로 인해 '인간 파탄'에 다다른 이들의 사연과 그 배경들을 짚었다. 공교롭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고 원영호씨와 같은 집배원들의 업무 환경은 최악의 수준이었다.
"귀국 하든지 귀천 하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겠다"
KAIST를 거쳐 일본 동경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대기업에 입사해 장래가 촉망됐던 이창헌씨. 그는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의 과장으로 일해왔다. 이제 갓 백일을 넘긴 딸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두고, 다정했던 남편 이창헌 과장은 부모님이 살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였다.
드라마 <미생>은 드라마일 뿐이었다. 중소기업에 입사한 27세 신성민씨는 베트남의 한 건물에서 투신자살했다. 지난해 2월에 벌어진 일이었다. 입사 1년 반 만에 베트남 지사에서 근무하게 된 신입사원 신씨는 월급 중 120만 원을 부모에게 입금할 정도로 효자였고, 장학금을 받고,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던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고강도의 업무량과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회사 건물서 몸을 던졌다. <미생>의 장그래가 되지 못한 채. 그가 죽기 전 한국의 친구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이미 예견된 혹은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증거였다.
"머지않아 귀국을 하든지 귀천을 하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겠다."하지만 회사 측은 대단하게 일관적이었다.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사원들의 죽음이 회사에 누를 끼쳤다며 반대로 유족을 다그쳤다. 이씨의 가족들은 자살의 원인을 찾고 있었고, 신씨의 부모들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중이었다.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 무기로 죽여야 죽이는 겁니까?"라며 묻는 신씨의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역력했다. 죽은 자식도, 살아남은 아비도, 그걸 지켜보는 이들도 억울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죽음. 그렇다면 가해자는 누구인가.
이어지는 과로사와 과로 자살, 가해자는 누구인가
"수면제랑 술을 같이 복용했다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밖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남자한테 모텔로 끌려가 강제로 성폭행을 당할 뻔했는데…. 제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소리를 계속 질러서 주변 분들이 알고 신고했어요. 그 사람은 경찰서에 잡혀가고 저는 집으로 귀가 조치 됐다고 들었거든요."이제는 회사를 그만뒀다는 한 IT업게 여성 노동자는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주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수면제를 많이 복용한다든지 자해를 했다, 그때는 손등 같은 곳을 계속 칼로 그었다"라고 회상했다. 이 여성의 사례는 100명 중 2명이 실제 자살을 시도해봤고, 절반이 넘는 인원이 자살을 생각해 봤다(2017년 정의당 조사)는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는 한 (IT 회사) 경영자가 있었는데요. 사람은 칭찬하고 격려하면 풀어지게 돼 있다, 그래서 언제나 이 사람들은 조여야 한다, 마른 수건이 될 때까지 가장 쥐어짜야 된다, '월화수목금금금' 그 말 자체가 틀렸다, '금금금'이 세 번 들어가면 계속 풀어지고 편한 상태에서 업무를 하기 때문에 '월화화화화화화, 월화~'로 진행돼야 한다, 이런 말을 한 분도 계십니다."과거 IT업계 인사담당자로 근무했던 동국대학교 권상집 교수의 설명이다. 명백하지 않은가.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최대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이 '헬조선'의 기업들은, 사측은, 고용주들은 마른 수건 짜내듯이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있고, 야근에 야근을 이어가는 IT업계야말로 그러한 '불이 꺼지지 않는 빌딩'을 상징하는 업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 원영호 집배원이란 희생자를 낳았던 우정국, 즉 우체국 역시 그런 고강도 노동을 요구하는 업종 중 하나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오늘도 과로사하기에 딱 알맞은, 아니 다른 업종에 비해 몇 배 높은 과로사나 과로 자살자를 낳고 있는 집배원들의 하루를 따라잡으면서 그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소방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집배원들의 오늘이다.
밤샘 야근이 열정이었던 한국사회, 끔찍하다
"과로란, 오랜 시간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둘이 혹은 셋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하기 때문에 생기는 육체적·정신적 과부하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과로사를 막기 위해서는 단순히 근로시간 단축만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업무의 양 자체를 줄이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입니다. 업무량은 주지 않았는데 업무시간만 줄인다면 집이나 다른 곳에서 일을 하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돌연사를 과로 자살을 모두 과로사로 부르는 것은 그 원인이 모두 지나친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삶을 중단하게 만든다면 그건 일이 아닌 질병입니다. 과로가 성실의 다른 말로 취급받지 않는 사회, 밤샘 야근이 열정으로 미화되지 않는 사회, 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니라 일 때문에 사람이 죽는 사실 자체가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진행자인 김상중의 마지막 멘트는 소름끼칠 정도였다. "죽도록 일한 당신, 진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대목에서는 한국 국민으로 사는 것에 대한 자괴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제기한 문제는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이지만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왜 우리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가. 그와 동시에 기업은, 국가는 왜 그동안 사람이 죽어나가도록 책임은커녕 그 환경을 방치하기만 했는가. 답은 명확하다. 과로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아직 펼쳐지지 않은, 자신이 펼쳐낼 수 있는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적·사회적 요소들을 포함해 자신이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을 순식간에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회가, 기업들이, 국가가 개별 노동자들의 약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이날 방송에서 예시로 든, '야근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의 사례를 우리도 따라 할 수 있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노동자와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와 합의, 제도적 보완이 필수다. 이미 연구와 사회적인 요구들이 팽배해 있고 이론 역시 완성돼 있다. 더 이상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삶을 그만 두는 이들을 양산할 수는 없다. 고 원영호 집배원과 함께 그간 과로 자살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