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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鑑不遠(은감불원).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는 주왕(紂王)이었다. 본래 현명한 군주였으나, 달기(妲己)라는 요부에게 빠져 그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호화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듯 무릇, 군주가 누리는 호화와 방탕은 백성의 빈곤을 전제로 한다. 은나라 백성들은 수탈의 대상으로 쉽사리 전락했고, 충신들은 사라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한 모습을 보다 못한 서백(西白)이라는 신하가 "하(夏)왕조의 걸왕(傑王)을 거울삼아야 한다"라고 고한다. 걸왕 역시 주왕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 하왕조의 몰락을 야기했다. 하왕조를 몰락시키고 일어난 은왕조. 殷鑑不遠(은감불원)은 '은나라가 거울삼아야 할 것이 멀리 있지 않다는 뜻'이다.

 <헌법의 풍경>
<헌법의 풍경> ⓒ 교양인
우리가 거울삼아야 할 것은 늘 가까이에 있다. <헌법의 풍경>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전문에도 나와 있듯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 4.19혁명부터 6월 민주항쟁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겪어온 인고의 세월이, 그 과정에서 성취한 것들이 헌법에 담겨있다. 헌법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국민이 국가를 통치하는 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자연법과 함께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해줄 '사제'가 사라진 시대에는 정의를 찾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대화' 또는 '절차'라고 하는 기준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대화'는 "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정답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부터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 <헌법의 풍경> 101p.

헌법 전문에는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기서 핵심은 자율과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내느냐일 것이다.

책에도 나왔듯이, 대화와 절차를 통한 합의가, 상대를 인정하는 생각이, 자율과 조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이러한 헌법 정신을 망각한다. 자신의 주장을 극단에 위치시켜 반목과 대립을 일삼는다. 대화와 토론보다 흠집 내기가 익숙한 국회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극단의 주장이 논리 방어에 가장 쉽다고 지적한다. 극단에서 중앙으로 이동할수록 앞뒤 단계의 설명이 어려워져 논리가 공격받기 쉽다는 것이다. 공정한 조건 하에서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극단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대화를 하다보면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향하는 지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개방성과 민주성이 보장된다. 과거 대화와 절차가 없었던 시절처럼 사회가 극단으로 치달아 실수를 저지르는 일도 예방 가능하다.

넓은 스펙트럼의 존중을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 헌법 제21조 제1항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면 타인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 저자는 종교와 양심, 사상의 자유가 형제이듯이,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국민은 헌법 아래에 하나의 형제라고 표현한다.

내가 타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가가 타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결국에는 '자신의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할 때, 그 권리를 지켜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타인의 표현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비논리적·비이성적으로 탄압하면 안 되는 이유다.

국가 공권력이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를 붙잡아가려고 할 때에는, 마광수와 어깨를 겯고 함께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기독교 서적이 청소년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명분으로 판매 금지되고 저자가 붙잡혀 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필요한 태도입니다.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일종의 형제 관계이듯, 그 우산 아래 보호를 받는 우리 '이상한 사람들'도 헌법 아래에서는 일종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 259p.

헌법은 역사적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만들어진 집합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가 저지른 실수, 우리 사회가 저지른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지금도 진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헌법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책에도 나와 있는 헌법을 위반한 범죄 사실들,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목과 대립 등이 그렇다.

<헌법의 풍경> 우리에게 헌법이라는 거울의 존재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우리 사회가 거울삼아야 할 것은 멀리 있지 않다.

덧붙이는 글 | -김두식, 2011, <헌법의 풍경>, 교양인.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지음, 교양인(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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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헌법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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