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한마디로 '기분 나쁜 충격'이었다. '그래도 교육기관인데, 교육자라는 자부심으로 일하는 줄 알았는데!'라는 아쉬움이 뒷머리를 후려쳤다. 제보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아이들을 위해 세금으로 지원한 보육료가 줄줄 샌다는 소식이었다.
경찰 조사에서도 경기도 내 일부 유치원이 교재 등을 납품하는 회사와 짜고 '백머니(뒷돈)'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원시적인 '삥땅' 수법이었다. 실제 납품가 1만 원짜리 교재를 1만 2천 원이나 1만 5천 원에 납품받고는 그 차액을 현금이나 개인 통장으로 돌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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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원장 호주머니로, 뒷돈으로 새나간 보육료 '백머니' 제공을 대가로 치부를 한 유아 교재 회사에서 회계를 담당했던 사람이 한 말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삥땅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백머니(뒷돈)'로 유치원 신축·증축 공사를 수주할 계획도 세웠어요."유치원에 제공하는 '백머니' 액수가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이런 계획까지 세운 것일까! 기자가 믿기 힘든 표정을 짓자, 그는 사업 설명회를 하기 위해 만든 듯한 'PPT(Presentation)' 자료를 내밀었다. '유보 통합대비 유아 학교 신축 증축 제안서'였다.
'원장님은 개인 경비 필요 없이 대출금은 정부 지원금으로 상환 가능합니다.''매달 법인을 통하여 대출금액을 상환합니다.'제안서에 적힌 글이다. 제안서는 혀를 차게 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건축 회사를 협력업체로 끌어들여 신축·증축 공사를 수주하게 하고는 교재, 비품 등을 납품해 '백 머니'를 발생시켜, 그 돈으로 대출금을 갚아 준다는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업무를 분담할 협력 건축사와 자금 담당 회사까지 적시돼 있었다.
이 방법으로 실제 어린이집을 설립하려 한 정황도 있다. 어린이집 신축 계획서(PPT)와 설계 도면이다. 계획서에는 설계·시공 일정표와 예상 수입 규모 등이 적혀 있는데, 이 설계도대로 어린이집을 지어서 원아 249명을 모집·운영하면 원장은 월 8550만 원을 벌 수 있다.
"대출금 상환 힘들지 않아요", 이게 무슨 말일까?
계획서는, 원아 120명 기준 월수입 규모를 5160만 원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이 중 정부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80%라 대출금 상환은 절대로 힘들지 않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백머니'로 대출금을 충분히 갚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유치원 원장이 식자재, 교재 등을 납품하는 업자와 짜고 '백머니(뒷돈)'를 받는 방법으로 보육료를 착복했다는 사실은 경찰 수사로도 확인된다. 경찰은 이 방법으로 보육료를 착복한 경기도 9개 유치원을 적발해, 지난 7월 14일 경기도교육청에 징계 등의 조처를 요청했다. 9개 유치원에서 착복한 돈은 총 5677만 4000원이다.
착복 수법은 식자재, 교구 납품업체 등에 정가보다 높은 대금을 지급한 뒤 계좌 또는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방법, 원장 등의 교육비(교육정책 최고위 과정)를 유치원에서 지급한 뒤 수강을 취소하여 원장 계좌로 교육비를 되돌려 받는 방법 등 다양하다. 강사비를 과다 지급한 뒤 차액으로 곗돈을 내기도 했다.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적반하장, 경기도교육청 감사 거부하는 유치원 원장들유치원에서 부정한 돈이 오고 간, 이런 사실을 알고 난 탓일까! 최근에 경기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치원 사태를 보면,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기도 사립 유치원 원장 등은 두 차례나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공공 재산이 아닌 개인 재산이니 감사는 부당하다"며 '감사 중단'을 촉구했다. 또한 "지금까지 이루어진 감사는 직권을 남용한 불법 감사"라며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과 감사 담당 직원 2명을 직권 남용,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유치원 원장들은 또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 수를 늘리는 조례안을 무산시키려 하기도 했다.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 21명은 지난 7월 초 '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제 운영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발의했다. 시민감사관 수를 현재의 15명에서 30명 이내로 확대하고 임기를 늘리는 조례안이다.
조례 개정안이 발의되자 한국 사립유치원 총연합회(아래 유치원 연합회)가 반발했다. 유치원 연합회는 "시민감사관이 사립유치원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감사를 벌여 유치원에서 저항과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경기도의회에 냈다. 이 압박에 밀렸는지, 21명 의원 중 8명이 철회 의사를 밝혔다. 개정안은 본회의에 상정도 하지 못했다.
이 모두 경기도 교육청에서 사립 유치원 감사를 진행하고 난 뒤에 일어난 일이다. 교육청 감사실 직원들은 시민감사관과 함께 사립 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시행해, 허위서류 작성으로 수억 원을 부당 집행한 사례, 원장 대학 등록금을 유치원 공금으로 낸 사례 등 수많은 불법 부당 사례를 적발했다.
이 정도 되면,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백머니' 등의 비리 실체를 모를 리 없는 유치원 연합회가 도리어 '교육청 감사가 불법'이라고 큰소리치는 사태를 '적반하장' 외에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교육기관이라는, 교육가라는 자부심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