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불거진 가장 큰 논란은 '창조과학 신봉'과 '뉴라이트 역사관' 두 가지다.
청와대는 창조과학이 박 후보자 개인의 신앙이고, 역사관 문제는 그가 비난을 받을 정도로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해를 구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과학계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에서도 박 후보자에 대한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새다.
박 후보자가 31일 여러 논란에 해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보인 태도도 청와대와 같다(관련기사:
'역사관 논란' 박성진 "청와대도 결격사유 아니라고 했다"). 그는 창조과학 신봉 논란에 "창조론을 믿는 것이 아니고 창조신앙을 믿는다. 창조론과 진화론 등은 과학의 영역"이라고 밝혔다.
또 뉴라이트 역사관 지적에는 "부끄럽지만 건국과 정부수립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뉴라이트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려는 관심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창조과학이 아닌 창조신앙을 믿고, 역사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박 후보자의 해명이다.
그러나 박 후보자의 해명은 또 다른 물음표만 남겨놓는 꼴이 됐다. 창조론을 진화론과 함께 과학의 영역에 둔 것은 결국 그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창조'를 과학으로 여긴다는 것을 반증한다. 또 역사에 대한 무관심으로 뉴라이트 역사관을 내비친 인물이 과연 문재인 정부의 장관으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박 후보자의 해명은 상황을 더 꼬이게 했다. 여기에는 청와대의 잘못된 상황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창조과학이 개인 신앙이라면 뉴라이트 역사관은?청와대는 박 후보자가 창조과학을 신봉하고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를 역임했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만 해도 "개인의 신앙은 공직 검증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과학계의 비판이 나왔지만 중기부 장관은 과학계와 업무 연관성이 없고, '과학계의 몫'도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창조과학'은 '신앙'으로 볼 수 없다. 박 후보자가 말한 그대로 그것은 '과학'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반과학'이다. 창조과학은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 오랜 역사에 걸쳐 과학이 쌓아온 업적을 부정하고, 성경을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박 후보자를 향한 비판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과학을 말하느냐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김상욱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창조과학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문제다. '신에 의한 세상의 창조'를 '믿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한 세상의 창조'를 '과학'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도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것은 단지 종교적 선택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 올린 과학적 성취를 부정하는 '반과학적인 태도를 지녔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또한 창조과학은 청와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개인'의 영역도 아니다. 한국창조과학회는 그동안 교과서에서 진화론를 삭제하거나 창조론을 게재하게 하려는 운동을 펼쳐왔다.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를 역임한 김기환 장로는 지난 2009년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교진추)'를 결성해 교과서에서 시조새 항목을 삭제하라는 운동을 펼쳤다. 이에 과학기술한림원이 "진화론은 과학적 반증을 통해 정립된 현대 과학의 핵심 이론"이라고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다.
마찬가지로 한국창조과학회 이사였던 박 후보자 역시 지난 2007년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에서 "오늘날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육, 연구, 언론, 법률, 기업, 행정,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결국 창조과학은 개인의 영역에 있어야 할 신앙을 공공에 영역으로 끌고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설명한 '개인'과 '신앙'으로는 창조과학을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박 후보자의 인식이 중기부 장관의 역할과는 관련이 없다고 여기는 것도 청와대가 지닌 문제점이다. 이는 거꾸로 말해 업무 연관성이 없다면 어떤 문제가 있어도 인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일종의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태도다.
그런 실용주의적 관점이라면 박 후보자가 가진 역사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역사 인식을 갖느냐의 문제는 중기부 장관의 역할과 연관성이 없다.
실제로 한 청와대 관계자는 "박 후보자는 뉴라이트 운동의 선봉에 선 것도 아니고, '생활 보수'의 성격이 강할 뿐"이라며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두루 기용하겠다고 했는데 이런 문제로 낙마시키면 그 원칙을 훼손하고 인재 풀이 좁아질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보수정권에서 이뤄진 수많은 청문회에서 야당(현재의 여당) 의원들이 "5.16은 쿠데타인가 혁명인가"라고 질문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박 후보자가 아니라 청와대가 설명해야 할 문제들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다.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장차관은 모두 정무직 공무원이다. 즉, '정치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다. 자신이 맡은 분야의 전문성만으로 평가 받는 자리가 아니다.
박 후보자가 중소벤처기업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가진 창조과학에 대한 인식과 역사 인식은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자진 사퇴한 박기영 순천대 교수 사례와도 다르지 않다.
당시 청와대는 황우석 사태에 핵심 인물이었던 박기영 교수에 대해 과학계가 그렇게 크게 반발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과학계의 반발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인사를 강행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박 교수의 전문성과 능력만 보고 그가 행한 과거의 잘못은 가볍게 여기는 인식을 보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 후보자와 관련된 많은 논란은 청와대의 인사 추천과 검증 과정의 부실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론도 박 후보자 인사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넘어 청와대 인사책임자에 대한 비판까지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는 박 후보자 논란에 "최종적으로 청문회에서 본인에게 해명과 설명을 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라고 밝혀 왔다. 후보자 지명 이후에 불거진 논란에 대한 해명은 당사자의 몫이라는 얘기다.
이런 태도는 앞서 낙마한 안경환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사례에서 계속 일관되게 유지돼 왔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자진 사퇴로 물러났다.
안 전 후보자와 조 전 후보자의 자진 사퇴 이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나와 인사 실패에 대해 사과했지만 인사 과정에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나마 박 전 본부장 사퇴 이후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이번에도 박 후보자가 물러난다면 자진사퇴 형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박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대통령이다. 창조과학이 과연 개인 신앙의 영역인지, 역사에 대한 무관심으로 뉴라이트 역사관을 드러낸 것은 아무 문제 없는지 설명해야 할 곳은 청와대다. 그걸 설명하기 어렵다면 박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