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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6화: 흙수저에서 금수저된 권희학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6화: 흙수저에서 금수저된 권희학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6화: 흙수저에서 금수저된 권희학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6화: 흙수저에서 금수저된 권희학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6화: 흙수저에서 금수저된 권희학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6화: 흙수저에서 금수저된 권희학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6화: 흙수저에서 금수저된 권희학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6화: 흙수저에서 금수저된 권희학 ⓒ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6화: 흙수저에서 금수저된 권희학
[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6화: 흙수저에서 금수저된 권희학 ⓒ 케이비리포트

# 조선 후기 '인생역전' 주인공, 권희학은 누구?

권희학은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된 '개룡남'의 전형이다.  경상도 안동부 아전의 자식으로 태어나 우연히 안동부사로 부임한 명곡 최석정(병자호란 당시 주화파의 대명사 지천 최명길의 손자)의 눈에 띈다.

안동 고을의 심부름꾼이었지만 한번 본 건 잊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에 뛰어났던 권희학. 최석정은 이런 천재적인 소년을 시골에 묻혀두기가 아까워 서울로 데려오기로 한다.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로 집안의 기대를 잔뜩 받았으나 가난한 형편에 공부를 지속할 수 없어 시골 아전으로 늙어 죽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어야 했던 권희학은 자신의 팔자를 바꿔줄 대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보물 1936호 명곡 최석정 초상화, 내용설명: 지천 최명길 손자로,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기도 했다. 소장처: 국립청주박물관
보물 1936호 명곡 최석정 초상화, 내용설명: 지천 최명길 손자로,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기도 했다. 소장처: 국립청주박물관 ⓒ 국립청주박물관

서울로 올라 가기전 권희학은 최석정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또께서는 저를 먹여 주시렵니까?"

"그리하마"

"사또께서는 저에게 옷을 주시렵니까?"

"어렵지 않다"

"사또께서는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시렵니까?"

"너를 후대하겠노라"

권희학은 3가지 다짐을  받고 비로소 안동을 떠나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뜻은 부자간의 의를 맺는 것이고,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건 아전의 자식이 아닌 양반 자제로서의 고등교육을 시켜 주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영의정만 8번을 지낸 최석정의 후원 아래 서울의 대갓집 사대부 자제들과 교유를 했고, 최석정을 따라 베이징 연행사절의 수행원으로까지 다녀왔으니 학식으로보나, 견문으로보나 더이상 안동골의 촌뜨기 사내가 아니었다.

권희학 가슴 속엔 출세의 야망이 불타 올랐다. 이런 권희학의 숙원을 단번에 풀어줄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이인좌의 반란'이었다. 금위영 장교로 근무하던 권희학은 토벌사령관인 순무사 오명항의 막하 군관으로 출전하게 된다.

당시 반란군 수괴 이인좌 군대는 충청도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권희학이 세작을 침투시켜, 반란군측 변절자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으며 반군의 진중에 직접 들어가 적의 진영을 한번 보고 완벽히 이해하여 오명항의 군대가 대회전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된다.

반란을 진압한 후 권희학은 분무공신 3등에 책록되고 종2품 가의대부와 화원군에 진봉되어 비로소 완벽한 신분상승을 이루어내게 된다. 물론 향리사회에도 입지전적인 인물로도 회자된다.

권희학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주고 양반 사회에 진입시켜준 최석정을 끝까지 잊지 않아, 최석정의 문집을 사비로 간행하였고 가난하게 살고 있던 최석정 후손의 생계를 평생 지원하였다고 한다.

 감고당 권희학 초상화 , 소장처: 안동권씨 화원군 종중
감고당 권희학 초상화 , 소장처: 안동권씨 화원군 종중 ⓒ 안동권씨 화원군 종중

또 운산군수와 장연부사 등 여덟 고을의 수령을 지내면서 치적까지 세워 영조 임금의 총애를 얻었다. 권희학이 사망하자, 영조 임금은 그의 화상을 가져오게 하여 7일 동안 벽에 걸어두고 바라볼 정도로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사후에는 소론의 영수였던 영의정 조현명이 그를 위해 기꺼이 신도비명을 지어주었고, 1805년에는 안동의 향리와 양반은 물론 모모한 고관들의 협찬 속에 그의 공신상을 안치한 '봉강영당'이 건립되었으니, 웬만한 양반들도 누리기 힘든 영광이었다.

이렇게 권희학은 양반들로부터는 냉대를, 일반 백성들로부터는 원망을 받던 향리에서 일약 일류 양반으로 부상함으로서 조선후기의 신분변동을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귀한 몸이 되어서도 늘 조신하였으니, 자신의 분수를 돌아본다는 의미의 '감고당'이란 아호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지난편 보기: [역사카툰] 조선시대 '알파고', 정운창을 아시나요?)

[참고: 한국학중앙연구원]

덧붙이는 글 | (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글/그림: 장수찬 작가, 감수 및 편집: 김PD) 본 카툰은 카툰공작소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에서 제공합니다. 출판 문의 및 정치/대중문화카툰작가 지원하기 [ kbr@kbreport.com ]



#역사카툰#역사만화#권희학#흙수저#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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