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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인권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편에 서서 "당신은 존엄한 인간"이라고 말해주는 이들 덕분에, 인권은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작 그들의 삶은 험난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들어하고, 암과 투병하고, 구치소에서 노역을 하기도 합니다. '인권재단 사람'과 <오마이뉴스>는 인권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인권활동가들을 후원할 수 있습니다. - 기자 말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 ⓒ 이희훈

"얘랑 밥을 같이 먹어도 될까요?"
"같이 사는 게 맞는 걸까요?"
"빨래는 따로 삶아야 하나요?"

부모님의 질문이 쏟아졌다. 의사는 "다 괜찮다"라고 했다. 함께 살며 같이 밥 먹고 빨래해도 된다는 답이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집에서 화장실을 따로 썼다. 국과 찌개가 나오면 숟가락을 넣기 힘들었다. 알아서 식사 시간을 피했다. 설거지도 따로 했다. 옷도 따로 빨았다.

가족끼리 모여 탕수육을 시켜 먹은 적이 있다. 탕수육 소스에 상훈씨의 젓가락이 닿았다. 아버지는 "너 조심해야 하는데 자꾸 왜 그러냐"고 윽박질렀다. '그 날' 이후, 늘 그랬다. 상훈(가명)씨의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 사실을 가족들이 차례대로 알게 된 날.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고 누나는 어머니를 불렀고 어머니는 괜찮다고, 나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사실 모든 기억을 자신할 수 없다.

아버지와 누나, 어머니에게 어떻게 말을 했는지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너무 울어서 방바닥에 눈물이 흥건했던 기억은 분명하다. 아버지가 휴지를 갖고 와 상훈씨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조심해야지, 이거 옮으면 어떻게 하려고."

'하나님의 기적' 말하던 의사

HIV는 눈물로 감염되지 않는다. 밥을 같이 먹는다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쉰다고 옮는 질병이 아니다. 악수하고 입을 맞춰도 감염되지 않는다. 상훈씨의 가족들은 '만에 하나'를 걱정했다. 일상생활에서 옮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혹시' '어쩌면' '만약'을 걱정했다. 과학적 근거나 의학적 설명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질병을 믿음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사람도 있다. 상훈씨의 주치의는 상훈씨와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는지 물었다.

"이건 하나님밖에 고칠 수 없는 질병이에요. 하나님의 기적이 있어야 해요."

의사가 말했다.

부모님은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소문난 교회가 있으면, 상훈씨를 데려갔다. 교회 세 군데를 돌아가며 다니기도 했다. 상훈씨가 원하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목사 앞에서 상훈씨의 감염 사실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저도 어렸을 때 늘 교회를 다녔어요. 제가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기도 했어요. 고칠 수 있다면 고쳐달라고 애원하면서요. 하지만 그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타고 난 거잖아요. 물론 HIV는 타고 난 게 아니라 질병이죠. 그런데, HIV가 믿음으로 치유되는 병인가요? 믿음의 치유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거잖아요. 약 잘 먹고 병원 다니면서요. 그런데 부모님, 심지어 의사도 그걸 치유의 문제라 하더라고요."

무지함에서 나오는 차별도 있다. 상훈씨를 만나기 전, 기자도 그랬다. HIV 감염인이라고 모두 에이즈 환자는 아니다. HIV 감염은 HIV에 걸린 모든 사람을 말한다. 이 중 질병진행으로 면역체계가 손상, 저하됐거나 감염증, 암 등의 질병이 나타난 사람이 에이즈 환자다.

HIV 감염인은 병원 치료와 약물로 관리만 잘 한다면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HIV 감염인이 치료제를 잘 복용해 혈중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면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 역시 극히 낮다. 하지만 이 사실들을 상훈씨를 만나기 전에는 몰랐다. 하나의 질병 때문에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면 안 된다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질병인지 몰랐다.

경찰시험은 볼 수 있지만 경찰은 될 수 없어...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 ⓒ 이희훈

HIV 감염은 상훈씨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경찰을 꿈꿨지만, 경찰이 될 수 없었다. 원론적으로는 감염인이라고 직업적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선원법 등 개별법을 통해 직업 선택에 제한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다. 경찰은 제한이 있는 직종이 아니었다. 상훈씨는 희망을 품고 병원의 상담 간호사를 통해 경찰이 될 수 있는지 확인했다.

내부 규칙이 있다는 답을 들었다.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할 수는 있지만 합격 이후가 문제였다. 발령 낼 때 HIV 감염을 검사해 발령에 차별이나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였다. 감염 사실 역시 내부에 공유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동료에게 모두 감염사실을 알리며 불이익을 감수하고 일 할 자신은 없었다. 

"내 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린 거였죠. 나락으로 떨어진 세상이요. 운동을 좋아하고 경찰을 꿈꿨지만 될 수 없고, 이제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살기는 해야 할지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죠."

감염 사실을 알게 된 후 3개월을 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2학년 2학기, 대학에 복학해서 출석 도장만 찍었다. 방송과 관련된 학과였는데, 모든 게 재미없었다. 수업시간 외에는 HIV와 에이즈가 나온 뉴스를 모조리 읽었다. 10년 후, 신약이 개발된다는 뉴스가 있었다. 희망은 없었다. 10년 뒤가 언제일지 하루 앞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스물셋 젊음이 아까웠다.

"바닥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졌는데 어떻게든 추슬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너무 젊고 아까운 거예요, 그 때 자주 접속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HIV 관련 학술대회가 열린다며 실무진을 모았어요.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저 역시도 몰라서 HIV 감염인을 혐오한 부분도 있으니까요."

이왕 살아야 한다면 잘 살아 보고 싶었다. 시간을 죽이지 않고 사람을 살리면서. 사람들이HIV에 갖는 편견과 혐오,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모르고 혐오했던 상훈씨 스스로 속죄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학술대회는 성 노동자, 이주민, HIV 감염인 당사자 등 여러 소위원회로 구성됐다. 상훈씨는 HIV 감염인 소위원회, 청소년 소위원회에 참여했다. 활동가들을 만나며 마음을 나눈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HIV에 감염됐다고 삶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다, 누구나 평등할 수 있다, 죄스러워 움츠릴 필요 없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던 말들이었다. '내'가 조금씩 세워졌다.

"적어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단죄하지는 말아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씨의 자리에는 'I AM HIV(나는 HIV다)'가 적힌 캠페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씨의 자리에는 'I AM HIV(나는 HIV다)'가 적힌 캠페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 이희훈

상훈씨는 3년동안 지역의 한 방송국에서 일하며 주말마다 서울을 오갔다.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 커뮤니티 '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HIV 감염인·에이즈 환자를 움츠리게 하는 취업과 건강검진에 대한 권리를 설명했다. 매년 여름, 인권캠프를 열기도 했다.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마련해갔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서 숨지 않고 서로를 드러내기도 했다.

감염인 스스로에 대한 낙인도 지우려 노력했다. 감염인들은 보통 자신을 단죄한다. 질병에 걸려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상훈씨도 그랬다.

"가족들에게 감염 사실을 알리고 난 후, 내가 사람인가, 내가 자식이라 할 수 있는지 한참을 자책했어요. 내가 무슨 권리가 있다고, 치료를 받고 살려고 하나 싶기도 하고요. 마음이 곪아가는 거죠. 그래서 그 마음을 알아요. 사람들을 만나면 감염인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 책을 함께 보고 이야기했어요. 적어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단죄하며 살지는 말자고요."

주말을 쪼개 하던 활동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 지난해 말부터 상훈씨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이하 띵동)에서 일하고 있다. 띵동은 이름 그대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활동을 한다. 이들이 편하게 쉬고, 놀고, 먹고, 자고, 씻고, 공부하고, 인권을 알아가는 공간으로 꾸려져 있다. 밥을 준비하는 주방과 샤워실, 상담실과 침실을 마련해두고 마음 놓일 곳 없는 청소년을 마주한다.

성소수자 중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상훈씨 역시 보고 겪고 느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다. 반에서 여성스럽다며 '게이'라고 불리던 친구가 있었다. 첫 번째 분단, 앞에서 서너 번째 자리였다. 누군가 그 자리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책상을 발로 찼다. "게이 냄새 난다"며 화를 내고는 자리를 옮겼다.

"사실 동성애자 물러가라고 집회하는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의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그 사람들이야 원래 그런 사람들이니까 하면서 넘기기도 하죠. 그런데 학창시절, 청소년기에 들었던 말과 행동은 그 순간의 공기까지 다 생각나요. 교회에서 목사님에게 들었던 '동성애자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말, 학교 선생님의 '동성애는 정신병'이라는 말 같은 거요. 칼부림이죠, 그런 말들."

"나를 받아줄 사람도 분명 있어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씨가 일하는 사무실에 놓여 있는 무지개 머리띠와 스마일 인형.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씨가 일하는 사무실에 놓여 있는 무지개 머리띠와 스마일 인형. ⓒ 이희훈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씨의 가방에는 붉은 리본과 무지개 베지가 달려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씨의 가방에는 붉은 리본과 무지개 베지가 달려 있다. ⓒ 이희훈

띵동은 학교에서 집에서 혹은 관계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청소년성소수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띵동 포차'가 대표적이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열리는 띵동 포차는 청소년 성소수자 모두에게 문이 열려있다.

띵동 포차에서 청소년들은 보드게임을 하고 답답한 마음을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서로를 달랠 수 있다. 의료나 심리, 법률 상담 신청을 하면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성교육, HIV·에이즈 교육, 타로카드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시간은 '동성을 좋아하는 것도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그건 죄가 아니라는 것'을 '띵동에서 만큼은 자신을 드러내고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전하는 자리다. 마음 놓일 곳을 찾는 청소년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10월 첫째 토요일에는 80여 명의 청소년이 띵동 포차를 찾았다. 포차에 참석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어 20여 명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조금 더 서로가 서로를 보듬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띵동 포차에 와서 나를 받아줄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느끼고,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성 정체성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HIV 감염인·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과 놀림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도 존재한다. 동물과 성관계하다 걸리는 병이 에이즈(AIDS)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음료수를 함께 마시면 옮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문란함을 떠올리고 더러움을 말하며 '걸릴 만하다'는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의 지지자가 되어야 하는 연애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HIV 감염 사실을 밝히면 "미안하다"며 멀어진 관계들이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고 뒷걸음질하는 관계들 속에 감염 사실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언덕이 되어가는 관계도 있다. 지금 상훈씨의 연애가 그렇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 ⓒ 이희훈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씨가 HIV 감염인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일상 생활을 다룬 만화 <푸른알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장면에는 "당신들에게... 종신 콘돔 형을 선고하겠소!"라고 적혀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상훈씨가 HIV 감염인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일상 생활을 다룬 만화 <푸른알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장면에는 "당신들에게... 종신 콘돔 형을 선고하겠소!"라고 적혀 있다. ⓒ 이희훈

"관계는 참 다양하고 나를 받아줄 사람도 분명히 있어요. 누군가 한 명, 혐오하고 도망가고 비겁한 사람을 겪었다고, 온 세상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정말 그 한 사람이었던 것뿐이잖아요. 나를 혐오하고 차별하고 편견으로 바라본 한 사람에 길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한 번의 일로 연애나 직업, 일과 삶, 나의 나머지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상훈씨는 하루에 2번, 3개의 알약을 먹는다. 24시간 약효가 가는 한 알과 12시간 약효가 있는 두 알을 차례로 삼킨다. 세 달에 한 번은 병원을 찾는다. 면역 수치, 바이러스 수치를 점검하며 몸을 살핀다. 자신을 돌보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그 사이의 왜곡과 오해를 풀며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HIV 감염 사실을 알고 난 후, 인생에서 제가 느낀 실망감 좌절감을 다른 사람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힘들어하고 누군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요. 자신을 갉아먹지 않을 수 있도록 제가 해볼 수 있을 때까지 다 해볼 거예요. 사람이 죽는 건 HIV나 에이즈 때문이 아니라 절망감 때문이니까요."


#인권이즈커밍#에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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