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언론노조 KBS 본부(아래 KBS 새노조·위원장 성재호)의 파업이 80일이 넘었다. 일반 기업도 파업이 길어지면 경영상 타격을 입어 문제인데, KBS는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KBS 새노조의 파업 이유는 공정 보도다. 언론사 노조가 공정 보도를 요구하는 건 근로조건이라는 법원의 판결도 있았다. 하지만 방송사도 기업이다. 즉 경영에 대한 부분도 함께 짚어야 한다. 그래서 2015년 고대영 사장 취임 이후 고 사장의 경영 실적에 대한 평가를 듣기 위해 지난 20일 KBS 새노조 사무실에서 새노조 경영구역 중앙위원인 김성일씨를 만났다. 다음은 김성일 중앙위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KBS에 고액 연봉자와 고위직이 많지만 일은 하지 않는다는 감사원 지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오해라고 생각합니다. 고위직이 많다는 것은 고위직의 범주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린 문제인데, 사실 감사원에서 지적하는 2직급의 경우는 보직을 맡을 수 있는 자격 조건이지만, 실무 인력이라고 봐야 합니다. 실제도 실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대다수죠. 감사원에서 일부 1직급 이상이 단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사실 이들은 극히 일부이거나, 감사원이 해당 업무의 전문성을 과소평가한 데 기인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 감정상 그렇게 보일 여지가 있을 수는 있지만, 고액 연봉의 기준은 항상 동종 산업과 비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BC나 SBS에 비해 KBS는 70~80%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력을 타이트하게 운영했던 결과로 신입사원을 많이 뽑지 못해서 오히려 고령자 비율이 상승하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최근 2년간 정년 연장으로 인해 퇴직자가 없었던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앞으로 퇴직자 수의 증가와 신입사원의 채용으로 자연스레 감소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와 다른 방송을 비교하는 건 무리 아닌가요?"일부분 맞습니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어서 일반 사기업의 이윤 논리로 기업을 판단하면 공영방송 본연의 비수익방송을 추진하기 어렵겠지요. 국회나 외부기관에서 이런 논리를 펴는 정치인들이 KBS가 MBC, SBS와 이익 부분의 경쟁을 부추겨 시청률 싸움을 주시해왔다고 보입니다. 급여를 받는 직원인데 다른 방송과 같이 비교가 무리 아니냐는 말씀은 KBS 직원에게 방송인이 아니라 공무원적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말씀으로도 해석됩니다."
- 감사원이 이사들 법인카드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나왔나요?"현재 진행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BBC를 비롯한 선진 방송국은 이사들과 사장 및 임원들이 사용한 법인카드 내역을 모두 공개합니다. 이것이 수신료를 쓰는 방송사의 기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함부로 소명하지 못할 곳에서 쓰는 경우는 찾기 어렵습니다. 애견센터, 호텔, 자신의 근무지에서 수천만 원 밥값. 해외지출. 이런 것이 공영방송 이사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감사원의 정확한 조사와 이에 대한 해임요구 처분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서 주의 정도로 처분할 경우 이사들의 이런 잘못된 관행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표적 감사라고 주장하는데요."표적이라고 하면 한두 명 찍어서 파야 하겠죠. 하지만 법인카드 조사는 이사 11명 중 소수 이사(민주당 추천 4인)까지 모두 포함해서 각자 소명을 받고 조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황당한 물타기라고 생각합니다."
- 고대영 사장 2년 동안 KBS 운영과 경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세요?"경영 직종의 입장에서는 이 부분은 할 말이 많습니다. 고 사장의 경영은 정말 아마추어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자로서 실격이죠. 최근 경영지표들이 고대영 사장 취임 이후 좋아졌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착시 효과에 불과합니다. 고 사장의 경영 능력으로 수입이 증대되었다기보다는 연기되었던 수입이 들어왔거나, 몇 년 동안 정체였던 협상 타결로 한꺼번에 수입으로 인식된 점이 많습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는 금리 하락 등의 외부환경 요인, 투자 축소 등으로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다 보니, 장기적으로는 KBS의 경쟁력을 하락시킨 것입니다.
현재 KBS의 5년 혹은 10년 후 미래를 보면 콘텐츠나 설비 투자 등에 대한 장기간 계획은 전무한 상태입니다. 딱하나 대규모 투자라고 할 수 있는 신사옥 건설은 오히려 내부적으로 충분한 동의나 계획 없이 성급하게 진행되고 있는 느낌도 있습니다. 감사원이 부적정하다고 감사결과를 통보해 왔죠. 이 또한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며, KBS의 미래를 놓고 보면 패착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KBS에 대한 평가는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습니다. 공사의 특성상 매년 흑자를 어떻게 내느냐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닙니다. 고대영 사장 시절 동안 공정성과 공영성에 대한 평가가 한없이 추락했습니다. 오래전 종편에 역전됐고 그 차이도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져 있습니다. 이는 결국 국민 신뢰도의 하락을 의미하는 것이고 결국 KBS의 주된 수입원인 수신료의 현실화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이 때문에 고 사장 시절 수신료 현실화 문제에 대해 명함도 내밀지 못했습니다. 있던 조직조차 없애버렸습니다. 아마도 고사장 본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KBS의 보도가 국민들에게 수신료 인상을 말할 처지가 아닐 정도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으니까요."
-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성역 없는 보도, 팩트 나열로 기계적 중립으로 위장한 교묘한 진실 왜곡이 아닌 국민의 방송을 해야 하는 데, 이럴 경우 임명권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혼났겠죠. 그리고 고 사장 스스로 적폐 정권이 영원하기 위해서 자신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아마 지금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 것입니다. 소위 확신범들이죠."
- 수신료는 왜 신경을 안 쓴 거죠?"수신료는 국민이 내주시는 겁니다. 과거 집권당이 과반을 넘겨도 수신료를 인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실패의 원인은 정치권이 아니라 공영방송이 정치권의 풍랑 속에 있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뻔히 알고 있는 고 사장이 수신료 인상을 위한다면 본인이 그동안 했던 보도나 프로그램의 내용과 기조를 바꿔야 했겠죠. 신경을 안 쓴 게 아니고 쓸 수가 없었죠. 인상카드를 꺼냈다가는 엄청 두들겨 맞았을 거니까요."
- 어쨌든 KBS는 수신료로 운영되는데 방송을 멈추고 파업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진 시청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맞습니다. 죄송하죠. 어찌 됐든 수신료를 내주시는 국민들에게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것은 두 말이 필요 없이 죄송한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 국민들에게 의무를 내려놓고 있는 것이지요. 죄송한 것은 분명합니다.
한가지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운 말씀을 드리자면, 그동안 KBS가 공영방송으로 역할을 못 했고 현재 고 사장 체재하에서 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순히 프로그램만 내보내는 의무를 이행하기보다, 제대로 된 방송으로 공영방송 본연의 의무를 하고 싶어서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운 파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자, PD뿐 아니라 KBS에서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고, 함께 좋은 방송, 보도를 만들자는 목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 맡은바 업무에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죠. 하루빨리 고대영 이인호 퇴진투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으로 하루빨리 돌아오겠습니다."
- 수신료를 내지 않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요? 경영진을 압박하지 않을까요?"개인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파업 기간 수신료 납부를 중단한다면 경영진에 부담이 되기보다는 잘못된 방송에 저항하는 직원들의 투쟁수단인 파업을 막기위해 경영진이 무기로 사용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경영진은 부담이 없습니다. 수신료 몇 개월 못 받는다고 해도 자신들 월급은 잘 받아갑니다. 월급은 파업하는 일반 직원들이 못 받는 거죠."
- 시민이 경영진을 압박할 수단이 있나요?"관심입니다. 관심을 가지시고 지속해서 KBS에 항의하셔야 합니다. 게시판도 좋고 어떤 방식도 좋습니다. 가능하다면 논의 중인 방송법 개정과 관련해 이사 구성권을 국민들이 가졌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습니다."
- 아무래도 방송사는 기자, PD 중심이고 경영 직군은 별로 주목을 못 받는 느낌인데."주목받지 못해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 같은 언론인이고 공영방송에 대한 의지는 같으니까요. 다만 파업참여에 대한 뉴스거리나 인물을 거론할 때 아무래도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기자 PD가 많은 인터뷰나 기사에 언급되겠죠. 같은 동지로서 오히려 앞에 서 있는 그 친구들이 오히려 감사하지요."
- 파업에 참여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아요?"파업참여에 대한 불이익은 다른 직종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과거에는 새노조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이 많을 거라고 걱정하기도 했고, 실제 일정 정도 유무형의 불이익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파업을 통해서 만들어질 새로운 KBS에서는 공정방송을 위해 싸웠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게 되진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 현실적으로 이달을 넘기면, 12월은 예산 국회가 열리고 내년은 지방선거라서 여론 주목도가 떨어져서 어려워지지 않을까요?"국민들이 보여주신 촛불은 춘천 김진태 의원이 바람불면 꺼진다고 했지만, 결과는 반대였죠. 아마 우리 파업은 촛불의 힘으로 일어난 파업으로 오히려 더 강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 파업 승리 후 복귀하면 KBS 경영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세요?"무엇보다, 시청자만을 바라보면서 가는 경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장이 자신의 연임 같은 사익이나, 단기적 성과가 아니라, 시청자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KBS 경영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선 공영 방송의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미래 청사진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닥치는 것들을 순서 없이 투자하는 방식을 벗어나서,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와 자원 배분의 계획들을 제대로 수립해야 하겠죠.
그리고 효율화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경영 수지만을 위해, 단기간 성과만을 위해 무리하게 제작비를 삭감하거나, 인력을 쥐어짜는 방식에서 탈피해야겠죠. 구조적으로 불필요했던 부분들에 대해 과감히 진단하고 수신료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동안 KBS는 독점적 시장환경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회사를 꾸려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바일, IPTV 등 새로운 매체로의 급속한 전환과 경쟁의 심화로 경영의 중요성이 부각 되고 있습니다. 기업경영에서 중요한 것이 고객인데 KBS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KBS의 고객인 시청자 즉, 국민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시청자와의 소통과 우선 정책을 경영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KBS도 이제는 경영의 해법을 시청자와의 소통에서 찾아야겠죠."
- KBS 수신료 인상 문제를 못 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우선 KBS 재원의 근간이 되는 수신료 사용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죠. 공익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방송으로 수신료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를 쌓아 수신료를 현실화해야 합니다. 이는 당연한 우리의 논거예요.
구체적으로 보면, 과거의 수신료인상을 위한 '정치권 해바라기'는 더 안 됩니다. 국민 신뢰가 없는 수신료인상은 허상입니다. 수신료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보여준다는 자부심이 생겨야 합니다. 그런 자부심은 결국 프로그램의 경쟁력과 이를 위한 효과적 재정운영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방송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최종생산품이 제대로 되어야 수신료를 논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 논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만하면 잘하고 있네'라는 국민들의 평가를 받은 뒤에 시작할 것은 수신료의 불공평을 해소해야 해요. 현재 수신료를 전체 대상 수상기에 부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락되는 수신료부터 모두 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를 완비한 후, 형평성과 공평성을 갖춘 수신료 제도에서 금액의 인상 여부를 검토해야 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프로그램 정상화, 수신료징수의 공평성 확보, 추후 필요하면 수신료인상 추진의 수순이 맞다고 봅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세요."제가 죄송하다고 말할 위치에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파업으로 인해 불편을 드리고 외부에서 집회하면서 본의 아니게 불편함을 드린 것은 죄송합니다. 하루빨리 돌아가겠습니다. 부디 국민들께서 관심을 접지 마시고 저희가 공영방송으로 다시 돌아가 세월호도 제대로 보도하고 국정농단, 적폐청산도 모두 방송으로 내보내는 그날을 기다려주시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