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날씨가 좋다. 세 아들과 뒷산에 올랐다. 큰애와 둘째는 자전거로 동행했다. 두 녀석은 경사 심한 곳도 잘 올랐다. 둘째는 힘든 모양인데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정상까지 못 올라갔다. 둘째가 자전거로 정상까지 오르기엔 너무 벅찬 길이었다. 큰애와 둘째는 산중턱에서 자전거 핸들을 꺾어 환호성을 지르며 아래로 내달렸다.
헌데, 잠시 뒤 쏜살같이 내려갔던 큰애가 허겁지겁 산을 되짚어 올라왔다. 산 중턱에 윗옷을 두고 왔단다. 자전거는 산 아래 두고 걸어 올라온 큰애 모습이 마치 패잔병 같았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큰애 산만한 행동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조금 전까지 입었던 옷을 산에 두고 온 모습은 이해불가다.
투덜거리며 산에 오르는 큰애 불러 세워 핀잔주려다 침 한번 삼키고 관뒀다.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좋아야 한다. 단, 고생은 내 몫이다.
나는 큰애를 또다시 산 아래로 내려보낸 뒤 겉옷 가지러 되짚어 산을 올랐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 무게만큼 큰애의 경솔함이 미웠다. 하지만 산을 내려 오며 마음을 다잡았다.
큰애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 되돌아 보니, 세 아들과 즐겁게 산행한 기억이 희미하다. 그만큼 아이들과 가깝게 지낸 시간이 부족했다.
오늘 '곱빼기 산행'은 그동안 아이들 내팽개치고 놀러 다닌 벌이다. 세 아들이 내린 벌치고는 가벼워 그나마 다행이다.
겨울은 점점 깊어가는데 여수 구봉산은 가을 기운이 여전하다. 혹여, 단풍 구경 놓친 분들 계시면 여수로 오시라. 여수는 여전히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