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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동재개발지구 철거가 진행중인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가림막 사이 행인들의 걸음걸리도 쓸쓸해 보인다.
거여동재개발지구철거가 진행중인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가림막 사이 행인들의 걸음걸리도 쓸쓸해 보인다. ⓒ 김민수

햇살은 눈부셨지만 칼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이곳이 생긴 이후, 이맘때 이곳을 거닐면 늘 연탄가스의 매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겨울엔 그 어느 골목길에서도 코를 자극하는 냄새도 없고, 온 몸을 불태운 흔적을 간직한 연탄도 없다.

사람들은 이제 모두 떠난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속히 재정비가 되어 다시 돌아올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이다. 올해 안에는 철거라도 다 끝날 줄 알았는데 더디기만 한다. 철거가 한창이지만, 아직도 철거되지 않은 집들마다 속을 다 드러내고 겨울을 보내고 있다.

거여동재개발지구 철거된 잔해들과 건너편 아파트, 이제 이곳엔 저 아파트보다 높은 아파트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철거된 잔해들과 건너편 아파트, 이제 이곳엔 저 아파트보다 높은 아파트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 ⓒ 김민수

철거된 집들은 쓰레기 언덕을 이뤘다.
언덕을 이룬 수많은 건축자재들은 그냥 흙 속에 묻힐 것인지 아니면 쓰레기 처리장으로 향할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거대한 쓰레기더미 위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차피 재개발을 피할 수 없었다면, 속전속결로 재개발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차라리 그랬더라면, 이곳을 애써 일궈온 분들이 더 많이 이 곳에 남았을 터이고, 이런저런 갈등도 지금보다는 적었을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 햇살이 따가운 오후, 그러나 그 빛을 맞이할 사람이 없다.
거여동재개발지구햇살이 따가운 오후, 그러나 그 빛을 맞이할 사람이 없다. ⓒ 김민수

개발되는 곳마다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다.
사람은 어디로 가고 잉여만이 진리처럼 작동하고, 재개발 과정에서 저마다 일확천금의 꿈을 꾼다. 잉여라는 놈은 성질이 고약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관계를 이간질 시킨다. 거여동재개발지구에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하고, 거의 폐허가 되어 사람이 살아가기에 부적절한 곳이 된 지가 거반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제자리 걸음인 듯 더디기만 하다. 그 이유는 바로 잉여라는 놈의 농간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 빈 집에서 바라본 골목길에 햇살이 가득하다. 사람이 없어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거여동재개발지구빈 집에서 바라본 골목길에 햇살이 가득하다. 사람이 없어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 김민수

굳게 닫혀있던 집들은 철거를 앞두고 마치 수술대에서 내장을 드러낸 환자마냥 열려있었다. 굳게 닫혀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궁금해서 기웃거리곤 했는데, 다 열려진 집들은 너무 을씨년스러웠다. 그리고, 이미 재개발지구의 철거당할 집들에 대한 사진들은 넘치고 넘치는데 또 그 아픔을 각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그냥 찬바람 부는 골목을 돌아 나왔다.

그런데 햇살은 왜 그리도 눈부신지.
누군가를 위해서 필요할 터겠지만, 아직 남아있는 고양이들을 위해서라도 햇살은 필요하겠지만, 사람이 떠난 그곳을 비치는 햇살이 왜 그리도 공허한지.

거여동재개발지구 가람막으로 둘러싸여가고 있는 거여동재개발지구
거여동재개발지구가람막으로 둘러싸여가고 있는 거여동재개발지구 ⓒ 김민수

한 해의 끝자락, 어찌되었던 이곳도 내년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아파트촌이 되겠지. 그리고 모든 신축아파트가 그렇듯, 보통의 사람들은 언감생심 가질 수 없는 높은 가격에 거래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제 그 수순을 밟아야 할 때이니 잘 되길 바랄 뿐이고, 잘 정리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거여동재개발지구 모두가 떠나버린 그곳, 이제 속히 정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거여동재개발지구모두가 떠나버린 그곳, 이제 속히 정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 눈부신 겨울햇살이 오히려 야속하게 느껴지는 추운 겨울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눈부신 겨울햇살이 오히려 야속하게 느껴지는 추운 겨울이다. ⓒ 김민수

따스한 햇살이 그토록 그리웠는데, 따스한 햇살이 궁상맞은 듯한 날, 사람 떠난 그곳, 따스한 햇살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지난 가을 이후, 내가 사는 집은 안타깝게도 30분 이상 햇살을 받아보질 못했다. 곰팡이가 피어나는 벽을 보면서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느꼈다. 물론, 찬 바람 스미는 허술한 집은 아니다. 재개발지구에 위치한 번듯한 집보다는 훨씬 좋은 집이므로. 그래도 베란다에 햇살 가득한 집을 보면 늘 부러웠다. 저렇게 햇살 잘 드는 베란다가 있다면, 화초도 멋드러지게 키울 터인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니 다닥다닥 붙은 지붕들 사이 골목길, 바람 숭숭 들어오면 모래 벽돌로 허술하게 지어진 집에 살던 이들은 또 얼마나 튼실한 집을 갖고 싶었을까? 그러나 너무 지체되었다. 그래도 지나간 일이니 어쩌겠는가? 

거여동재개발지구를 십여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은 재개발이라는 것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어떻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결국, 어쩔수 없이 자본의 이익을 채워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사람은 어디로 가고, 자본이 주인된 방식으로.



#거여동재개발지구#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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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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