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실학자 박제가'요리(料理)'라고 하면 요즘 '백 선생'이 먼저 떠오를 테지만, 이렇게 음식과 관련되어 이 말이 쓰인 것은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일제강점기 이후다. 이전엔 한자 어휘로 '상황에 맞추어 요량껏 처리한다'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특히 지방 수령들은 기근 상황에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진휼할 재원을 스스로 마련하고 연말에 보고해야 했기에 수익을 얻기 위해서라도 관고(官庫)의 재물이라도 손을 댔다. 그중 가장 손쉬운 요리 대상이 유상으로 진휼하기 위해 비축해 둔 환곡이었다.
정조시대 실학자로 명망이 높던 박제가는 수령으로 처음 부임한 부여에서 당장의 심각한 현실을 목도하고는 여느 수령들처럼 요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1년도 되지 않아 파직되어 이런 곤경까지 당하게 된 것이었다.
정조 임금의 옹호로 중벌을 피한 박제가는 다시 환로를 걷게 되긴 하지만, 정조가 급작스레 세상을 등진 후엔 사돈관계인 윤가기 사건에 연루되어 노론 벽파, 특히 사이가 좋지 못한 심환지의 공격을 받고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하지만 제자였던 추사 김정희 아버지인 '골수 노론' 경주김씨 김노경의 변호로 구사일생하여, 유배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박제가는 조선의 개혁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지 못하고 유배에서 돌아온 그해 사망하게 되면서 경장(更張)의 꿈도 희미해진다.
북학파의 꿈은 박규수, 오경석, 유대치로 이어져 유대치의 문하생인 북촌 사대부 자제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3일 천하로 끝나게 되면서 자주적인 근대화 실현이란 포부도 막을 내리게 된다.
유길준, 서광범, 지석영 등 마지막 북학파들이 갑오개혁으로 부분적인 근대화를 시도하지만 일본의 간섭에 의한 것으로 그 의미가 바래져 버렸다.
화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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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對三千里外人 欣逢佳士寫來真 愛君丰韵將何比 知是梅花化作身
何事逢君便與親 忽聞別我話酸辛 從今淡漠看佳士 唯有離情最愴神
삼천리 밖의 이역 사람을 마주하고선, 아름다운 선비 만남 기뻐하며 그 모습을 그려보네. 사랑하는 그대의 자태를 어디에 비교할까나. 매화의 화신이 그대임을 알겠네.
무슨일인고? 그대 만나 이제서야 친해졌더니, 별안간 이별한단 말 듣고서 그 이야기가 시고 맵구나. 이제부터 아름다운 선비 보아도 담담히 대하리라. 헤어지는 감정 그저 내 마음만 아프게 할 뿐이니.
旣作墨梅奉贈又復爲之寫照因作是二絶以誌別云 乾隆 五十五年 八月 十八日 揚州 兩峰道人 時客 京師 琉璃廠之觀音閣.
이미 묵매도를 만들어 증표로 드렸는데 또 다시 초상화를 그리고, 두 구절의 시를 지어 이별을 기록하노라.
건륭 55년(1790년) 8월 18일 양주사람 양봉도인(兩峯道人:나빙)이 북경[京師:서울] 유리창 관음각에서 머무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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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고전번역원[지난편 보기]: [역사카툰] 25화: 정조가 찜한 인재, 최홍만보다 컸던 허일[제공: 카툰공작소 케이비리포트]
덧붙이는 글 | (케이비리포트 역사카툰. 글/그림: 장수찬 작가, 감수 및 편집: 김정학 PD) 본 카툰은 카툰공작소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에서 제공합니다. 출판 문의 및 정치/대중문화 카툰작가 지원하기 [ kbr@kbrepor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