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8년 전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가운데, 그와 같은 피해를 당했다는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정치권으로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1일~2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같은 당 이효경 경기도의원 등이 나서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알렸다.
이재정 의원은 앞서 서 검사가 인터뷰로 성추행 피해를 알린 직후인 지난 1월 30일, 본인 페이스북에 "서 검사 옆에 서려 몇 번을 썼다 지우며 망설이고 있다. (내용을) 가득 메우고도 다시 망설인다. SNS로 변호사였을 때도 못 했던 일, 국회의원이면서도 망설이는 일"이라며 "사실은 미투(나도 당했다), 그리고 위드유(#WithYou)"라고 적은 바 있다. 이 의원은 그 뒤에도 언론 인터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이 의원은 2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13년 전 당한 피해를 증언했다. 그는 "(가해자는) 제가 취업하려던 법무법인의 대표였다. 거부 의사를 표했음에도 계속 제게 '친근함의 표시'를 하며 전화를 계속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그 불편한 상황을 피했고 화가 나 있다고 알렸지만, (가해자가) 그걸 아는 상태에서도 계속 전화를 해 오는 걸 보면서 참으로 놀랐다. 그 자신감이 사실 저를 더 위축되게 했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왜 당시에 나서서 피해를 말할 수 없었는지도 말했다. "그때 제가 변호사긴 했지만, 검찰·법조계와 계속 소통해야 하는 입장에선 이런 걸 문제제기하면 제 의뢰인에 도움 될 게 없다고 봤다. 저로선 감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저는 취업 준비 중인 사회 초년생이었다. 검사장 출신의 로펌 대표와 갈등을 빚어서 향후 취업 시장에서, 또 법조계에서 내가 어떻게 버틸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 탓에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얘기로, 이는 성폭력이 권력의 문제와 연결돼 있음을 시사한다. 이 의원은 "잘못을 깨닫고 숨어도 부족할 사람이, 피해자인 제게 계속 위협을 해 왔다. 그분은 제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었을 것"이라며 또 다른 피해자가 있으리라고 추정했다. 그는 "(피해) 여성들이 그걸 공론화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 가해자들에게 있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노래방에서 바지 벗어" 이어지는 증언..."구조적 해결책 함께 고민해달라"이 의원은 1일 <오마이TV>와 만나서도 스스로 자꾸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13년 전 일인데 아직도 저는 '왜 그 순간에 노(No)라고 얘기하고 더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을까' 나를 책망하곤 한다. 여전히 공개적으로 말하는 걸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성추행을 문제제기할 수 없게 만드는 조직 문화,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제도적 해법이 필요하다. 해결의 방향으로 관심을 쏟아달라"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
'#미투' 이재정 "13년 전 일,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같은 당 이효경 경기도의원도 6년 전 겪은 SNS를 통해 구체적인 성추행 피해 사실을 밝혔다. "밤 10시에 노래방으로 불러내고, 내 엉덩이 가슴 어쩌고 하는 등 성희롱은 일상다반사", "6년 전 상임위 연찬회 회식 뒤 다른 의원들과 노래방에 갔는데, 한 동료의원이 내 앞으로 오더니 바지를 확 내리더라. 당황해서 바로 나왔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혼자서) 밤새 내가 할 수 있는 욕을 실컷 했다"는 증언이다.
한편 이재정 의원은 2016년 11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긴급현안질의에서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를 상대로 '사이다' 지적을 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 총리에게 "법조인으로는 (제가) 경력이 부족할지 몰라도 저는 지금 국민을 대표해 서 있는 국회의원이다. 총리님 답변 태도가 적절치 않다", "묻는 말에 답하라. 그렇게 거만하게, 고압적으로 답변하면 안 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957년 출생인 황 전 국무총리는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1974년생인 이재정 의원은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도 법조인 경력도 20년 이상 차이 나는 총리에게도 거침없이 질의해 화제가 됐던 이 의원이, 성추행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해자의 권력·지위와 얽힌 사회적 맥락이 깔려 있었다.
[관련 기사]정춘숙 "미국발 미투? 한국은 이미 작년에 시작됐다" '오방끈' 건네받고 당황한 황교안 "뭐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