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군은 '중국인민지원군(中國人民志願軍)'의 줄임말로, 한국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을 지원하고자 참전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다.
중국인민지원군의 대부분은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제연합군과 공식적인 전쟁을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자, 중국의 정식 군대인 중국 인민해방군과는 다른 직제와 편제 그리고 명칭을 썼다. 공식적으로는 모두 '지원병'인 것처럼 꾸몄으나 사실상 만주에 주둔했던 인민해방군 제4야전군이 명칭만 바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0년 9월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대역전시킨 뒤, 삽시간에 평양을 점령하고 압록강 근처 중국 국경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에 김일성은 강계시를 임시수도로 정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중국은 자국의 코앞에 친미 국가가 세워지는 것은 국가 보위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과 그 명분으로 한국전쟁에 개입하게 됐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펑더화이(彭德懷)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중국인민지원군을 결성해 1950년 10월 19일부터 1차로 26만 명의 병력으로 압록강을 건너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최초 전투개시일은 10월 25일로, 이날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