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단 내 성폭력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SBS 기자의 취재 과정과 SBS뉴스 측 대응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 시작은 이렇다. 익명을 요청한 트위터리안은 지난 11일, 자신의 트위터에 SBS의 문단 내 성폭력 취재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게시했다.
해당 트위터리안은 "말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는 동기 재수생"이자 SBS 기자로부터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해 다짜고짜 취재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SBS뉴스 트위터 공식계정은 해당 트위터리안의 트윗에 다음과 같은 답글을 남기며 전화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다.
SBS뉴스 공식 계정은 해당 트위터리안이 SBS 기자가 실제로는 하지 않은 "너 성폭력 당한 거 있어?"라는 물음을 받았다고 트윗에 적은 것만을 문제 삼으며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트윗을 남겼다.
SBS뉴스의 답글 이후 해당 트위터리안은 트윗을 통해 자세한 정황을 밝혔다. 해당 트윗에 따르면, 취재 과정에서 해당 SBS 기자는 "번호(개인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하지도 않았고, 취재에 응해줄 것이냐는 동의도 받지 않았고, 사전 문자 연락이나 이메일도 없"었으며, "전화하자마자 반말로" 취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카카오톡으로도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일이 커지길 원치 않으니 얼른 사과하라'는 식의 메시지도 받았다고 한다. 현재 SBS는 해당 트위터리안의 추가적인 트윗에 별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SBS 기자의 취재 태도부터 "법적 조치" 운운한 SBS뉴스의 공식 대응까지.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우리 사회가 성폭력이라는 사안에 대하여 얼마나 무감한지, 젠더 권력이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자사 취재 윤리 강령조차 어긴 취재먼저, 젠더 이슈를 떠나서, 해당 SBS 기자의 취재 과정에 나타난 기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SBS의 윤리 강령을 살펴보면, '프라이버시 보호'와 관련된 내용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자사 윤리 강령에도 나와있듯, 전화 인터뷰를 진행할 때에는 대상자에게 보도를 전제로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자료나 정보로 이용할 것인지를 미리 알려야 한다. 취재에 있어서 취재원에게 어떤 경위로 연락을 취하게 되었고, 무엇을 취재하고 싶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사전 동의를 얻는 것은 기본이다. 또한 취재원에게 통화 내용을 녹취하겠다는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거기에 SBS 뉴스의 공식적인 대응은 문제를 키웠다. 소속 기자가 자사 윤리 강령에 반해 취재를 진행하여 취재원이 피해를 입었다면, 허위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 이에 대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SBS 뉴스는 취재원에게 어떠한 사과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사전 동의 없이 녹취한 통화 내용을, 또 다시 사전 동의 없이 전문을 트윗에 실었다. 대형 언론사이자 권력을 가진 기업으로서, 일반 개인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운운한 것 역시 협박이라 할 수 있다.
허위 사실 유포라고? 성폭력 문제에 대한 무감각 보여줘 SBS 뉴스가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취재원이 해당 SBS 기자가 "너 성폭력 당한 거 있어?"라고 물어봤다고 적었는데, 해당 질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맥락이 주어져 있다면 직설적 질문 없이 우회적 질문만으로도 같은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때문에 SBS 뉴스의 태도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 얼마나 무감한지 보여준다.
문단 내 성폭력을 조사하고 있는 기자이자 "시인들과 평론가분들 손버릇이 안 좋"은 것을 알고 있는 동기라면, 취재원이 성폭력을 겪었을 가능성이 있겠다고 추측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들끼리 모임"을 만들고 있는 것이 있는 지, "(성폭력이나 성추행의) 원인에 대해서 당사자인 시인이나 이런 분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묻는 것은, 피해 당사자에게는 "너 성폭력 당한 거 있어?"라고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해당 기자가 위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만 명심했더라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는 "낯선 사람의 접근만으로도 일상적 심리의 평온이 깨지고 불안함"을 느낀다. 해당 기자가 성폭력이 피해자에게는 굉장한 상처라는 것, 성폭력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라는 것, 심지어 본인이 취재하고자 하는 사람이 최근 성폭력 문제가 붉어진 문단의 여성 문인인 것을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취재 과정과 태도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되기 쉽다는 것에 불안해 하고 있다. 밤에 혼자 다니기 꺼려진지는 이미 오래이며, 화장실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는 몰래카메라를 신경써야 하고, 이별도 안전하게 해야한다. 여성들의 불안은 이미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으며, "운이 좋아서"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최근 미투 운동과 집단 내의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면서 관련 언론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언론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범죄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고 취재 과정에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공포와 불안감을 모르는 것이 권력이번 사건의 기자가 정말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해당 트위터리안에게 전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에 속한 구성원에게 다짜고짜 전화해서 성폭력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는 성폭력에 대해 제대로 '몰랐다'는 것으로서, 젠더 권력이 우리 사회에서 누구에게 있는지 보여준다.
지난 2016년, 많은 여성들이 공포와 분노, 슬픔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한 남성이 화장실에서 7명의 남성을 지나친 후 들어온 여성을 극악무도하게 칼로 찔러 죽인, '강남역 살인사건' 때문이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간에는 이런 포스트잇이 붙었다. "이번 사건을 보고 내 어머니, 여동생, 여자친구가 걱정되십니까? 자연스럽게 본인 걱정은 안하시네요. 이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에 성범죄를 비롯하여 여성 표적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해 공포와 불안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것이 남성이 젠더 권력을 가진 쪽임을 방증한다.
자신의 일상 생활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므로 여성들의 삶과 불안감에 대해 자세히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젠더 권력을 갖고 있는 측으로써, 자신의 행동과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자신을 검열하는 쪽은 여성이었다. 왜 여자가 온갖 범죄들을 '피하기'위해 '조심'해야 할까. 이제 더 이상 여성들을 향한 "그 정도는 성희롱 아니지", "그렇게 입고 밤에 돌아다니면 안돼", "내가 지켜줄게"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는 가해자들을 향해 "방금 행동 성희롱, 성추행입니다", "여자들이 조심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 아니야", "몰카 찍지 말고 성범죄도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이번 사건으로 돌아와서, 해당 기자가 정말 악의적으로 전화를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해당 SBS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더 조심스러워야 했고, 정중해야 했으며 취재원을 고려했어야 했다. 이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트위터리안의 트윗이 아니라 기자와 SBS뉴스의 행동 뿐이다. 또, 이 상황을 더이상 커지지 않게 할 수 있는 것도 기자와 SBS뉴스의 행동 뿐이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이 문제를 제기한 트위터리안의 동의를 받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