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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의 지위가 높을수록, 피해자가 훨씬 더 쉽게 혹은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 대중에게 전가되는 피해가 훨씬 클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조직에서건 간에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해자가 되면, 성폭력을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혹은 그 파문을 은폐하기 위해 일반 대중한테까지 피해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자의 성폭력은 피해자뿐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까지 공격성을 띨 수 있다.

2007년 12월 2일 자 <연합뉴스>는 같은 달 1일 자 <USA 투데이> 보도를 근거로, 7년간 미국 기업들이 성 추문 무마조로 지불한 비용이 최소 2억 9500만 달러이라고 보도했다. 직원 복지나 투자에 사용할 한화 3200억 원 정도가 성 추문 합의금으로 전용됐다는 것이다. <USA 투데이> 보도는 연방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3200억 원은 소송으로 가기 전에 합의한 금액이다. 합의가 안 돼 민사소송으로 간 다음에 지불한 손해배상금액은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기업들이 실제 낸 비용은 이보다 더 많다.

회사 자금이 그런 데 쓰이게 되면 직원을 위한 복지 비용이 감소할 수 있다. 또 투자도 감소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주주가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또 비용 보전을 위해 상품 가격을 인상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손해를 떠안게 된다. 결국, 직원·주주·소비자가 회사의 성추문을 위한 비용을 대신 내게 되는 셈이다.

말단 직원들이 일으킨 성 추문을 해결하고자 미국 기업들이 그만한 돈을 썼을 리는 없다. 성 추문으로 인해 회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위치에 있는 임원들을 위해 썼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임원들의 비행을 덮기 위해 노동자·주주·소비자한테 고통을 전가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성범죄 파문을 공금으로 덮는 사람이 기업 임원이 아니라 정부 고위인사라면, 피해가 국민 차원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특수활동비로 쓰여야 돈이 '특수무마비'로 쓰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성범죄가 자기 국민뿐 아니라 외국인들한테까지 피해를 줄 가능성을 특별히 절감한 이들이 있다. 1999년 당시의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일명 신유고연방) 국민들이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탈퇴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 해체되자, 1992년 세르비아공화국과 몬테네그로 공화국의 주도로 새로 만든 게 신유고연방이다. 

신유고연방에는 코소보 지역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알바니아계 민병대가 있었다. 이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살해하자 세르비아 경찰이 그 이상의 보복을 가했고, 이것은 1999년 3월 미군이 나토군(북대서양조약기구 연합군)과 함께 신유고연방을 공격하는 원인이 되었다(코소보 전쟁).

당시 신유고연방 국민들은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동기를 의심했다. 국제적으로도 동일한 의심이 퍼져 있었다. 이를 근거로 미국을 비난하는 국제여론이 강했다. 르윈스키와의 성 추문으로 곤경에 빠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분위기를 전환할 목적으로 코소보전쟁을 벌인 게 아닌가 하는 비난이었다.

 빌 클린턴.
빌 클린턴. ⓒ 퍼블릭 도메인

전쟁 얼마 전인 1998년 12월, 미국 하원은 클린턴 탄핵안을 가결했다. 1999년 2월, 상원에서는 탄핵안을 부결시켰다. 상원에서 부결됐지만, 클린턴의 위신이 복구된 건 아니다. 파문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클린턴이 엉뚱한 신유고연방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 것이다. 한국외대 김철민 교수의 <동유럽의 민족 분쟁>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공습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지고, 전쟁이 클린턴 대통령의 성 추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비난이 확대되면서, 미국과 NATO는 전쟁 수행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클린턴이 정말로 코소보 주민들의 독립을 돕고자 전쟁을 일으켰을 수도 있지만, 국제사회에는 클린턴이 미국 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고자 일을 벌였다고 비난했다. 동기가 어땠든 간에, 코소보 전쟁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아니라 세르비아와 코소보로 돌리는 데 상당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권력자의 성 추문을 무마하는 데 애꿎은 군대가 동원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국민 혈세가 그런 데 전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도 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성범죄를 범하면 사회적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기도 쉬워진다. 보다 용이하게 욕망을 채울 목적으로 제3자한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다. 그걸 웅변하는 상징물이 서울 올림픽대로 변에 있다. 올림픽대로 하남 방면 광진교 근처에 서 있는 도미부인상이다.

 도미부인상.
도미부인상. ⓒ 김종성

<삼국사기> 도미 열전에 나오는 도미는 백제 개루왕(재위 128~166년) 때 사람이다. 개루왕이 아니라 개로왕(재위 455~475년) 때 사람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열전의 주인공은 도미가 아니라 도미의 부인이다. 이름을 알 수 없어 그냥 도미 부인으로 불린다.

도미 부인의 소문을 들은 백제왕은 왕명을 내려 도미를 다른 데로 보냈다. 그리고 왕실 직원을 동원해 도미 부인에게 만남을 제의했다. 도미 부인은 집까지 찾아온 왕의 요청을 따를 것처럼 하다가, 여자 노비를 분장시켜 그 방에 들여보냈다.

속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왕은 격분한 나머지, 도미에게 누명을 씌워 두 눈을 빼는 형벌을 가했다. 그런 뒤 작은 배에 태워 추방했다. 왕은 도미 부인이 자기를 거부하는 것은 남편 도미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도미한테 해를 끼친 것이다.

그런 다음, 왕은 도미 부인을 강제로 끌어다 놓고는 성폭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도미 부인한테 넘어갔다. 도미 부인은 "월경 때문에 몸이 더러우니 내일 목욕재계하고 오겠습니다"라며 왕을 가라앉히고 궁궐에서 나온 뒤 곧바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렇게 도주한 뒤에 남편을 우연히 만나 고구려로 망명했다고 도미 열전은 말한다. 고구려 사람들이 정착자금을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백제왕은 욕망을 채울 욕심에 공권력을 함부로 동원했다. 물론 왕조시대에는 왕의 사유물과 국가의 공공물이 잘 구분되지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왕이 그런 데다가 공권력을 동원하면 세상의 비판을 받기가 쉬웠다.

거기다가 그는 욕심을 채울 목적으로 도미한테 죄를 뒤집어씌우고 눈까지 빼버렸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성도덕에서 일탈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인명피해까지 입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민간단체건 학교건 기업이건 국가건 간에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성폭력을 행사하면, 피해자뿐 아니라 제3자들한테도 예기치 않은 피해를 줄 수 있다. 미국 기업 사례에서처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권력을 가진 사람의 성범죄는 사회 전체에 대한 중범죄가 될 수 있다.


#성추행#성폭력#미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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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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