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페미니즘 교육을 받았더라면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일이 있었을까? 더 이상의 미투 운동이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성차별적인 학교 문화를 공론화하며,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청와대 앞에 모였다. 이들은 피켓을 들고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 평등 시대적 과제... 학교에선 '여성혐오'가 일상"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페미니즘 교육 실현을 위한 네트워크' 등 여성단체들은 오전 1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교육, 지금 당장!' 기자회견을 열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정책을 제안했다.
이날 사회를 본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 집행위원장은 "초·중·고 학생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21만 3219명이 참여한 것을 보고 감격스러웠다. 성평등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당장 지향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인데 시민들이 힘을 실어줬다"며 " 기존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부터 폐기해야 하며, 1년 1~2시간 페미니즘 교육을 하는 식으로 우리의 뜻이 축소되는 걸 원치 않는다"며 이날 기자회견의 의의를 설명했다.
10대 페미니스트들이 이어서 발언했다. 이육샛별씨는 "인터넷 BJ 들의 여성 비하 발언의 영향으로 주변에서 심각한 수준의 여성 혐오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다"며 "'얼굴이 절구로 빻았다', '얼굴을 쳐다보기 힘드니 화장 좀 해라', '다리가 코끼리 다리 같다' 등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로부터 당하는 언어폭력이 일상"이라고 밝혔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이기도 한 변예진씨는 "선생님께서 성관계를 했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고,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친구를 욕하기도 했다"며 "교직원을 대상으로도 성폭력 예방교육이 아닌, 성폭행·성희롱·성차별 등에 피해 보는 학생이 없도록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이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차별과 억압으로 얼룩진 기존의 성담론을 벗어나 청소년이 성 담론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대 페미니스트와 교사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 솔리씨는 "페미니즘 교육은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며,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전하며 "학교가 일상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성인지적 관점이 반영된 교육을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들은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위해 ▲ 교육과정에 성평등 내용 강화· 교과서의 내용에 성인지적 관점 반영·학교의 제도의 관행을 성평등하게 개선 ▲온·오프라인에서 젠더폭력 예방 ▲ 지역 교육청에 성평등 정책 담당 부서 마련 ▲ 여성가족부가 성평등 정체성 세워나가기 ▲ 포괄적성교육 가이드라인 제정 ▲ 유아 및 어린이·청소년과 접촉하는 직군의 성평등 교육 필수 이수 ▲ 인권과 성평등 등이 '교육 가치'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마련 등의 내용이 정책으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모인 여성들은 마지막으로 "성평등은 생존과 안전, 존엄한 삶을 위한 전제 조건"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성평등을 정책 방향으로 명확히 선언하라"며 이들의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입장과 정책 제안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페미니즘 교육, 인권교육과 통합 추진... 단계적으로 문제 해결할 것"
한편 여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동안, 청와대는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답변했다.
이날 청와대 SNS 방송인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페미니즘 교육은 인권교육과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통합 인권 교육을 부처 간의 협력을 통해 체계적·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여러 부처와 다 같이 모여서 토론을 한 후 그 결과를 종합해 국민소통을 하러 나왔다"며 "최근 미투 현상에서 보듯이 사회전반의 성차별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며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이어 "지금껏 성평등 교육은 양적·질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성교육만 의무이고, 인권교육, 양성평등 교육 등은 의무가 아니었다"고 지적하며 "교육현장에서는 페미니즘 교육이 인권교육이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초중고 인권교육 실태조사'를 재개해서 교육 현장에서의 인권 교육을 본격화하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기존 교육과정에 들어 있는 성평등 및 인권 관련 내용을 분석하고, 정규교과에 인권교육을 어떻게 포함될 수 있을지 논의하겠다고 전했다.
윤 수석은 "논의 과정에 '젠더 전문가'를 포함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인권교육에 관련된 법을 제정하는 것도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인권교육에 필요한 교사 학습자료를 개발하기 위해 예산을 10억 원 정도 투자할 생각이다"라며 교사들의 연수과정·양성과정 등에도 인권교육 등을 넣는 것을 논의하고, 장기적으로는 교과서 개편을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답변을 마치며 윤 수석은 "페미니즘 교육 청원을 해주신 국민들에게 감사드리며, 단숨에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순 없지만, 차분히 단계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이다. 국민이 관심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청원 답변에 대해 '페미니즘 교육 실현을 위한 네트워크'의 김성애씨는 "청와대가 의제를 수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직접적인 문제 제기를, 인권의 여러 문제 중 하나로 축소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인권교육 실태를 조사한다고 했는데, 이는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혐오·차별이라는 '원인'을 분석하는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청소년은 교육을 일방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성평등의 주체이기도 하다.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며 교육을 조금 더 강화하자는 방향은 여성 청소년들이나 페미니스트의 문제의식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