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9일 오영훈 의원을 비롯한 60명의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4·3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최종 개정안이 마련될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 개정시안은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기초했다. 4·3범국민위 법개정특위는 결성 직후인 지난해 4월 2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4차례의 회의와 온라인 토론을 통해 개정안의 방향과 윤곽을 잡았고, 제주(2017. 7. 25)와 국회(2017. 9. 1)에서의 토론회 등을 통해 전면개정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개정안 시안을 제시했다.
이 시안은 상당한 공감을 얻었지만 너무 이상적이어서 통과가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었다. 이후 개정안을 다듬는 일은 주로 제주4·3희생자유족회에 구성된 법률지원단(단장 이석태 변호사)에서 맡았다. 법률지원단은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여러 의견들을 조율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련된 개정안은 11월 초에 유족회와 4·3범국민위,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제주위)의 공동의견으로 오영훈 의원에게 전달됐고, 한 달여의 협의 과정을 거쳐 발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실 18년 전 4·3특별법은 제정 그 자체만으로도 4·3 진상규명운동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과거사 청산의 도정 전체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법에 근거해서 국가위원회가 구성되어 공식적인 진상조사보고서를 내고,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와 평화재단 설립, 평화공원과 기념관 건립으로 이어진 과정은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새로운 전범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상조사법'으로서 4·3특별법의 성과는 이 법의 한계이기도 했다. 진실에 따라야 할 '정의'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정의의 원칙은 가해자에 대한 단죄, 피해의 구제,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정책적 개혁 등을 포괄한다. 실상 법 제정 당시에도 시민사회에서는 진상조사, 명예회복과 더불어 배·보상을 넣을 것을 주장했지만, 여소야대 국회 등의 여건과 우선 진상조사법이라도 제정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후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법의 기본 성격을 진상조사법에서 피해구제법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피해구제의 주요 내용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에 있었던 두차례 군법회의 재판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트라우마 치유센터 건립,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 등이 포함되었다. 개정안에서는 추가적인 진상규명도 중요한 과제로 담았다.
2003년에 나온 진상조사보고서는 사건의 배경과 경위, 전반적인 성격을 다루는 총론적인 성격의 진상만을 담고 있어 마을별, 분야별, 사건별 구체적인 진상은 물론 연좌제 피해를 포함하여 희생자, 유족, 그리고 지역공동체에 남긴 피해들에 대한 각론적인 추가 조사와 보고서가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개정안에서는 기존법에서 사문화된 진상조사 조항을 개정해 진상조사를 계속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고, 위원회의 조사권한을 강화하고 진상조사단을 둘 수 있게 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또한 4·3사건의 해결과정에서 희생자와 유족의 권리, 그리고 집단적 피해자로서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을 담아내고자 했다. 비록 선언적 규정이기는 하지만 잘못된 과거사의 청산과 치유가 국가의 시혜가 아닌 피해자의 권리이며, 피해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집단적 피해자로서 제주도민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는 것은 앞으로 정명의 문제를 포함하여 제주4·3의 완전한 해결로 가는 과정에서 큰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발의는 이루어졌지만 4·3특별법 개정을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을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제시하고 세부 내용으로 '제주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언급했다. 그런데 집권 반년이 지나도록 그 '국민 눈높이'가 어디쯤인지, 어떻게 완전한 해결로 나아갈지 뚜렷한 방향과 원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년 세월호와 촛불 혁명을 경험한 우리 국민의 눈높이는 말만이 아닌 실질적인 진실과 정의를 요구한다. 물론 진실과 정의의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왜곡해서 틀어막으려는 세력도 여전히 만만치 않게 버티고 있다. 앞으로 입법과정을 관장하는 여야정당과 의원들, 그리고 정부에 대한 설득과 함께 4·3을 포함하여 과거사 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법조계, 학계,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각계의 노력이 요청된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이재승 기자는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정책 기획위원장으로 제주4·3희생자유족회 법률지원단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4.3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에서 발행한 <4.370신문>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