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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남자 ⓒ pixabay

최근 미투 운동을 둘러싼 여러 사건이 벌어지면서, 누군가는 "미투 운동이 사람을 죽인다"고 말한다.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의 고발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죽을 만큼' 수치스럽게 만들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투 운동과 성범죄 피해자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오히려 미투 운동은 반대다.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은 남자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린다'. 그게 남성인 내가 페미니즘을 부르짖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그 누구도 성 관련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알아채지 못해도, 우리 인식의 깊은 곳에 가부장제 문화가 스며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남성은 모두 가부장제의 부산물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못하더라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무의식중에 하는 언행이 상대방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성범죄 가해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신의 범죄에 대해 '어색함을 풀어주기 위해',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행위'라는 등의 변명을 한다. 제 딴에는 노력을 한 것이 결과적으로 성범죄였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남성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될 수 있고,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나쁜 놈'이 된다.

2017년 1월, 나는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다. 그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나름 오류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살아온 삶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정말이지 떳떳하게 하늘을 마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나로 인해 상처받거나 스트레스받았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부주의하게 살아온 내 모든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젠더가 아니더라도 권력과 위계가 작용하는 모든 부분에서 말이다. 그래서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는 정말이지 살아가는 것이 힘겨울 정도였다. 살아갈 의지가 거의 바닥났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그 모든 것들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모든 상대방들이 받았을 상처만큼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나 스스로가 은연중에 가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그러나 저항할 수는 있던, 하지만 저항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살아온 삶이 너무나도 허무해졌다. 그래서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생이 통째로 날아간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나는 최소한 세상에 속죄하고, 앞으로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게 내 삶을 바로잡고 싶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사람들이 다 날 미워하고 아니꼽게 보는 것 같아도 페미니즘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멈출 수가 없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였던 나 스스로에 대해 속죄하기 위함이고, 다른 남성들도 이제부터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의 가해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하루라도 그걸 빨리 깨닫는 남성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돌이킬 수도 없이 정말 많은 나쁜 짓을 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된 사람들은, 언젠가 해일처럼 밀려올 피해자들의 고발과 그로 인한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 '미투' 증언을 통해 고발되는 이들의 경우 노골적으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들이 많지만, 우리의 사소한 말에도 그 구조가 녹아있고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박찬욱의 영화 <올드보이>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모래나 바위나 가라앉기는 매한가지"라고.

물론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오직 여성의 문제로만,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만 생각하는 남성들은 지금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남성들은 스스로가 이제라도 살아남기 위해, 페미니즘을 받아들여야 한다. 페미니즘은 오직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남성의 문제다.

가부장제나 연령 주의 등 구조의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성들은 "내 잘못이 아니야. 나도 가부장제를 주입받은 피해자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그 폭력적 구조에 의문을 품지 않고, 저항하려 하지 않은 남성들의 탓이다. 그걸 알고 난 뒤에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모두 지금까지의 삶이 부끄러울 것이다. 그건 당연하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이 잘못된 세상을, 당신들의 삶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투#페미니즘#미투운동#조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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