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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스 룰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차별이 미투운동의 한복판에서 나타나고 있다.
펜스 룰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차별이 미투운동의 한복판에서 나타나고 있다. ⓒ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미투 바람이 대한민국을 휘몰아치고 있는 요즘, 주변 사람들로부터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대학가의 여러 가지 성폭력을 듣곤 한다. 사실 미투라는 이름만 아니었을 뿐 언제나 있었던 일이다. 특히 이런 문제가 민감하다보니 남자 교수가 학생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여학우들을 부르지 않거나, 교수 옆자리에는 반드시 남학우만을 두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심지어 교수가 허튼 짓 하지 못하게 남학생들은 취할만큼 술을 마시지 않는다거나 하는.

팬스 룰이 유행이라는데, 이런 일들의 연장선이 아닐까 한다. 결국 여성은 경계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중요한 자리에서 배제되어 버리는 경우 말이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팬스 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개인적인 신념으로 시작해서 어떤 사회적 현상이 되어버린 용어다. 성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여성을 곁에 두지 않겠다는.

그런데 이런 일들이 정말로 직장 내 성폭력을 줄일 수 있을까? 과연 남자들도 펜스 룰의 수혜자로만 남게 되는걸까? 미국에서도 펜스 룰은 우리나라처럼 성폭력을 피하는 유용한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제도적 측면, 미국은 직장 내 성차별에 엄격하다

 미국은 직장 내 성차별의 문제에 대해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은 직장 내 성차별의 문제에 대해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 Pixabay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미국 사회에서 펜스 룰은 많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정치인 개인의 사적 신념이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이 꽤 퍼져있는 편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헤리스 O. 말리는 '남자를 바보처럼 취급하는 것은 성적 괴롭힘을 없애기에는 잘못된 방법이다'라면서 펜스 룰을 비판한다.

"(펜스 룰은) 어떻게 보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성적으로 부적절한 상황를 제거하고 문제를 제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중략) 성별분리 규칙을 수립한다는 것은 남성이 본질적으로 여성에 대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묵시적인 승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듯이 셰릴 센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역시 펜스 룰을 비판한 바 있다.

"여성 동료와 단둘이 저녁식사를 하고 싶지 않은가? 좋다. 그렇다면 아무와도 단 둘이 식사를 하지 마라. 무엇을 선택하건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우하라."

이런 비판이 가해지고 있는 것은 미국은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해 엄격하기 때문이다. 즉, 미국 사회는 직장 내의 여성차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법과 제도적인 측면에서 방지하는 것이 옳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을 적절한 비율로 묻는 것이다. 단순히 여성을 눈 앞에서 치워버리는 결정은 마이크 펜스가 처음 펜스 룰을 언급했었던 때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시대착오적이다. 오히려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급자가 여직원을 대면하지 않거나, 극단적으로는 여성을 채용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임신 여성에 대한 차별도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임신에 의한 경력단절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인 문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임신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어 이 문제가 자주 법적인 공방의 대상이 되곤 한다.

2009년 출산휴가를 받았지만 월급과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사실상 해고를 당한 여성이 제기한 소송에 대하여 연방대법원이 고용주가 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결을 낸 바 있다. 이 판결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임신차별금지법이 차별에 대한 원고(해고된 여성)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간접적인 증거만으로도 증명될 수 있는 경우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판결에서는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해 고용주의 즉각적이고 적절한 교정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 직원이 다른 남성 동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해 고용주에게 통보하자 4일 이내에 진상조사를 마친 사례가 있다. 이후 해당 직원에게 근신처분을 내림과 동시에 부당행위가 계속 될 경우 해고하겠다는 경고를 내렸다.

다른 동료들은 부당대우를 목격하고도 방관하거나 보고하지 않아 견책을 받았다. 특히 이 부분이 한국에서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여러 창구를 통해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항의할 수 있어야 하고 직속상관이 가해자인 경우 다른 상관을 통해 보고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 말이다. 작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한샘 사건만 보아도 2차 피해에 노출되는 것을 당사자가 걱정해야 하는 게 한국사회다.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펜스 룰이 구식이라고 취급받는 이유는 미국 사회가 어찌되었든 사회적 약자로서의 직장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마련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사례고 미국 부통령이 한 얘기라 그런지 한국에서는 펜스 룰이 설득력을 얻는 모양새지만, 부당한 성차별적 대우를 받았을 때 피해자가 져야 할 책임이 무거운 한국의 상황에서 미국의 일부 사례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부적절하다.

의식적 측면, 펜스 룰은 결국 남성도 갈라치기 한다

 남성끼리 뭉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남성들도 결국 한국사회의 분위기에서는 배제되기 마련이다.
남성끼리 뭉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남성들도 결국 한국사회의 분위기에서는 배제되기 마련이다. ⓒ Pixabay

펜스 룰은 결국 여성을 배제하는 차별적인 결과를 낳는데, 그렇다면 그 룰은 남자에게 이득이긴 할까? 장기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펜스 룰이 유행이라는 기사들 면면을 보면, 여성을 배제하거나 최대한 대면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주체는 주로 권력을 사진 상사다.

룰을 적용하는 주요 사례로 남자들만 회식을 가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미투가 걱정되니까 남성들끼리만 어울리면 문제가 안 생길까? 미국의 여성 비평가 이브 세지윅(Eve Sedgwick)이 도입한 호모소셜(homosocial)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호모소셜은 성별이 같은 사람들끼리의 사회적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이브 세지윅은 그의 저서에서 한 여성을 사이에 두고 두 남성이 경쟁하는 유형으로 나타나는 관계를 분석하면서 이 패턴이 "여성을 남성들을 매개하는 중간항으로 환원시킨다"는 주장을 하는데, 즉 남성의 욕망과 또 다른 남성의 욕망이 부딫치는 그 사이에 여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남성 호모소셜의 핵심은 '남자다움'의 과시다. 그것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소유화하는 과정에서도 일어나지만, 이성애자-비장애인 중심의 남성 무리 안에서의 수직적인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소위 말하는 한국 특유의 '형님문화'는 남성 호모소셜의 예시라고 볼 수 있다. 그곳에 끼지 못하는 남성은 으레 배제되고 '남자답지 못함', '계집애 같음'의 낙인을 받는다. 한국 사회의 남성 호모소셜이 특히 문제인 이유다.

펜스 룰에 따라 직장 내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남자들만 어울리는 관행이 강해진다면, 그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남직원은 또 배제되거나 뒷담화의 대상이 될 것이다. 회식과 같은 모임이 문제가 일어날 여지가 있다면 회식을 점차 줄여나가거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상사가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룰이니만큼 '남자들만 어울리는 모임'을 불편해하는 남성들이 그 자리를 피할 방법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상사 본인만 마음 편하고 아무 문제 안 일어났다고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 펜스 룰이다. 이런 퇴행적인 문화가 2018년의 한국에 갑자기 등장하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해결해야 할 차별의 문제가 너무나도 크다. 말리의 글 중에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끝맺음해본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여성과 단 둘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나는 어떤 행동이 적절하고 부적절한지 그 차이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것에 다름없다."



##펜스룰##임신차별금지법##호모소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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