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에서 군고구마를 팔며
별과 달 함께 한 세상 건너가도 좋다-디카시 <홍콩 템플스트리트에서> 평소 가까이 지냈던 전 명지대 문예창작과 김석환 교수께서 급환으로 별세하신 소식을 들었다. 2016년 정년을 몇 년 앞두고 돌연 명퇴를 하고 영동 고향으로 귀향하여 은거하며 귀촌 산문을 SNS로 연재하며 조용히 지내셨다.
매년 창신대학 문덕수문학관 개관 기념 강연회를 개최하는데, 2016년 제16주년 기념강연회에 강연해줄 수 있느냐고 말씀 드렸더니 흔쾌히 수락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중국 정주경공업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정주에 있었지만 한국으로 와서 같이 행사에 참석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덕수 선생과의 인연과 자신이 살아온 얘기 등을 진솔하게 한 시간 동안 강연하는 것을 학생들과 같이 들었다. 교대에 들어가서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계속 공부를 하여 명지대 박사과정에서 문덕수 선생이 심사위원장으로서 자기 논문을 심사하며 엄청 높이 평가해주고 격려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게 계기가 되어 박사학위를 취득하자마자 바로 명지대 교수로 임용됐다는 에피소드를 곁들이며 문덕수 선생이 모더니스트로서 학자와 시인 두 분야 모두 일가를 이룬 업적 등을 들려 주었다.
김석환 교수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 후에도 전화나 SNS 등으로 안부를 주고 받으며 지내왔는데 느닷없이 부음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도 쓴 글도 읽었다.
"이제 삼월도 하순에 접어들고 얼마 후면 사월이 잔인하게 다가올 것이다. 겨우내 쉬던 땅은 연둣빛 새싹을 틔워 올리고 잠자던 복숭아 가지는 연분홍 꽃을 피울 것이다. 언제까지일지 모르나 계절마다 새롭게 벌어지는 축제의 주역들인 미물들과 더불어 이 산촌에 머물러야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우리네 생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생이다. 지난 20일 난계체험전수관에서 열린 영동문학관 건립간담회에서 지역 문인들과 회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는 보도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문덕수문학관 개관 강연회 때 왜, 아직 정년이 몇 년 더 남았는데 명퇴를 하셨냐고 물으니 거의 40년 가까이 교편을 잡으니 지치기도 하고 호적이 잘못되어 실제로는 정년에 임박했다며 조용히 귀향하여 살고 싶어서 그랬다고.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스스로 물러나 생을 정리하다 하늘의 부름을 받고 홀연히 소천하신 김석환 교수님! 너무 일찍 가셔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지만 하늘의 섭리를 사람이 어찌 다 알겠는가. 한평생 교편을 잡으며 모범으로 후진들에게 스승의 지표가 되어주셨으니 이제 하늘에서 세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영원한 안식의 복락을 누리시리라.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우리 곁을 날아가나이다"라는 시편의 시구를 떠올려 본다. 누구나 길게 산들 한 100미만 살다 훌훌 세상을 떠난다.
홍콩 템플스트리트 인근 노상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노인을 오고 가며 보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떳떳한 생일 것만 같아 오히려 평화스러웠다. 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사람이란 누구나 예외 없이 많이 가지고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더 위태롭고 부끄러운 생이기 십상이라는 그 팩트를 또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한다.
덧붙이는 글 | 2016년 3월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