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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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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농사짓더냐?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1.

아렸을 적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놀던 너의 증조할아버지 이야기다.

가을이면 도토리를 주워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말려놓는다. 기나긴 겨울밤 할머니가 무쳐놓은 도토리묵에 막걸리를 마시고 쓱 수염에 묻은 막걸리를 닦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정겨운 풍경이야. 아버지 고향에서는 도토리를 제아무리 주워 모아도 산짐승 먹이 걱정은 없었지. 그러나 눈이 많이 내리면 사정은 달라지는데,

눈이 아버지 키만큼 많이 온 날, 할아버지는 말려두었던 도토리를 돌절구로 대충 찧어서 들에 나가 눈 위에 짚방석을 깔고 들짐승 먹이로 놓아두어. 하지만 들짐승이 먹이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마을로 내려오기도 하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떤 녀석은 아예 집안으로 들어와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산으로 올라가기도 했어. 고라니가 내려오기도 했고 드물게 노루도 내려왔지.

여름에는 산짐승을 겨울에는 토끼를 곧잘 잡아먹기도 하지만 집안에 들어온 짐승은 절대로 안 잡아먹고 돌봐주었어. 이게 바로 인정이라는 거지.

1.

네가 뵙지는 못했지만 너의 증조할머니 이야기다.

광에 됫박을 가지러 들어갔던 아재가 무엇에 놀랐는지 기겁을 하며 뛰어나와 사랑방 아궁이 앞에 있던 부지깽이를 들고 광으로 뛰어들어가며 '저놈의 쥐새끼'를 연발하는데 보고 계시던 할머니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시지.

"야 이놈아 쥐가 농사짓더냐?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쥐도 생명이여 이놈아."

1.

너의 증조할머니 살아계실 때 사랑채에 함께 살던 군부대 포대장님 이야기다.

홍천 땡떙사단 포대장님이 낚시를 가면 아버지를 항상 데리고 다녔지. 그리고 아버지 키만 한 대낚시를 한 대 쥐여주었는데 지렁이가 싫어서 미끼도 없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포대장님이 가져온 미제 깡통 초콜릿을 핥아 먹기에 바빴어.

포대장님을 따라가면 건빵과 미군 전투식량인 씨레이션을 얻어먹는 재미도 좋지만, 자식이 없는 포대장님의 살가운 보살핌이 마음에 좋았어. 그런데 포대장님은 낚시가 끝나면 앉았던 자리의 쓰러진 풀들을 꼭 자기 손으로 머리 빗듯 빗어서 일으켜 세워놓고 돌아오셨지. 다른 일은 함께 간 부하들을 시켜도 그 일만은 포대장님이 했어. 그리고 물고기들 먹이를 한 주먹 강물에 뿌려주고 짐을 챙겼지.

아버지는 이렇게 훌륭한 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단다. "이분들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시였구나!"라는 생각을 가끔 해.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시를 좋아하는 데는 이분들의 영향이 큰 것 같아.

미필적 고의인가

나석중

잡초에도 생명의 존엄이 있는가

생각 없이 행운이라는 꽃말에
네 잎 클로버를 찾고자
세 잎 클로버를 짓밟고 다닌 적이 있다
세 잎 클로버는 꽃말이 행복인 줄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짓밟은 일이 두세 번은 있다

방죽에 물수제비 띄우며 깔깔 웃을 때
수면 어래 어린 물고기들 얼마나 놀라줬는지
철없이 인생의 행로를 밟아오면서
인식하지 않고 저지른 폭행이 얼마나 될지

생각이 긴 꼬리를 물고 깊어간다

문득
서산 노을을 지고 돌아오는 저녁

북인시인선 나석중 시집 '풀꽃독경'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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