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0년 전 KBS의 탐사 보도는 정치 권력이든 경제 권력이든 추풍낙엽처럼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 장악이 가동되어 KBS 탐사 보도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탐사 보도팀은 이름만 있을 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양승동 신임 사장이 취임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양 사장은 조직 개편을 통해 그동안 탐사 보도 팀을 탐사보도부로 격상시키고 부장에 2010년 KBS 기자협회장을 역임한 유원중 기자를 임명했다. 그래서 탐사 보도부장 소감과 앞으로 탐사 보도를 어떻게 부활시킬 것인지 궁금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유원중 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유 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유원중 KBS 탐사보도부장
유원중 KBS 탐사보도부장 ⓒ 이영광

- 탐사보도부장으로 임명된 지 열흘이 넘었잖아요. 어떻게 보내셨어요?
"제 인사가 지난 13일이었거든요. 그리고 저희 부원들 인사가 지난주에 있었어요. 실질적으로는 지금 일주일이 지난 상태고요. 다들 아시겠지만 탐사 보도 분야는 KBS가 약 10여 년 전에 만들어서 꽃을 피운 적이 있었잖아요. 이번에 탐사보도부가 신설되기 직전에는 작게 탐사팀이라고 있었지만, 그냥 간판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확대된 게 아니라 완전히 없어졌다가 새로 만들어졌다, 또는 과거의 탐사팀이 부활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 10년 동안 KBS 뉴스가 굉장히 암흑기였잖아요. 이것을 재건시키기 위해서는 탐사보도부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데일리뉴스가 살아나야 되는 절박한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저희가 지금은 기자 8명으로 출발을 하고 있고요. 당분간 하반기에는 10명을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탐사 보도라는 먼 항해를 떠나기 위해 지금은 현재 부두에 정박해있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먼 항해를 떠나려면 선원도 충분히 있어야 되고 식량도 준비해야 하는 등 준비해야 할 게 많지 않습니까. 또 탐사 보도라는 것은 취재기자만 있어서 되는 건 아니고 방대한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데이터 분석가, 기자들과 호흡해서 그런 자료들을 모을 수 있는 리서처, 그리고 저희가 한 시간 정도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작가 등 여러 사람이 필요하고요. 또 그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요."

- 몇 명 정도가 필요한가요?
"딱 몇 명이라고 단정해서 얘기할 순 없지만, 10년 전 탐사 보도팀 때에도 최대 12명까지 기자가 일한 적이 있었고요. 당시에도 데이터분석가가 2명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한 기자가 12명-15명 정도 수준은 최소한 되어야죠.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한 달에 한 건 정도씩은 저희가 조금 의미 있는 보도를 터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서 말씀드렸던 데이터 분석가나 리서처들도 5-6명 정도 수준은 갖춰줘야 과거 리즈시절의 탐사를 뛰어넘는 좋은 보도를 시민들한테 전달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탐사 보도부장 제안이 왔을 때 어땠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2010년에 보도본부의 KBS 기자협회장을 했었거든요. 당시 보도본부장이 이번에 해임된 고대영 사장이었어요. 저희가 고 사장을 기자협회에서 퇴출시키는 일도 벌였고요. 그 이후에 저는 사실상 10년 동안에 거의 절반 이상을 보도본부가 아닌 다른 부서를 전전하고 다녔었어요. 그래서 부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이제 조금 늙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취재기자로서 역량을 보이고 그다음에 어떤 보직을 맡는 게 어떨까 해서 사실 부장을 안 맡으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좀 전에 말씀드렸던 그 간판만 걸고 있었다는 탐사팀에서 일하고 싶다고 지원을 했고요.

근데 제가 인사가 났던 바로 그 날 오전에 경영 회의에서 갑자기 팀을 부로 확대하기로 결정을 했고, 그 날 점심때 부장을 맡아달란 제안을 받았어요. 거의 어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부장이 된 느낌인데 다른 데가 아니라 탐사 보도라고 해서 이건 숙명 같은 것인가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 10년 취재를 안 하셨으면 감도 떨어지지 않았나요?
"많이 떨어졌요. 그래서 제가 2014년 안식년이 되어 뉴스타파로 가서 1년 정도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그 일로 왜 KBS 기자가 타 언론사에 가서 일하냐고 감봉이라는 징계도 받았어요, 아시다시피 뉴스타파가 비영리 단체잖아요. 제가 안식년 휴가 기간 교회나 학교 같은 데서 봉사 활동을 하면 그게 무슨 징계감이 되느냐는 생각이었어요. 저는 거의 10개월을 넘게 뉴스타파에서 일 하면서 사실은 방송기자 연합회에서 주는 이달의 기자상도 받았어요. 그래도 이제 보도본부에서 벗어난 기간이 꽤 있다 보니 감을 잃은 것도 사실이라 스스로 빨리 복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10년 전하고 언론환경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저희가 탐사 보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략 10여 년 전 상황은 여전히 언론, 특히 방송이 과점상태의 지위를 누리고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상파 몇 개 언론사가 방송뉴스를 담당하고 있었고 어떤 질적인 부분을 떠나서 저희가 하는 보도가 바로 사회에 큰 파장이나 영향력을 가졌고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죠. 그러나 지금은 잘 아시다시피 종편도 생겼고, 여러 디지털 매체들이 함께 일을 하는 상황이어서 저희도 이제 'ONE OF THEM'이 되는 게 아니냐는 고민을 하고 있죠.

그리고 언론을 소비하는 시청자분들의 패턴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예전이라면 사람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메이저 언론사 중심으로 인지하고, 조금 깊은 정보를 주간지나 주간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더 깊이 있는 정보는 월간지나 월간 스페셜프로그램을 통해서 접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이슈가 터지면 아주 많은 기자가 달라붙어서 파상적이긴 하지만, 보도 초반에 상당히 많이 팩트들이 파편화되어서 나오고 있어요. 예전처럼 진득하게 기다려주는 소비자들이 드물어졌죠.

그리고 이슈가 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파가 된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탐사 보도처럼 장기적인 기획을 한다는 게 한편으론 되게 어려운 상황인 것도 사실이고요. 저희는 그런 것들을 잘 절충해서 이슈에 대응하면서 깊고 정확한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전해드리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 앞서 뉴스타파에서 근무하셨다고 하셨는데 뉴스타파가 이제 경쟁자잖아요.
"당연히 경쟁해야 되죠. 가장 힘겨운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그 뉴스타파를 만드신 김용진, 최경영, 박중석 기자 같은 분들이 KBS 탐사의 산파 같은 역할을 했던 분들입니다. 거기에 또 심인보, 최문호, 김경래 기자 같은 뛰어난 기자들이 합류했고 최승호 선배는 물론이고, YTN에서 해직됐던 선배들도 합류했었고 그 이후에 공채를 통해서 새로 뽑은 기자들도 지금은 실력이 많이 올라와서 탐사에서는 거의 극강이라고 볼 수 있는 진용을 갖추고 있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수백 명의 기자들이 있잖아요. 각 출입처에서 얻어지는 정보가 쌓임으로 저희도 지금부터 잘 재건하면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최근 들어서는 우리보다 앞서서 뉴스 재건에 나섰던 MBC와 SBS, 또 그동안에 지상파 암흑기에 국민들로부터 많은 신뢰와 사랑을 받았던 JTBC도 다 탐사 보도를 수행하는 조직을 만들고 뛰어들고 있잖아요. 우리가 경쟁해야 하는 상대들은 많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저는 서로 경쟁하는 모습도 좋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 같은 언론인이잖아요. 기존의 언론이 받아쓰기 보도, 엘로우 저널리즘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왔었는데요. 우리는 경쟁자이긴 하지만 전체 언론지형에서 탐사 보도를 지향하면서 탐사 보도가 기존 보도조직의 자양분이 되고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해야 되는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체 언론이 본연의 기능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탐사 기자들끼리 또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결국 우리사회에서 언론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는 길이죠."

- 다른 언론사와 차별성은 있어야 하지 않아요?
"기자한테 탐사 보도의 결과물을 낸다는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KBS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공영방송사잖아요. 부족하지만 인력과 예산이 다른 데보다는 나은 실정이거든요. 또 저희 탐사보도부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데드라인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방송날짜나 프로그램날짜나 <뉴스9>의 날짜를 맞춰서 취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취재가 다 되면 그때 방송날짜를 잡거든요, 더 충분한 취재시간이나 리소스 투입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어있어 있습니다. KBS 보도본부의 수뇌부들도 탐사만큼은 우리가 오롯이 탐사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자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저희가 조금 뒤늦게 탐사보도부를 출발시키지만 그런 점에서 다른 언론사와 차별화되는 거죠."

- 탐사 보도가 무너진 이유는 언론장악 때문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요?
"권력의 언론장악이 핵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희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그런 권력에 스스로 부역을 해서 사내에 좋은 보도를 막는 부역 언론인들이 더 큰 문제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례를 들면 최문호 기자가 KBS에서도 일부 보도를 했지만, 수뇌부에 막혀서 뉴스타파로 가 보도했던 훈장 시리즈 같은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훈장 시리즈는 수년간의 법원 간의 소송을 통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했던 훈장의 내역을 전수조사해서 그 훈장이 일부는 친일파라든지, 인권을 탄압했던 수사관들한테 수여됐다는 보도를 함으로써 탐사 보도의 전형을 보여준 거라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 보도를 결국 KBS에서 하지 못해서 바깥으로 들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잖아요.

언론의 기능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큰 축이라고 생각해요. 민주주의가 건강하려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재 권력을 가진 사람, 기득권자들은 여전히 날 선 비판을 하는 탐사 보도를 불편해하죠.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날 선 보도를 들이대는 탐사 보도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언론의 기능을 망각하고 기득권 세력에 편승해서 자기의 이해를 위해서 스스로 탐사 기능을 내부적으로 죽였던 우리 언론인들, 부역 언론인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탐사 보도에 두각을 나타낸 김용진, 김경래, 심인보 기자 등이 오래 전에 퇴사했잖아요. 그래서 KBS 탐사 보도가 약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는데.
"저로서는 매우 가슴 아픈 일인데요. 김용진, 최문호, 최경영, 박중석, 김경래, 심인보 기자는 단순히 KBS라는 조직을 떠나서 대한민국 언론에서 굉장히 보석 같은 기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지금 저희 조직을 떠나있기 때문에 당연히 탐사 보도를 재건하는 데 힘든 점이 있습니다.

다만 뉴스타파 기자들이 배출된 것도 그런 토대를 만든 것 역시 KBS였거든요. 그리고 KBS 안에는 그 분들 못지 않게 훌륭한 기자들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저희가 묵묵히 이 일을 수행하면 그에 못지않은 또 훌륭한 기자들을 배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면 재건하는데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요?
"아까 저희가 지금은 먼 항해를 떠나기 위해서 부두에 정박해 있는 상태라고 얘기했잖아요. 아마 인력도 좀 보강을 하고 예산도 새로 받아야 되고 이런 상황이어서 아까 얘기한 리서처라든지 작가라든지 데이터분석가 이런 분들이 합류하려면 앞으로 한 두 달 정도의 시간은 더 들어갈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탐사 보도의 첫 성과물이 나오는 것은 하반기쯤 되지 않을까 싶고요. 재건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계속 뚝딱뚝딱 만들어 가는 거죠."

- 탐사 보도의 매력은 뭐라고 보세요?
"'뉴스는 당연히 '뉴(NEW)'한 것을 해야 되잖아요. 기자들한테 남이 모르는 새로운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매력이에요. 근데 그 '뉴'한 팩트가 밝혀지는 것을 막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에요. 불편한 진실 같은 게 있는 거거든요. 그런 것들은 많은 외압을 받게 되는 거죠. 하지만 기자가 그 장애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서 결국 내가 알고 있던 새로운 팩트를 시청자들한테 전달할 때 느끼는 쾌감이 있거든요. 거기에 사명감을 바탕으로 하면 더 좋은 것이고요. 탐사보도부에 있던 일반 취재부에 있던 탐사의 맛을 안 사람들은 탐사를 지향하고 탐사를 꿈꾸고 늘 취재현장에서 탐사하듯이 보도를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 앞으로의 각오 한마디 해주세요.
"급하게 서두르지 않을 거고 천천히 묵묵하게 가겠습니다. 탐사 보도는 KBS에서 부장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탐사보도부원들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탐사가 보도본부에 자리 잡고 있음으로써 여러 기자가 탐사보도를 경험할 수 있고 다시 다른 부서로 돌아가서 탐사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꾸준히 기존 조직에 신선한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언론이 제 기능을 오롯이 수행할 수 있도록 제 자리를 지키면서 건강한 자극, 건강한 자양분을 저도 받고 또 남들한테도 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유원중#KBS 탐사보도#뉴스타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