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방미 첫날인 22일 (미국 현지시각) 옛 주미대한제국공사관(아래 주미공사관)을 방문했다. 지난 2012년 문화재청이 매입한 주미공사관을 방문한 역대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이날 오후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주미공사관을 방문해 전시실 등을 둘러봤다. 주미공사관은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던 백악관에서 약 1.5km 떨어져 있다. 문 대통령 부부는 박정양 초대공사의 손녀인 박혜선씨, 이상구·장봉환 서기관의 증손인 이상구·장한성씨 등 공관원 후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와대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889년 2월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양국가에 설치한 외교공관이다"라며 "조선 후기 동북아시아의 구질서를 극복하고 더 큰 외교적 지평을 열고자 했던 고종의 자주·자강외교 정신을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이번 공사관 방문은 올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36주년 및 한미 동맹 65주년을 기념해 한미 양국의 역사와 우정을 부각하고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수교한 지 7년 만에 공사관이 설치되다주미공사관은 대한제국 시기인 지난 1889년 2월 미국 워싱턴D.C. 아이오와서클(현재의 로건서클) 13가 1500번지에 설치됐다. 지난 1882년 5월('조미수호통상조약') 미국과 수교한 지 7년 만이었다. 2년 뒤에는 2만 5000달러에 이 건물을 사들였다. 공사관 건물은 원래 지난 1877년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고 외교관인 세스 펠프스(Seth L. Phelps)의 저택으로 건립됐다.
초대공사에는 '실무형 개혁파 관료'로 평가받는 박정양이 발탁됐다. 박정양 초대공사는 한성부 좌윤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협판 등을 거쳐 지난 1887년 8월 초대 주미공사에 임명됐다. 귀국한 후에는 내각 총리대신 등을 역임했고, 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을 <미속습유(美俗拾遺)>와 <미행일기(美行日記)> 등에 남겼다.
공사관 서기관으로는 이상재와 장봉환이 근무했다. 이상재 서기관(호 '월남')은 박정양 공사가 초대 주미공사로 파견됐을 때 동행했다. 귀국한 후에는 독립협회 부회장, 신간회 초대 회장을 지내는 등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벌였다. 주미공사관 1등서기관으로 근무했던 장봉환 서기관은 지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에는 의병으로 봉기했다.
주미공사관은 지난 1893년 개최된 시카고박람회 참가 준비 등 16년간 대한제국 외교활동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지난 1905년 11월 을사늑약('한일협상조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면서 공사관의 기능도 중지됐다.
게다가 일본은 지난 1910년 9월 5달러에 공사관 건물을 강제로 사들인 뒤 한 미국인에게 10달러에 팔았다. 미국인에게 넘어간 뒤에 공사관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아프리카계 군인들의 휴양시설, 화물운수노조 사무실, 개인주택 등으로 사용됐다. 지난 1972년 6월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은 주미공사관이 위치한 워싱턴 로건서클을 '역사지구'(Historic District)'로 지정했다.
113년 만에 주미공사관에 태극기가 게양되다
주미공사관 건물의 비극적 운명이 알려지면서 지난 2003년 미국 이민 100주년을 맞이해 재미교포사회에서 공사관을 매입하려는 움직이 있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결국 문화재청은 정부 차원에서 매입하기로 하고 문화유산국민신탁을 통해 소유자인 젠킨스 부부(Timothy L. Jenkins, Lauretta Jenkins)와 협상을 벌였다.
결국 이명박 정부 시기인 지난 2012년 10월 문화재청에서 350만 달러(39억5000만 원)를 들여 주미공사관 건물을 다시 사들였다. 주미공사관 건물을 일본에 빼앗긴 지 102년 만이었다. 이어 지난 2013년 12월부터 올 2월까지 공사관 건물 보수와 복원공사를 진행해서 3월 12일 준공한 뒤 이날 오전 10시 30분 재개관식을 열었다.
이날 재개관식에서는 지난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당한 지 113년 만에 국기를 게양하는 행사가 열렸다. 국기 게양자는 주미공사관 초대 서기관이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의 증손인 이상구씨가 맡았다.
주미공사관은 전 세계에 있는 한국 근대 외교공관 중 원형을 간직한 유일한 단독건물이고, 미국 워싱턴에 남아 있는 19세기 외교공관 중 내·외부의 원형이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