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업자 A아무개씨는 지난해 3월 은행에서 연 8.6% 이자율로 3000만 원의 담보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해당 은행이 대출해줄 때 담보가 있음에도 없다고 기록했다. 결국 신용프리미엄이 정상(1.0%)보다 2.7%포인트 높은 3.7%로 적용됐고, 은행은 지난달 31일까지 96만 원의 이자를 추가로 받았다.
대출하는 사람이 담보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담보를 받지 않았다고 전산에 입력한 뒤 높은 이자를 받아내는 등 불합리하게 대출이자를 받아낸 시중은행들이 금융감독원에 적발됐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은행 이자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취약가계나 영세기업이 부당하게 차별받는 경우를 포착하면 곧바로 현장 점검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21일 금감원은 서울 영등포구 본원에서 '은행 대출금리 산정체계 점검결과(잠정) 및 향후 감독방향'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설명했다. 이날 오승원 금감원 부원장보는 "지난 2~3월 동안 9개 국내은행을 대상으로 '대출금리 산정체계' 적정성 점검을 실시했다"고 밝히면서 그 결과를 공개했다.
신한·국민·하나 등 9개 은행 점검... "적발 은행 밝히기 어려워"이번에 금융당국이 점검한 은행은 신한·국민·하나·우리·SC제일·한국씨티은행과 농협은행, 기업은행, 부산은행 등이다. 오 부원장보는 "은행들이 대체로 '대출금리 모범규준'에 따른 대출금리 산정체계를 회사 내규에 반영하고 이에 따라 대출금리를 산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일부 가산금리 산정·부과 및 우대금리 운용 등이 합리적이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며 "일부 은행에서 금융소비자에게 부당하게 높은 금리를 부과한 사례 등을 확인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다만 금감원은 관련 결과가 잠정적인 것이어서 적발된 은행들이 어느 곳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오 부원장보는 "금감원 내부규정 등에 따라 익명 처리해 발표할 수밖에 없다"며 "은행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내부적인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적발한 사례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 번째는 신용위험 수준을 나타내는 신용프리미엄을 주기적으로 정하지 않고 몇 년 동안 그대로 둔 경우다. 은행들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 정한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이자를 결정한다. 이때 가산금리는 대출자의 소득이 높아져 신용도가 올라갈 경우 이전보다 낮아져야 하는데, 몇 년이나 가산금리를 그대로 두거나 합리적인 이유 없이 올린 사례들이 나왔다는 얘기다.
이자 낮춰달라 요구하자 우대금리 줄인 경우도 두 번째는 금리인하요구권에 따라 대출이자를 낮춰주면서 기존 우대금리를 축소시킨 경우다. 대출을 받은 사람은 신용도가 좋아지면 이자율을 내려달라고 금융회사에 요구할 수 있다. 이때 일부 은행에서는 대출자에게 적용해주던 우대금리를 이유 없이 축소시켜 결과적으로 금리가 이전보다 낮아지지 않게 했다는 것이 금감원 쪽 설명이다.
예를 들어 대출을 받을 때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하거나, 자동이체를 신청하면 대출이자를 조금 낮출 수 있는데, 은행이 금리인하요구권을 받게 되자 이런 혜택을 슬그머니 줄였다는 얘기다.
세 번째는 고객의 소득정보를 과소 입력해 부당하게 높은 이자를 받은 사례다. B은행의 일부 영업점에서 고객의 소득이 있음에도 없다고 기록하거나, 제출된 자료보다 소득을 적게 입력해 더 많은 이자를 받아낸 경우가 다수 발생했다고 금융당국은 설명했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실제 피해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연 소득 8300만 원인 직장인 C아무개씨는 지난 2015년 11월에 B은행에서 연 6.8%로 5000만 원을 대출 받았는데, 알고 보니 은행이 C씨의 소득을 0으로 입력해 이자를 추가로 받아냈다는 것. 하지만 C씨는 지난해 11월 빚을 모두 갚았다.
금감원이 적발한 네 번째 사례는 은행이 내부 전산시스템에서 정해져 있는 이자가 아닌 은행 내 최고이자율을 적용한 경우다. 금감원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D아무개씨는 지난 1월 한 은행에서 2100만 원을 대출 받았는데, 은행이 전산상 정해진 금리 연 9.68%를 적용하지 않고 최고금리 연 13%를 적용했다. D씨는 지난 5월 말까지 28만 원의 이자를 추가로 부담했다. 마지막으로 금융당국이 적발해낸 사례는 은행이 담보를 받고도 없다고 기록한 뒤 추가 이자를 받아낸 경우다.
"3~5번째 사례 피해 소비자는 이자 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에 따라 오 부원장보는 "부당하게 높은 이자를 부과해 소비자 피해를 유발한 사례에 대해서는 은행이 자체 조사한 뒤 환급 등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금감원이) 환급 여부를 직접 언급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3~5번째 사례의 경우 은행들 스스로도 환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가산금리 등을 시장 상황과 경영목표를 반영해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대출금리 산정에 관한 모범규준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최소 연 1회 이상 신용프리미엄을 재평가해 변경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또 우대금리 등에 대해선 소비자에게 상세명세서를 제공해 충분히 적용 이유를 설명하고, 변경과 관련한 기록과 관리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부연했다. 이때 개별 은행의 특성과 자율성도 보장될 수 있도록 금융위원회·금감원·금융연구원·은행권 공동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보완 방안을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금융당국은 밝혔다.
이와 함께 오 부원장보는 "가산금리 변동현황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며 "특히 취약가계나 영세기업의 신용위험이 과도하게 평가돼 불공정하게 차별받는 사례가 포착되는 경우 즉시 현장 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