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교사로 5년을 지내다 서른여섯 살에 '선생님' 대신 '여행자' 신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좌충우돌 정신 없는 여행이 되겠지만, 타박타박 천천히 걸어가려고 합니다. 이 여행의 끝에서 조금은 너그러워진 나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살며시 꺼내어 봅니다. 언젠가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어릴 적 제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고, 지금 제 꿈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여행이 제 꿈에 한 발 다가서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말] |
첫날밤 첫날밤 두 사람의 첫날밤
눈 깜짝하면 싹 사라질 것 같은 밤실감 나? 너랑 나 둘이 같이 한 평생약속해 빨갛게 물든 뺨 위로 살짝- 가을방학 & 김재훈 <첫날밤>첫날밤의 마음같은 걸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불안함이 얼굴에 홍조로 나타는 것이 낯선 여행지에서 밤새 뒤척이고 새벽 미명에 창문을 열어 풍경을 바라볼 때의 마음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 머무를 때는 떠나는 것을 그리워하고 떠날 때에는 눈 깜짝하면 다시 돌아올 시간을 걱정하고 여행을 하면서는 자꾸 두고 온 그곳과 비교하며 그리워한다.
새벽 5시 뉴욕 롱아일랜드 시티의 숙소 베란다에 섰다가 한겨울 칼바람처럼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에 깜짝 놀라 온도를 확인하니 영상 18도. 호스트 수잔 할머니는 어젯밤 내게 요즘 너무 덥다고 에어컨 작동법을 한참 동안 설명해줬는데, 정작 나는 이불을 돌돌 말고 애벌레처럼 잠들었다. 한낮의 뉴욕은 어떤지 모르지만 낯선 새벽 공기는 내가 호치민을 떠나 멀리 다른 나라에 왔음을 가감 없이 알려준다.
2016년 시작된 나의 여행기는 지금도 북유럽 캠핑카 속에 머물러 있다. 나를 태운 캠핑카는 독일을 출발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를 돌아 다시 독일로 돌아왔고 나는 다시 서유럽과 남유럽을 여행하며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를 따라 돌았고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까지 한겨울의 동유럽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타박타박 계속 걸었다.
두바이를 거쳐 네팔에서 혼자 ABC에 올랐고, 언제가도 좋고 갈 때마다 싫은 인도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세트메뉴처럼 받아 먹고 다음 도착한 곳이 베트남 호치민이었다.
여행이 현실의 삶으로 바뀌자
4박5일 일정으로 왔던 호치민에서 우연히 일을 시작했고, 다시 2개월이라 생각했던 그 일이 나를 교육법인 대표로 만들어서 베트남에 거주증까지 발급 받아 내 여행이 현실의 삶 속으로 뿌리 내리게 해주었다. 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는 그 시간의 간극을 잇지 못하고 그러는 사이에 툭 끊어졌었다.
여행이 현실의 삶으로 바뀌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새로 맺게된 인연들과 매듭이 풀린 인연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가라앉지 않기 위한 수면 아래 발버둥을 시작했다.
하지만 못하는 것도 잘해야 했고 안 해도 되는 것도 잘해야 했고 싫은 것도 잘해야 했던 그 버둥거림과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잘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정말로 잘 해야만 했던 그 버둥거림은 달랐다. 호치민에서의 삶은 발차기의 연속이었다. 아이들과 책 읽기를 시작했고, 어른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여러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도 굶어 죽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게요. 행복하게 살아도 된다는 걸 보여줄게요." 학교를 떠나기 전 마지막 종례 시간에 우리반 아이들에게 했던 이야기다. 24시간 중에서 25시간을 책상에 앉아 공부하던 특목고 아이들에게 나는 과연 좋은 선생님이었나.
삶이 얼마나 엄숙한지 모르는 30대 교사의 치기어린 말이었을지 모른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그때 그 아이들이 지금도 소식을 전해오는 걸 보면 어른들 눈에는 건방진 인생이었겠으나 아이들에게는 작은 울림이 되었나 보다.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표가 꼭 반드시 삶의 질로 연결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도 보편적으로는 그러할지 모르겠다.
다만 내신 경쟁에서 밀려난 아이들이 승자의 바람대로 도태되지 않고 씩씩하게 어른이 되어 어떤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지 지켜보면서 나는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란 걸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아이들처럼 내 선택이 도태가 아니라 도전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교장 선생님보다 아이들이 언제나 더 큰 스승이다.
산다는 것과 여행한다는 것
호치민의 생활은 당연히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개인사업자가 되자 출퇴근은 시간은 사라졌지만, 그 말은 24시간 출근 상태라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좋은 수업을 할 수 있고,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사람들에게 더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애정결핍에 딸려오는 인정욕이 아니라 삶의 최전선이라는 사업 현장에서 태권도 흰띠를 맨 신입생이 검은띠의 유단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고 인정이었다. 그렇게 현관문 밖도 제대로 나가보지 않고 1년을 보냈다.
나는 호치민에 15개월을 살았지만 호치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가끔 여행오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먹고 갔다는 쌀국수 가게도 나는 모르고, 콩다방에서 판다는 코코넛 커피도 어느 콩다방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아는 것들이 있다. 컴퓨터 부품은 어디서 사야 하는지, 철물점은 어디에 있는지 안다. 핸드폰 요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자장면은 어디가 맛있는지 안다. 한국 소주를 싸게 파는 집도 알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산다는 것과 여행한다는 것이 뭐가 다른지 나에게 묻는 일이 잦아졌다. 한국에 갈 일이 거의 없지만 한국 유심과 베트남 유심은 동시에 있어야 하고, 베트남에서만 지내지만 미국 달러와 베트남 동과 한국 원을 섞어서 쓰고, 여행하면서 생긴 빚에 사업한다고 만든 빚이 더해진 한국 통장을 보며 한숨 쉬면서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 또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지 자주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네팔에서 혼자 ABC를 오를 때 마음 속에 새기고 갔던 안전수칙이 딱 하나 있다. '피곤하기 전에 쉬고 허기지기 전에 먹어라.' 이것만 지키면 고산병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해발 4200미터를 올라가는 ABC 코스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겨울 성수기에는 사람도 많고, 등산로가 하나 밖에 없는 데다 길도 매우 좋아서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건 고산병이다.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약을 먹어도 뚜렷한 예방책은 없고 치료법은 즉각 하산해서 고도를 낮추는 것이 최고다. 다른 방법은 없다. 무리해서 올라가면 그때는 심각해진다. ABC를 가면서 생사를 가르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여행객 입장에서는 정해진 일정에다가 바로 앞에 정상을 두고 남들 다 올라가는데 나만 못 가는 것이 억울해서 무리하다 보니 사고가 난다.
'피곤하기 전에 쉬고 허기지기 전에 먹어라'
'피곤하기 전에 쉬고 허기지기 전에 먹어라'는 말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늘 예민하게 확인하라는 말이다. 쉬운 말처럼 들리겠지만 막상 산행을 하면서 저 한 문장을 지키는 것이 산을 오르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이 다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아침은 언제나 굶었고 배에서 천둥이 치는 시간이 되어서야 급하게 점심을 먹었다. 배에서 밥 넣으라고 소리치지 않으면 저녁도 그냥 보내기 일쑤였다. 잠은 언제나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깨어있다가 쓰러지듯 잠들었고 아침 알람 소리에 소스라치며 일어났다.
그렇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라 배우며 살아온 나에게 '피곤하기 전'의 느낌이 어떤 건지 나는 몰랐다. '허기지기 전'이란 것도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내 마음과 내 몸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혼자 걷는 여행이다.
호치민에서 여행도 아니고 일상도 아닌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진짜 여행 온 사람들을 보면서 몇 가지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진짜 여행을 온 사람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고 볼 수 있는 것을 모두 보고 먹을 수 있는 것을 모두 먹자고 생각한다. 내가 살던 곳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무엇을 찾고 보고 느끼자. 맞다. 그게 여행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오늘 하루를 보내는데 촉을 바짝 세우는 것이 여행이다.
반대로 일상을 지내는 사람들은 항상 오늘이 아닌 내일을 바라본다. 오늘 못해도 내일이 있으니까. 꼭 지금은 아니어도 되니까. 지금 안 한다고 영원히 안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지내면서 나는 서울에 사는 10년 동안 한강 유람선을 타보지 못했다. 호치민에서 사는 1년 동안 메콩강 투어를 가보지 못했다. 굳이 비싼 돈을 내고 거길 가서 불편한 배를 타고 그 낯선 풍경을 마주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호치민에서 1년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여행하듯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은 오늘과 닮은 내일이 있지만, 삶은 이번 생 말고 다음 생이 없다. 몇 달 아니 몇 년을 벼르다가 힘들게 만든 휴가를 이용해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처럼 매일 눈 뜨는 하루를 오롯하게 보내는데 촉을 바짝 세우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여행을 멈춘 호치민에서 나는 더 먼 여행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성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수업을 했다. 얼만큼의 수강료를 받고 인문학 수업을 시작하던 날의 두려움과 떨림은 직장을 그만두고 카자흐스탄행 비행기에 오르던 그날과 다르지 않았다.
사는 것과 여행하는 것의 차이는 뭘까? 눈 깜짝하면 샥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두 뺨이 빨갛게 물들 정도로 설레는 마음이 생긴다면 사는 것과 여행하는 것은 곧 같은 말이 아닐까? 산다는 핑계로 미뤄놨던 글쓰기를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데리고 와본다. 뉴욕은 어떤 곳일까? 뉴욕에서 조금 살아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