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차량 화재로 피해를 보고 있는 BMW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정부에 화재 원인 조사와 관련해 선택과 집중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소프트웨어 조작 여부에 대한 조사가 아닌 자동차 주행 시험을 요청했다.
16일 BMW 피해자 모임과 이들의 법률대리인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바른 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화재 원인 규명 시험과 관련해 요청사항 5개를 발표했다.
첫 번째는 불이 가장 많이 난 520d 차량의 스트레스 시험이다. 사고 차량 대부분처럼 불이 날 때까지 에어컨을 켠 채로 장거리 고속 주행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량 엔진룸 내에는 미리 내화(耐火) 카메라와 열감지 적외선 카메라를 설치하고, 화재 발생 직후 불길을 진압하고 차량을 분석하자는 취지다.
두 번째는 지난 12일 인천의 한 자동차운전학원 앞에서 대기 중에 불이 난 120d 차량과 같은 조건으로 실시하는 시뮬레이션 시험이다. 사고 차량인 120d는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켠 채 대기 중인 상태에서 불이 났다. 화재 발생 위치는 엔진룸에서 불이 시작된 다른 차량들과 달리 조수석 앞의 실내 사물함(글로브 박스) 쪽이었다.
이에 피해자모임은 제작사에서 지목한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모듈의 결함이 아닌 또 다른 결함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발생한 BMW 차량들의 화재 원인으로 전기배선의 결함과 전기적 과부하가 판명돼 대규모 리콜이 실시된 전례가 있다"면서 사고 차량과 생산 연도가 같은 동일 차종에 대한 시뮬레이션 시험을 요청했다.
셋째는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에 화재 원인 분석을 의뢰하는 것이다. 피해자모임은 "NTSB는 자동차, 항공기, 열차, 선박 사고 원인 분석에 관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기관"이라며 불이 난 차량 중 화재 원인 불명으로 판명된 1대를 선정해 분석을 요청하라고 요구했다.
네 번째는 유럽용 판매 차량과 국내용의 EGR 모듈 비교다. 피해자들은 "전 세계 판매된 리콜 대상 차량에 같은 EGR 모듈이 장착됐다"는 제작사 주장을 확인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확인을 위해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는 코드명 F10의 구형 520d를 구매한 뒤 분해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은 국토부의 화재 원인 규명 시험 계획 공개다. 하 변호사는 "국토부에서 차량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여러 가지 시험을 실시하며 올 연말까지 결과를 내겠다고 했지만 어떠한 시험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면서 "국민적 불안 해소를 위해서라도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은 주행시험"
이어 그는 "차량에 적용된 소프트웨어만 수백만가지가 넘는데, 이것을 모두 확인하고 연말까지 원인 규명을 마치겠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화재의 원인과 제작사의 결함은폐 의혹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주행시험이다"라고 강조했다.
하 변호사가 소프트웨어 조작에 대한 조사가 불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앞서 환경부에서 실시했던 실제 도로 주행 시험에서 BMW 520d의 배출가스(질소산화물)량이 가장 적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9월, 환경부는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임의설정이 드러난 디젤게이트 사건때문에 제작사의 대표 차종을 대상으로 임의설정 적용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실제 도로에서의 질소산화물 배출가스량을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실제 도로 주행에서 BMW 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실내 인증기준인 0.08g/km보다도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는 "실외 도로시험결과 BMW 520d 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킬로미터 당 0.07g으로 가장 적어 유일하게 기준을 통화했으며 이때 제작사는 이를 매우 뿌듯해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면서 "이것이 제작사에서 소프트웨어 조작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시험 결과가 BMW 차량의 EGR 모듈 과부하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실내 주행 시험에서처럼 실제 도로 주행에서도 배출가스량이 적으면 소프트웨어를 통한 조작이 아닌, 하드웨어의 작동이 과도하다는 뜻이다. 하 변호사는 "밸브를 통과하는 고온의 배기가스량이 더 많거나, 침전물을 태우는데 더 많은 스트레스가 가해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하 변호사는 닛산 캐시카이에 적용된 저압 EGR에 적용된 플라스틱 재질과 배출가스 온도를 언급하며 "BMW에서 고온의 배출가스와 플라스틱 재질의 내연성에 대한 상관관계를 모를리가 없다"면서 제작사의 결함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또, 환경부의 미흡한 대응도 비판했다. 환경부가 차량의 배출가스와 관련된 인증 및 시정조치(리콜)를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엔진의 연소실에서 연소된 뒤 나오는 배출가스 온도가 매우 높다는 것은 이미 폴크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사건을 통해서도 파악이 된 사항인데, (제작사 쪽의) 변경인증과 리콜 등 여러 차례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라고 질타했다.
BMW 피해자 모임은 이날 기자회견 직후 이 국무총리와 김 장관 쪽에 5개 항의 요청사항을 담은 공개요청서를 전달했으며 오는 22일까지 수용 여부에 대한 답변을 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국토부와 BMW가 이날 오후 밝힌 긴급 안전진단 완료 차량은 16일 밤 12시를 기준으로 약 9만 1000대이다. 전체 10만 6000대 가량 중 90%가 이 서비스를 받았으며 9700대 정도가 예약 대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