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로 입건된 이는 321명이었다. 그리고 이중 1명이 기소됐다. 재판을 받게 된 그 한 명에게 법의 심판이 내려질까? 그렇게 되면 '0.3%의 정의'가 이뤄지는 셈일 텐데, 현재로서는 그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피해자가 스스로 얼굴까지 공개하며 고발한 드문 사건에서조차 재판부가 피고인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정무비서를 지낸 피해자는 고발 이후 사건에 대해 매우 일관된 진술을 해왔다.
피해자는 비정규직이었다.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별정직 공무원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상사 말 한 마디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그의 상사는 피해자의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결정할 힘을 지니고 있었다. 폐쇄성으로 이름 높은 한국 정치판에서 윗사람에게 '찍히는' 것은 곧 미래가 막히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2011년에 121건이었던 입건자 수는 5년 뒤인 2016년에 2배 반 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생 건수'가 아니라 '입건자' 수 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전체 성폭력 사건의 신고비율은 10% 정도로 추정되는데, 범인이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면 신고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위력 성폭력 입건자 수가 물 위로 드러난 꼭지라면, 수면 아래 얼마나 큰 숫자가 감춰져 있을지 생각해 보라. 그 숨은 숫자를 분모로 놓고, 기소된 한 명을 분자로 놓으면, 대한민국 '사법정의'의 몰골이 수치로 드러난다.
안희정 사건은 그 빈약한 분자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다. 신고율도 낮은데 거기서 소숫점 이하의 비율만이 재판을 받고, 그중에서도 유죄판결을 받는 사람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안희정 재판 1심은 '신고해봐야 소용없다'는 인식을 견고하게 만들 우려가 크다.
폭등해 온 '위력에 의한 성범죄'
통계는 일자리가 불안정한 사람일 수록 성폭력에 쉽게 노출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쉽게 노출될 뿐 아니라, 발생한 성폭력을 고발하기도 어렵다. 악화일로에 있는 한국의 고용불안이 법 질서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런 현실에서 법원이 보이는 태도는 안이하기 짝이 없다. 안희정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해자가 '싫다'거나 '안된다'고 거부의사를 밝혔어도, 현재의 법 체계로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선고문을 보자.
"설령 피해자의 진술처럼 피해자가 업무 상 상급자인 피고인의 성관계 요구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동의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고, 통상적으로 볼 때에는 거부나 저항의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거절하는 태도를 보인 바 있었으며, 피해자의 진정한 내심에는 반하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 성폭력범죄의 처벌체계 하에서 이러한 사정만으로 피고 인의 행위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 성폭력범죄라고 볼 수도 없다."
명줄을 쥔 권력자 앞에서 동의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채,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아닌데요, 아니에요'라고 말해도 "통상적으로 볼 때" 거부나 저항이 아니며, 따라서 성폭력 범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일어날 위력에 의한 성폭력 대다수는 현행법상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설명하듯, 유사한 사건들이 빠르게 증가해 왔음에도 법원은 제대로 된 판례하나 만들지 못했다.
사법부가 스스로 밝혀 온 역할은 '법의 확립을 통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보장'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고통에 뒷짐진 법원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안타깝지만 무죄?'
법원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헌법기관"이다. 다시 말해, 법원의 역할은 법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수동적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적용하기 위해서는 항상 해석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안희정 재판부는 '법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성폭력 관련 처벌규정에 관한 체계적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현행법상 구성요건에 대한 엄격한 해석에 기초해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이 있어도 처벌하지 못하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형법 제303조를 보자.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짧은 문장이지만, 해석의 여지는 대단히 넓다. 여기서 '위계(僞計)'는 '거짓계략' 즉 상대를 속이는 행위를 의미하므로 해당 사건과 무관하나, '위력'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가 온전히 재판부의 손에 달려있다.
안희정 재판부는 말, 표정, 몸짓으로 거부의사를 표했어도 '통상적인 거부나 저항'이 없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통상적 거부'가 될까?) 법적 구성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법에는 법에는 '거부'나 '저항'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이 없다. 이것은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해석'한 내용일 뿐이다.
여기서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간음'을 '강간'과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법원은 강간의 판단에서 '폭행 또는 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것이어야 하고...'라는 판례를 적용해 '적극 저항해야 강간'이라는 인식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안희정 재판은 폭력과 협박이 필요한 '강간'이 아니라 '위력을 이용한 간음'에 대한 것이다.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적극 해석'한 재판부
그렇다면 대체 '위력'이란 무엇일까? 대법원 판례를 보면 "자유의사를 제압·혼란케 할 만한 일체의 유형·무형의 세력으로, 폭행·협박은 물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도 이에 포함된다"라고 밝히고 있다(대법원 2007. 6. 14. 선고 2007도2178 판결).
특히 위력에 의한 성폭력 판결에서 대법원은 '위력'의 의미를 매우 넓으면서 엄격하게 적용했다. 이에 따르면, 폭행·협박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한 경우도 포함되며, 위력 행위 자체가 추행 행위라고 인정될 수도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위력은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것임을 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사실이다(대법원 1998. 1. 23., 선고, 97도2506, 판결).
안희정 사건에서 재판부는 '나를 안게'라고 말하고 피해자가 거부하자 일방적으로 끌어안은 행위를 놓고 "이 행위 부분을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한다. 재판 과정을 보면 이런 식의 해석과 판단이 넘쳐난다.
예컨대 피고인이 "담배 좀"이라고 문자를 보내자 피해자는 "네"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나 화장실"이라고 문자를 보낸다. 이때 피해자는 "피시고 싶으실 때 말씀해 주세요"라고 답하고, 피고인은 다시 "오냐"라고 답한다.
한 경우는, 피고인이 "내 담배 좀"이라고 문자를 보낸 뒤 다시 "어허. 문자 안보네"라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첫 문자 후 4분 뒤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자 피해자는 "비서실장과 밖에 있어서요. ㅠ 들어가면 바로 담배 챙겨서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이 사실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권위적이라거나 관료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하고, 기본적으로 참모진과 소통하는 정치인으로서의 태도를 취해왔던 것으로 보인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비록 단문으로 지시했지만, 경우에 따라 "고생했어요 / 감사합니다 / ~가요 / ~줘요'와 같이 나이와 직급이 낮은 피해자를 존중하는 표현도 종종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극적 거부와 저항이 없어 처벌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린 재판부는 법을 좁게 해석하고 적용한 게 아니라, 그릇되게 해석하고 적용했다는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위력 성범죄,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 가능
개인의 담배 심부름까지 시키며 '나 화장실'까지 언급했던 피고인이 '권위주의적이지 않았다'는 재판부가 판단한 '위력'을 믿을 수 있을까. 대체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난 8월 24일에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고 후 국민들 45%가 '잘못된 판결'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잘된 판결'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6%에 지나지 않았다.
여론으로 재판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법원이 사회의 '법 상식'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기 충분하다. 재판부는 '사회 전반의 성문화와 성 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라는 논평까지 내놨지만, 오히려 변해야 할 것은 법원의 인식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폭행과 협박'을 요구하는 한국의 강간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피해자의 성적 결정권을 심각히 침해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법에서 '강간'이라는 말까지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관련 기사:
일단, '강간'이라는 말부터 없애자). '항거'를 요구하는 낡은 판례도 폐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행법으로 안희정 사건은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재판부는 법을 탓했지만, 1995년에 만들어진 법을 놓고도 20년 넘게 판례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 낸 게 누구인가. 나는 그 책임이 '위력'을 현실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못한 법원에 있다고 믿는다. 다음 글에서 그 원인을 살펴보자.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에 언급된 갤럽의 여론조사는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전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집전화 RDD 15% 포함) 방식,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이뤄졌다(응답률 13%).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