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9일 북한의 정권 수립 70주년인 9.9절에 북한을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북미 비핵화협상을 연계시켜 중국을 비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견제가 먹혀들어간 셈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4일 9.9절 70주년 경축행사에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의 특별대표로 8일부터 중국 공산당 및 정부 대표단을 인솔해 북한을 방문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매체들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의 국빈방문, 중-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 관련 일정 등 9.9절 직전까지 시 주석의 외교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다는 게 방북 무산의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이는 올해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 답방 약속을 뒤로 미루는 셈이어서 시 주석도 '고심 끝에 내린 결론'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24일 폼페이오 국무부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시키면서 '중국과의 무역 문제가 해결된 뒤'로 미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가 충분한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중국에 대한 우리의 무역 공세가 훨씬 강경해졌기 때문에 나는 중국이 예전만큼 비핵화과정(UN 대북제재 이행)을 돕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이 미국의 '최대 압박 대북제재'를 방해하면서 전선을 다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인 동시에 '북한과 더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무역전쟁에서 더욱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메시지이기도 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제기된 가운데 중국은 우선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는 장면이 미국에 대한 무력시위로 보이는 상황은 피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한 발 물러선 것은 북미 비핵화협상에 있어서 미국이 '중국 탓'을 할 새로운 명분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입장을 배려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북미 비핵화협상과 미중 무역전쟁이 연계되면 한국이 할 수 있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 주석의 평양 답방은 일단 미뤄졌지만 중국이 김정은 위원장에 성의를 보인 측면도 있다. 이번에 방북하는 리잔수 위원장은 김정은 집권 뒤 북한을 방문한 인사로는 가장 고위 인사다. 리 위원장은 중국 정치권력 서열 3위이자 시 주석의 오랜 심복으로 꼽힌다. 리 위원장은 오랫동안 시 주석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공산당 중앙판공실 주임을 맡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