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산업은행이) 기업구조조정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임기 중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11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의 말이다. 이날 취임 1주년을 맞아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 본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이 회장은 지난 정부를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했다. 부실 대기업을 인수해 성장시키고 다시 매각하는 등 한국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그동안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것.
"지난 정부 서별관 회의서 구조조정 결정해 떠맡아"
그러면서 이 회장은 "우리 경제의 위험요인을 빨리 제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뒤로 가지도 못하고 정체돼 있었다"며 "물꼬를 정리해 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싫든 좋든 강박에 의해 산업은행이 이 문제를 떠맡았다고 감히 얘기한다"며 "서별관 회의에서 결정하고 강요해 떠맡은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경제부총리,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주축으로 열린 비공개경제정책협의회인 서별관 회의에서 조선업 구조조정 등을 결정한 뒤 이를 방치한 것을 두고 한 얘기다. 이어 그의 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산은이 까먹은 돈이 천문학적입니다. 정부에서 단돈 1원도 받지 않았는데 올해 5000억 원을 (증자) 받았습니다. 돈을 벌어서 (정책금융)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그런 역할을 산은이 해야 할 것입니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나라에서 혁신창업 힘들어"
또 이 회장은 우리 경제의 성장을 위해선 재벌 대기업, 수출 위주로 성장해야 한다는 인식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우리의 사고와 가치관 등 틀이 바뀌어야 한다"며 "부동산으로 돈 버는 나라에서 혁신창업은 굉장히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은 "(돈을) 버릴 각오를 하고 벤처기업을 지원할 때 대한민국 산업이 바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중소기업들에 1조 원을 공급하면 100개 기업을 발굴해야 하는데, 성과가 늦을 수 밖에 없다"며 "실패해도 용인해달라, 그 대신 투명하게 하겠다"고 했다.
산업은행은 기업구조조정과 함께 혁신창업기업 발굴, 육성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데 이를 장기적인 관점으로 지켜봐 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앞서 창업기업 지원 프로그램의 추진 상황을 묻는 말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 이 회장은 "그동안 벤처육성 지원을 많이 해왔는데 노력을 더해 펀드를 조성·추진해나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올해 성장지원펀드 1차를 출범시킨 산업은행은 2020년까지 모두 8조 원을 투입해 성장 단계에 있는 기업들을 발굴하고 지원할 예정이다.
더불어 이 회장은 "속된 말로, 기업을 말아먹긴 쉬워도 새로 키우기는 힘들다"며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유망한 기업을 차근차근 발굴해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경제협력 이슈로 대우건설 가치 커져... 조급하게 팔지 않겠다"
또 이날 이 회장은 앞서 3차례 매각이 불발됐던 대우건설과 현재 경영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지엠(GM) 등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대우건설은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매각이 무산됐는데, 이제 더 이상 잠재적 매수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며 "조급하게 매각을 추진하진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2~3년 동안 경쟁력을 높인 뒤 매각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남북경제협력 이슈로 대우건설의 가치가 커졌다"며 "평가액의 2배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지엠 정상화 성과를 묻는 말에 이 회장은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얘기하기엔 기간이 너무 짧다"며 "10년간 어느 정도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앞서 지난 5월 정부와 미국 지엠 본사는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모두 약 7조7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국지엠의 지분을 일부 가지고 있는 산업은행은 약 8000억 원을 투입했었다.
더불어 이 회장은 "앞으로 남은 10년 동안 지엠 본사와 한국지엠 직원, 정부가 얼마나 협력해서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가 중요하다)"라며 "한국지엠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