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기독교계의 성소수자 인권 활동 방해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한창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활발하던 2010년 즈음이었다. 이들은 조례 중 '성소수자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놓고 극렬한 반대를 표명했다.
하지만 모든 종교인들이 차별의 편에 선 것은 아니었다. 많은 수의 종교인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차별과 혐오를 행하지 말 것을 지적하며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용감히 앞으로 나섰다. 임보라 목사는 그들 중 하나다.
이후로도 임보라 목사는 성소수자들의 편에 서서 인권과 평등을 이야기하는 활동을 펼쳐 왔다. 퀴어문화축제,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 '아이다호데이'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사 등 성소수자와 관련한 굵직한 행사에선 어김없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행사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평등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현장에도 임 목사는 연대했다. 하지만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 보수 교단으로부터 '이단 지정'을 받는 등의 방해도 적지 않게 받았다.
하지만 임 목사는 한 번도 연대의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어떤 마음에서일까.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현재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선언을 받는 '나는 앨라이(Ally)입니다'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그 누구보다 종교계에 있는 앨라이들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때, 임보라 목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섬돌향린교회를 찾았다.
"'종교가 혐오?' 그건 생존형... 본질과 달라"
- 종교인 앨라이로 워낙 유명한 분이시라 조금 특별하게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최근에 강아지 찹쌀이를 입양했어요. 고양이 네 마리를 키우고 있었구요. 그리고 제가 초록나무라고 하는 나름의 별명이 있어서 '개와 고양이와 사는 초록나무입니다', 이렇게 소개하고 싶어요."
- 임보라 목사님의 인터뷰를 오랜 시간 봐왔지만 별칭이 따로 있으신지 몰랐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제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이 다들 보라색 떠올리곤 해요, 아버지가 이름을 지으실 때 그런 의미를 담으시기도 했구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보아라' 이런 뜻도 있다고 하셨어요. 제가 '수풀 임'씨니까 숲을 보라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이렇게 이름을 지으신 것이죠.
제가 보라색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이미지에서 좀 탈피하고 싶기도 했어요. 그때 만든 별칭이에요. 제가 5월쯤에 볼 수 있는 초록나무의 이미지를 참 좋아하기도 하구요."
-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는 올해 종교에 기반한 혐오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사실 종교와 혐오라는 말이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종교가 소수자에게 이렇게 배타적이었을까 의문이 들고요. 혐오 행위를 서슴지 않는 일부 교회들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종교가 혐오를 행한다고 하면 '그게 무슨 종교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긴 하죠. 그런데 종교사를 들여다 보면 혐오와 배제를 기반으로 살아남고자한 '생존형 종교'가 보여요. 하지만 종교의 본질과 생존형 종교는 굉장히 달라요.
신을 섬기고 그 뜻에 따르는 것이 기독교로 이어져 온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신에게 투영하죠. 종교사에서 피 튀기는 장면들이 많아요. 사람을 이단으로, 마녀로 몰아 죽이고 다양한 혐오에 기반해 전쟁도 일으키고... 살육의 역사들이 있죠. 그런데 이건 기독교의 정신과 어긋나요. 오히려 기독교도들이 초기에는 엄청나게 죽임을 당했던 집단이었죠. 왜냐면 그 당시의 지배적인 종교질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원래도 노예들의 신음하는 목소리를 듣고 여기에 반응하는 게 하나님의 일이었어요.
그런데 기독교가 이후에 공인을 받고 또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까 오히려 이전과는 다르게 정복하고 지배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한 거죠. 하나님은 다 사람들을 똑같이 만드셨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고 가르치시죠. 하지만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그건 자신에게만 해당된다고 주장해요.
누군가는 백인이 아니라서, 성별이 여성이어서 아니면 요즘같이 성소수자라서 너희들은 아니라고 말해요. 그래서 사람을 비정상으로 몰고 자기처럼 되라고 하는 식의 굉장한 횡포를 부리죠. 현재의 그런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 기독교는 그래서 기독교가 아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종종해요."
"인본주의는 기독교와 상관없다? 그게 어딨어요"
- 이단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야기를 꺼내기 참 아픈 일이지만 여러 총회에서도 그렇고 올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임보라 목사님이 '이단성이 있다'고 결의를 했죠. 그런데 눈에 띄는 이유 중 하나가 목사님이 '기독교 신앙과 별 상관이 없는 인본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인 일반 인권운동가의 시각으로 활동한다'였어요. 인본주의와 박애주의가 정말 기독교 신앙과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안 그래도 저도 찾아서 읽어 보았는데요, 심지어 임보라 목사의 글을 보면 아주 따뜻하다 이런 것도 있었어요. '이분들이 나를 칭찬해주려고 했나' 그랬죠(웃음).
올해 세계인권선언이 70주년을 맞았잖아요. 1948년 12월 12일에 나온 이 선언의 바탕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경험이 있었어요. 인간의 포악하고 잔인무도함, 그 끝은 어디인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죠.
물론 이 선언문에는 종교적인 언어가 담겨 있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의 권리라고 하는 게 정의나 평화나 이런 것들과 떼어 놓을 수 없죠. 마찬가지로 생명권이 있는데, 인간이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면 자연을 모두 파헤쳐도 된다는 개발논리로 가니까 요즘은 생태적으로 보려고 하잖아요. 똑같이 우리와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이고 우리는 그 일부라고.
그게 사실은 성경의 이야기와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또 인권에 대한 개념들을 발달시켜온 북미와 유럽 문화는 기독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요. 성경 안에 차별하면 죄다 혹은 종이나 주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차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들이 인권선언에 다 담겨 있죠.
다만 성경이 만들어질 당시에 활자로 남은 개념이 조금 좁아서 오늘날 우리가 더 확장해 가고 있는 것이고요. 난민이 당시에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엄밀히 보면 그 사회에 성소수자는 없었을까요? 아니죠. 마찬가지로 장애인도 존재하고 있었고요. 그러니까 기독교의 유구한 역사 속에 담긴 그 생명의 권리라는 게 인권이죠."
- 인본주의가 성경에 기록된 것임에도 분리시키려고 하는 것이군요. 왜 굳이 그럴까 궁금하네요.
"레토릭을 만드는 거죠. 인본주의와 여기에 대비되는 신본주의. 교회 안에서 통용되는 이미지가 있어요. 저보고 인본주의, 자유주의라고 하면서 그 이미지를 씌우는 거죠. 사실 인본주의랑 신본주의랑 동전의 양면이잖아요. 그런데 인본주의라고 하면서 종교인들이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요. 기독교와 전혀 상관 없다는 식의. 기독교와 전혀 상관없는 게 세상에 어디 있어요.
또 '세상적'이라고 하는데 세상적인 것이 기독교와 상관 없나요? 이걸 굳이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으로 나누는 것은 그릇된 이분법이죠. 상식적으로 이 사회를 사는 사람들이면 뭐가 다르냐고 할 말을, 엄청난 것처럼 반복하고 있어요. 저는 부끄러워요. 목회자들이 신학을 한다면서, 신학이라는 게 인문‧철학 이런 것과 연결된 건데 얼마나 학문의 뿌리들을 모르면 저런 얘기를 할까 싶어요."
- '이단성이 있다'고 지정받으신 후에 심경이 많이 복잡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이단성이 있다고 처음 지정한 곳은 백석대 신학대고 거긴 되게 보수적인 곳이에요. 그런데 예장통합 같은 경우는 저희 교단(기독교장로회)과 오랜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었던 큰 교단이에요. 그래서 교단의 이름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낼 수 있었고요. 문제는 이런 교단에서조차, 그리고 기준도 없이, 근거로 받은 자료가 사실인지 아닌지 이런 거 하나 살피지도 않고, 신학적으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도 제대로 밝히지도 않고 저런 일을 저질렀다는 거예요.
오히려 이런 일이 생기면 모르던 사람들도 '뭔데? 아니 임보라 목사 내가 아는데 이단은 아닌 거 같은데?' 이러면서 물어보고 한 번쯤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듣자하니 기독교 케이블 방송에서 1시간마다 뉴스에 제가 나왔대요.
총회 소식이 나오면서 명성교회 이야기 나오고 그 다음에 기장 임보라 목사가 나오고 이러는데, 교단까지 언급하니까 다들 놀라서 저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 기장의 어느 목사가 이단이 됐다는데 그게 무슨 일이냐' 이렇게 물어보고 목사님들은 저를 아는 분들이 많으니까 알아 보려고 전화도 주셨어요. '내가 너 이단 아닌 거 아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그러시죠. 그래서 설명을 하니까 '아 알겠다, 그럼 이단 아닌 거네' 이러시고. 차라리 이걸 계기로 더 얘기될 수 있다면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죠."
"이단 지정...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 올해 여러 언론 보도로 '에스더 기도운동'이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이걸 전파하는 동시에 난민을 반대하는 등 굉장히 극우적인 면모를 보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데 목사님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보시나요?
"극우라고 하는 게 완전히 티끌 하나 남지 않고 없어진 그런 역사는 없을 거예요. 지금 일본도 그렇지만 세계의 여러 국가들이 보수에서 극우로 치닫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마당이니까요.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그런 목소리들이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권력들을 부여받아 왔었던 거죠. 실제로 교회의 권력이자 교계의 권력인 '교권', 이런 걸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반공 이데올로기에 빌붙어서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가짜뉴스 공장이라고 알려진 에스더 기도운동본부가 여기저기서 보였던 때가 많았죠. 저희가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의 역사를 봤을 때 계속 혐오를 전파해온 사람들이 그 무리들이고. 문제는 그게 뭔가 먹히는 듯 보이니까 교단이 여기에 반응을 했다는 거예요. 교단은 각 교회들을 아우르는 우산이라고 보면 될 텐데, 이런 데가 체통도 없어요. 체면도 없고. 혐오 선동에 쓸려 가지고 저렇게 하면 뭔가 될 거 같으니까 여기까지 왔죠."
- 인천에서 열린 혐오범죄 규탄집회에서 이런 교회의 행보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저도 저렇게 절박하게 굴 때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한편으로는 '정말 그렇게 될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기독교가 정점을 찍다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교회에 젊은 사람이 없다고, 여성이 없다고 있는 마당이에요. 솔직히 저는 권력과 돈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요. 교인의 감소는 사실 교회마다 헌금의 감소를 가져오죠. 또 '전성기'를 구가했었던 한국 교회의 자랑거리들이 되게 많잖아요, 큰 성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기도하고 일주일에 몇 번씩 교회를 오고. 그런 생활패턴은 이제 안 맞아요. 안 맞으니까 실제로 떨어져나가는 사람이 있는 거고.
게다가 최근 몇 년을 보면 교회가 엄청난 혐오범죄를 저지르고 있죠. 시민사회에선 '저것 좀 봐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기독교가 저런다며?'라고 하면서 실망과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죠. 그러면 혐오하는 사람들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거죠. '동성애 반대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교계에 많아도 여론조사 같은 걸 보면 '저건 좀 아니야'라는 이야기가 많아요. 그러니까 저렇게 혐오범죄의 온상지와 같은 극우 기독교 보수, 수구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는 존재는 하겠지만 점점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더디지만, 변화는 온다
- 교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변화가 느껴지시나요?
"사실 성소수자 관련 연구도 하면 안 되고, 성소수자 교인은 언제든지 추방해도 되고,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이런 사람들도 추방해도 된다고 교단 법이 확확 바뀌고 있어요. 비수도권 지역의 기독교연합회 같은 조직들은 계속 '당신 동성애 지지한다는 거야? 찬성이야? 교인들은 알아?'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거죠.
그런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교회들의 연합체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쉬운 일은 분명 아니에요. 거기서 따돌림을 당하고 교인들로부터 계속 취조를 당하죠. '목사님 동성애 찬성한다면서요? 목사님 목회 계속 못 하시겠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거예요. 또 교인들이 협박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질문을 하기도 해요. 진짜 성소수자들이 죄인이냐고, 정말 성소수자 누구와 만나서도 이야기도 하면 안 되는 거냐고, 퀴어문화축제 절대 가면 안 되는 거냐고. 이런 질문들이 청년들로부터 쏟아져 나오니까 고민 안 할 수가 없죠.
몇 년 전만 해도 예배 때마다 그런 건 음란하다는 식의 교육을 엄청나게 시켰는데, 여전히 이걸 반복하는 교회들도 많지만 최근 1~2년 사이에 이러는 건 아니라는 곳도 많이 생겼죠."
- 제가 생각하는 것과 교회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혐오범죄를 선동하는 교회들보다 점잖은 교회들이 실질적으로 더 많아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말처럼 지금은 '침묵이 죄'인 시대에요.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면 이 사회가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보라고 말하셔야죠. 교회가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명예를 훼손하는 거니까, 뭐가 문제이고 사실은 무엇이며 왜 이런 식으로 가짜를 섞어서 뉴스를 만들었는지 사실은 다뤄야하잖아요.
물론 그런 목소리들이 없는 게 아니에요. 사실 나 혼자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럿이서 앨라이가 되면 더 가능한 일이구요. 성소수자 기독교인과 그들을 지지하는 '무지개예수' 모임에서 마치 앨라이를 모집하는 것처럼 저희도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교회를 찾는 '무지개교회 캠페인'을 했어요. 이 교회들을 지도로 공유하기도 했고요. 저는 무지개교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앨라이-기독교가 말하는 이웃사랑, 다르지 않다 "
- 본격적으로 앨라이 활동과 관련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계기가 있으셨나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기독교계가 워낙 반대하던 시기에 젊은 기독교 단체 실무자분들이 오셔서 '기독교가 왜 이렇게 반대하는 것으로 비춰져야 되냐, 우리가 그런 목사들 아닌데'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렇죠, 기독교가 다 반대하는 거 아니죠, 차별금지법 제정 되야죠' 라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아요.
또 인상 깊었던 기억이 2008년에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찬반 토론을 하고나서 성소수자 기독교인 모임이 추진되었고 그게 성사가 됐어요.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어떤 분은 교회에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시는데, 어떤 분은 쫓겨나서 되게 고통스러웠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성소수자 기독교인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던 거죠.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에 성소수자가 없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철썩 같이 어떤 신앙처럼 신봉하는 그런 생각이 다 깨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 순간에."
- 보통은 소수자들이 겪는 문제를 보아도 서슴없이 연대에 나서기는 어려운데요, 목사님은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 질문 드려도 될까요?
"사실 초등학교 때 저희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요, 우울증으로 심하게 몇 년을 고생하시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어요. 동네에서 계속 살면 뭐랄까 뭔가 꼬리표 같은 게 따라 붙잖아요. 그런 시선들이 느껴졌어요. '아 쟤가 걔구나.' 나를 나로 안 보고 다른 무언가와 연관 지어서 보는, 측은하게 보는 시선, 이런 게 막 겹친 것들. 그게 싫었어요. 그 시선을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온몸으로 느꼈죠.
또 저는 딸 셋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여자니까'라고 해서 강요받거나 '여자라서' 못하게 하는 것들이 없었어요. 오히려 점점 나이를 먹고 크면 클수록 접하는 사회의 면들이 넓어지니까 여자라는 이유로 계속 꼬리표가 붙는 거예요. 여자라서 능력을 의심 받을 때도 생기고. 정말 그건 저한테 충격적인 순간이었어요. 제가 진보적인 신학교에 진학했다는 이유로 '쟤는 진보신학이나 알지 성경을 뭘 알겠냐'는 분도 있었죠. 지금 혐오적인 기독교인들이 보이는 저에 대한 태도랑 비슷해요. 그렇게 꼬리표를 다는 게 꽤 많더라고요."
- 소수가 되고 소외를 받는 경험을 통해 성소수자들의 삶을 이해하셨군요.
" 반면에 제가 결혼을 하고 또 자녀를 출산하고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면제되는 것도 있어요. 성소수자 인권 옹호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비혼으로 알고 계셨던 분들도 꽤 많더라고요. 제가 가족을 드러내고 이런 것도 아니고, 저희 딸들이 이 교회를 출석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집이랑 멀기도 하고. 그러다보니까 교인들 중에서도 새로 오시는 분들은 깜짝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렇게 어떤 꼬리표가 붙거나 그걸 피하는 경험이 교차하면서 어떤 삶의 문제든 다 내가 겪을 수 있다는 생각들을 했어요."
- 인권단체 활동가로서는 앨라이가 저에게 정치적인 의미가 크게 다가오는데요, 지지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많이 모우고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종교인으로서 임보라 목사님께는 앨라이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권재단 사람에서 연속 강의를 하고 강사로 참여했었던 사람들의 원고를 묶어서 '곁에 서다'라고 하는 책을 낸 적이 있어요. 저는 앨라이라는 게 곁에 서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곁에 서줄 수 있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기독교에서도 이웃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그런 거거든요. 예를 들어 이웃이 진짜 못 먹거나 추위에 떨고 있거나 그러면 배불려주고 따뜻하게 옷을 입혀주라고 하죠. 또 누군가가 근거 없는 공격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는 곁에 서서 방어도 해주고 같이 싸워주기도 하고요. 그런 이야기들이 성경에 되게 많아요. 앨라이와 기독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웃 사랑은 크게 다른 게 아니에요.
다만 그런 건 있어요. 더 정의롭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길에 서있는 교회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행한다면 초대형 교회가 되고도 남아야 될 것 같죠. 그런데 그렇지 않잖아요. 되게 작은 교회들이죠. 800억 원씩 비자금을 쌓아두는 게 아니라 다들 8만 원 쓰는 것도 벌벌 떠는.
저는 물론 앨라이는 점점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소수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하죠. '모두가 넓은 길을 가려고 하지 결코 좁은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 더 쉬운 길을 가려고 하지 더 어려운 길 가려고 하지 않는다'라고들 해요. 그러나 예수님은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로 가라고 하셔요. 비록 매우 고통스러워도. 예수님 자신도 굉장한 모욕을 당하고 결국은 죽임을 당했는데도 좁은 길을 묵묵하게 가는 것. 그게 예수님이 보여준 길인 거죠.
그렇다면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사람도 열심히 애는 쓰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수로 보일 수밖에 없는 자리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무지개 예수며 섬돌향린 교회의 몸집과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몫을 한다. 그게 또 각자의 앨라이에게 주어진 몫이 아닐까 싶어요. 앨라이들이 많아지도록 하되 본연의 외로운 길을 가는 것을 감내한다."
"우리는 우리 몫을... 외로워도 간다"
- 성소수자와 함께 하기로 결정하고 활동을 시작하실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부목사로 있을 때도 담임 목사님이 저의 활동을 막거나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든가 그러신 적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어떤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 때문에 뭘 논쟁을 하거나 이럴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제가 쭉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제재를 받은 적은 없어요.
다만 섬돌향린교회가 2013년에 시작됐는데, 그해 4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의견을 냈던 적이 있어요. 정말 짧게 나갔는데요. 그날 인터뷰하고 와서 메일을 딱 여는 순간 난리가 나있었던 거예요. 교회 홈페이지도 그렇고.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밖에 안 되는 교회가 완전히 집중포화를 당한 거예요."
- 정말 큰일이었을 텐데 신도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사실 교회에서 얼마나 걱정이 많았겠어요. 그분들이 저에게 '어디 가서 발언 좀 하지 말라'거나 '목사님이 어디 공중파 같은 거 안 탔으면 좋겠다' 이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시고, '이러다 목사님 어디 가서 쥐어 터지고 오겠습니다'라며 걱정하시더라고요.
또 교회 대표로 제가 등록이 되어 있었는데, 4대 보험에서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같은 걸 제가 들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교인 분들이 걱정하다가 상해보험은 부어야 한다고, 큰일 나면 어떡하느냐고 그러셔서. 물론 감사하게도 제가 어디 가서 쥐어터지는 그런 일은 없었어요. 하지만 그때 상해보험을 떠올리는 교인 분들을 보면서 내가 어디 가서 맞는 한이 있어도 비겁하게 숨거나 그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굉장히 좋은 동료들을 주변에 두신 것 같아요, 그렇다면 혹시 성소수자 앨라이 종교인으로 활동하시면서 어려움이 있었던 순간은 있으셨나요?
"외압이라면 외압이랄까. 밖에서 끊임없이 편견을 가지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공격이 힘들었을 수 있겠네요. 작년 같은 경우도 그랬죠. 그 때 세 개의 교단인가가 벌떼처럼 일어나 (저를) 이단 지정을 했는데, 충격은 충격이었던 거 같아요. 다른 교단이 이단이라고 해봐야 영향은 없어요.
그런데 피해의식이 생기는 거예요. 모르는 교회만 보면 누군가 저기서 튀어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 하다못해 동네에서 운전을 하다가 예를 들어 교회 주차장에 차를 대야하거나 할 때 '그냥 돌아가고 말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가장 힘든 순간은 누군가가 죽었을 때인 것 같아요. 같이 공동체에서 추모할 수 있는 분도 계시지만 커뮤니티 활동을 안 하는 분의 죽음을 상담이나 다른 경로로 알게 됐는데 집단적인 애도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그 사연을 숨겨야 할 때. 어떤 경우 그분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집에서 갈등이 심했고 그 속에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슬픔도 드러내기가 어렵죠."
- 그럴 때 다시 좀 힘을 얻는 방법이나 그런 것들이 혹시 있으실까요?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 갔을 때, 저도 막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경험을 했죠. 사람들의 살기가 등등한 눈초리를 너무 많이 받았고. 이 사람들 이러다 일내는 거 아닌 가,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또 혐오집단 쪽에 저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게 정말 트라우마로 남더라고요.
그런데 이후에 인천에서 혐오범죄 규탄 집회를 열었잖아요.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면 기운이 느껴지고 같은 것들을 바라는 마음들이 모이고, 같이 퍼레이드를 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런 것들이 엄청난 힐링이에요. 소진된 상태에서 확 올라가는 느낌. 차가 주유하면 바늘이 움직이는 것처럼 차오르는 그런 느낌. 그런 것들을 또 느끼게 되죠. 아이다호 데이 때도 행사 끝나고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 틀어놓고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막 뛰고 했었던 것들이 좋았어요. 이 사회에서 너무나 이상한 존재, 무슨 악의 축처럼 매도되는 집단이 스스로를 막 풀어 헤치면서 신나게 몸짓으로 혐오에 맞서는 모습에서 엄청난 희열을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 격렬한 긴장과 불안의 순간에 결의를 다지셨다는 게 인상 깊습니다.
"그 현장이 그렇게 만드는 거 같아요. 그저께인가도 후배 목사분이 '선배로서 앞장을 서주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앞장을 서려고 한 게 아니라 지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내 발걸음대로 온 건데 오다보니까 '사람들이 없네, 왜지? 뭐지? 어디 갔지?' 이렇게 된 거죠. 그러나 지나고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고 있더라고요. 이번에 이단 지정됐을 때엔 '나는 임보라다'란 캠페인하는 선배들이 계셨는데 너무 민망하고 죄송했죠.
많은 분들이 아직 공개 지지는 어렵지만, 너무 마음 아파하시는 걸 알아요. 메시지를 주세요. '너를 지지하고, 교회들이 변해야 한다는 것 알고 있다'라고. 혐오가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들이 쭉 이렇게 가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저는 반대라고 해요. 혐오가 강하질수록 앨라이가 더 많아질 거니까요. 저는 정말 그걸 체험하고 체감한 사람이거든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특히 종교인 앨라이가 절실한 시점이라 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선뜻 용기를 못 내시는 분들도 많은 게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막막하니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분도 많고요. 그런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혹시 있으실까요?
"이런 질문들을 많이 받는 거 같아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요?' 근데 저마다 상황을 들어보면 할 수 있는 일이 다른데, '앨라이라고 말하고 다니세요' 이럴 순 없잖아요. 사실 많이 하는 얘기는 '이렇게 좋은 책들이 이미 있는데, 이런 것들을 일단 좀 접해보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라고 해요. 그리고 퀴어문화축제 같은 곳도 가보셔라. 가서 무엇이 진짜 거기서 나온 목소리들인지 좀 보셔라.
많은 분들이 그러세요. 혐오 세력들이 도배하듯이 올리니까 동영상이며 자료들이 혐오에 근거를 둔 것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고. 당연히 그렇겠죠. 기독교 케이블 채널마저도 그러는데, 물량으로는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하지만 성소수자 단체도 있고 올바른 정보를 담은 많은 기사들이 나오니까 그런 소스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일단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 보면 어떠냐고 말씀드려요.
조금 더 한 걸음 더 나가면 '우리가 대화를 위해서 어디를 방문해보면 좋을까, 누구의 말을 들어보면 좋을까' 이런 이야기도 하게 되요. 시작하면 확실히 달라진다고들 해요. 교회에서도요."
- 보통은 내가 이야기를 해도 상대방이 달라지지 않으면 어떨까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러면 달라져요. 정말 달라져요."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나는 앨라이입니다' 블로그(https://blog.naver.com/i_ally)에도 실립니다. 보다 자세한 인터뷰는 블로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