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으로 떠들썩했던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지난 3월 <오마이뉴스>는 서울과 미국 시애틀의 최저임금 실험을 주제로 '최저임금, 두 도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때 만난 노동자들의 삶은 바뀌었을까요? 2018년 12월, 그 답을 듣기 위해 다시 최저임금 노동자와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편집자말] |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임금 양극화는 개선됐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청년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최저임금과 고용의 상관관계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했다. 최저임금이 올랐다면, 그에 따른 임금 구조 변화를 우선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
김 이사장은 이달 공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논문에서 임금 상위 10%와 하위 10%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상당 부분 개선됐다고 밝혔다. 통계청의 8월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원데이터를 그대로 분석한 결과였다.
그는 '최저임금발 고용 참사'라는 보수 언론의 공세도 사실이 아니라고 쐐기를 박았다. 김 이사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런 연구 결과는 없다"고 단언했다. 올해 지표를 토대로 최저임금 효과를 분석한 논문 3편이 모두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공통된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이어 "최저임금 인상이 마치 문재인 정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으로 인식되면서, (보수 언론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의 시작점으로 삼았다"고 진단했다. 최저임금 공약 폐기 등 개혁에서 한발 물러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여기까지인가 싶다"며 실망감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올 한해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도 많았다. 먼저 지난 1년을 돌이켜본다면?
"최저임금 인상폭이 예년보다 높았던 건 사실이다. 논란이 된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냐 아니냐였다.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 '최저임금 올랐으니 고용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수요 공급 곡선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수요공급곡선은 완전 경쟁시장을 가정할 때 이야기다. 현실은 불완전 경쟁시장이다. 불완전경쟁시장에서는 경우에 따라 일정 범위 내에서는 오히려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
- 경우에 따라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임금이 오르면서, 예전에는 '저기서 일할 바엔 차라리 집에서 다른 거 할래' 이런 사람들이 노동 시장에 나오는 효과가 있다. 이들이 노동시장에 나와 인력난을 겪는 기업과 매칭이 되면서 일자리 증가 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고용이 줄어드는 곳도 있다. 어느 한 부분만 볼 게 아니라 플러스/마이너스 효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 보수 언론들은 '최저임금 때문에 일자리 줄었다'고 공세를 취해왔다. 실증 연구 결과는 어떤가?
"올해 고용 지표를 토대로 최저임금이 고용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연구 논문은 3편이 나왔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2편, 부경대 1편 등인데, 이 3편 다 분석 결과가 동일하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 효과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까지 연구 결과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처럼 얘기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연구 결과는 안 나왔다."
- 얼마 전에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 양극화 해소에 도움을 줬다고 발표했는데?
"사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부차적인 요소다. 중요한 것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봐야 한다. 임금에 미치는 영향은 그간 분석 자료가 없다가 지난 8월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원데이터가 얼마 전에 공개가 됐다. 이걸로 보면 일단 임금 격차는 개선됐다.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가 줄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저임금 계층(하위 10%)과 고임금 계층(상위 10%)의 임금 격차도 확 줄었다.
이를 두고 '최저임금 받던 사람이 잘렸으니, 없어진 거 아니냐' 이런 얘기도 있다. 그런데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보면, 노동자 수는 줄지 않고 조금 늘었다. 일자리 절대 수가 줄어든 게 아니고 증가세가 감소한 것이다. 확실히 10%~20% 하위 계층을 보면 임금 인상 폭이 다른 계층보다 높다. 저임금 계층이 없어져서 그런 게 아니고, 하위 계층의 임금 상태가 개선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그런데도 하위 계층의 소득 자체가 줄었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혼동할 필요 없다. 가구소득 하위 1·2분위가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임금이 아닌 가구소득 기준으로 할 때 1·2분위는 일자리가 거의 없는 사람이다. 60~70대 고령자나 1인 가구다. 이들 계층은 최저임금으론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기초연금이 확대되거나, 복지 제도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직장에 다니면서 임금 받는 사람과는 별개의 문제다."
- 올해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영세사업주들의 반발이 심했다. 사실 이 부분도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부분이긴 하다.
"자영업자들이 어렵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실 최저임금보다 카드 수수료, 임대료, 원청업체 갑질 등 이 부분이 핵심적인 문제다. 이런 것들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저임금마저 오르니 모든 화살이 최저임금으로 간 게 아닌가, 사회심리학적으로 그렇게 본다. 또 하나, 자영업자는 사람을 채용하는 자영업자와 혼자 사업하는 자영업자가 있다. 혼자 사업하는 자영업자는 최저임금과 상관없는데, 그간 지표로 보면, 이 자영업자가 주로 감소했다. 사람 쓰는 자영업자는 오히려 늘었다. 최저임금 탓이라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그대로인데 임금이 급격히 올라가 버리면, 물가 상승 등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이론일 뿐이지만 반박하기 힘든 내용이기도 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나치게 한꺼번에 많이 올리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인데, 지금까지 제반 지표(고용, 임금 격차)로 보면 문제가 있는 게 드러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큰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간 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낮았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그동안 '최저임금 노동자의 생산성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의 임금이 지급돼 온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 올해 최저임금이 오른 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이어졌다. 전경련 등 대기업 단체도 마찬가지다. 마치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 논쟁을 보는 듯 했다. 왜 이렇게까지 들고 일어났을까?
"그런 면에서는 (보수 언론들이) 종래 방식대로 공격을 가해서 일정 부분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세우면서 최저임금 위원회가 열렸다. 이때 최저임금 인상이 마치 소득 주도 성장의 핵심으로 인식되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이다.
올해 1월 최저임금 비판 보도가 쏟아졌는데, 최저임금 영향을 평가할 팩트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례니 뭐니 해서 소설을 쓰고 몰아간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도 최저임금과 얽혀 있다. 하도급 관계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대기업들은 하청 단가를 조정해야 한다. 편의점 등 프랜차이즈 대기업도 아르바이트와 최저임금이 맞물리는 문제다."
- 비판이 거셌던 탓인지, 문재인 정부의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은 공식 폐기됐다. 이를 두고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기본 밑그림이 흐려졌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최저임금이나 비정규 전환, 노동시간 단축 등은 노동계가 끊임없이 요구한 내용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노동정책과 복지정책, 하도급 거래와 공정질서 확립 등 경제정책이 맞물리는 영역이다. 제가 볼 때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제대로 안 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정책 몇 개 한 거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공격을 퍼부은 거고, 그러면서 이 부분도 후퇴했다. 최근 정부가 경제정책 발표한 것만 봐도 박근혜 정부와 똑같은 정책 기조로 돌아가는 것 같다."
- 시민사회 쪽에서도 최근 정부의 정책 전환을 두고 우려가 크다. 경제정책 방향도 보면, 성장 위주의 기존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 같다. 어떤 생각인가?
"문재인 정부 수준이 여기까지인가라는 생각이다. 올해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했다. 힘을 갖고 보다 개혁적으로 나갈 것으로 봤다. 문 정부에 거는 개혁에 대한 열망이 뒷받침된 거라 보는데, 오히려 선거 이후 거꾸로 간 거 같다. 변화나 개혁보다 현상 유지쪽으로 간 거 아닌가? 경제 사정이 나쁜 것과 일자리 사정이 안 좋아진 게 맞물린 것 같은데, 자본 사회에선 상승과 후퇴가 있다. 사실 일자리 같은 경우 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감소세로 돌아서 있었다. 올해 일시적으로 이런 지표가 나쁘게 나오니까, 종래 취하던 모습에서 후퇴하는 걸 보인다. 전반적인 (정책) 철학의 부재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