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길고양이
길고양이 ⓒ 이상옥
    겨울 햇살과 마른 무화과 잎들...
    오수를 즐기는 길고양이 신예...
         -디카시 <남창(南窓)에 기대어> 


중국 나들이를 거의 한 달 가까이 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제일 궁금한 건 길고양이들이었다. 매일 먹이를 챙겨주던 주인의 긴 부재에 대해 길고양이들이 좀 당황했을 것이다. 물론 지인에게 가끔 집에 들러 먹이주기를 부탁했지만 길고양이들 입장에서는 선뜻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길고양이 '신예'였다. 신예는 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맞더니 곧 먹이를 주라고 야옹 소리를 낸다. 신예가 충성도가 가장 높은 길고양이다. 하루가 지나니 신예 어미인 반전이 나타나고 또 하루가 지나니 로미오 줄리엣 줄리가 건재한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도시도 그렇지만 시골에도 길고양이들이 많다. 고향집에 깃든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며 그들의 생태를 지켜보고 든 생각은, 길고양이의 세계도 최소한의 윤리가 있다는 것이다. 힘이 있는 길고양이가 영역을 차지하고 다른 길고양이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관용도 베푸는 것도 알 수 있다.
 
 길고양이 반전과 신예 모녀. 이들은 이 영역의 지배자로 항상 당당하게 사료통을 차지한다.
길고양이 반전과 신예 모녀. 이들은 이 영역의 지배자로 항상 당당하게 사료통을 차지한다. ⓒ 이상옥
   
 길고양이 줄리엣과 줄리 모녀. 이들은 길고양이 반전과 신예가 없는 틈을 타서 잠시 남은 사료를 먹곤 한다.
길고양이 줄리엣과 줄리 모녀. 이들은 길고양이 반전과 신예가 없는 틈을 타서 잠시 남은 사료를 먹곤 한다. ⓒ 이상옥
   
  반전 모녀와 줄리엣 모녀를 거느리는 길고양이 수컷 로미오. 두 모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다툼을 그냥 지켜본다.
반전 모녀와 줄리엣 모녀를 거느리는 길고양이 수컷 로미오. 두 모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다툼을 그냥 지켜본다. ⓒ 이상옥
 
달포 전 '신기'라고 이름 붙여준 아기 길고양이가 어미와 떨어졌는지 하루 종일 울며 길고양이 반전과 신예가 장악하고 있는 영역(윗채 베란다 사료통 주변)에 들어 왔다.

다른 길고양이가 영역에 들어오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데, 아기 길고양이라서 연민을 느꼈는지 입양아처럼 받아 주었다. 성묘(成猫)가 아닌 신예가 동생처럼 늘 데리고 다니며 보살펴 주는 게 참 신기했다. 신예는 신기가 품으로 들어와 젖을 빠는데도 그것을 그대로 허락했다. 그걸 보며 하도 신기하기도 해서 아기 길고양이 이름을 신기라 붙여주었다.

아기 길고양이 '신기'의 부재

사료통을 차지한 반전과 신예가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부재한 틈을 타서 다른 길고양이들이 몰래 와서 먹이를 먹는다. 결국 줄리엣과 줄리(모녀간) 같은 다른 길고양이들과 결국 공생하는 것이다.

아직 신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먹이가 부족해지니 신예가 신기를 내친 것일까? 늘 같이 무화과 나무 아래서 볕 쪼이를 둘이 같이 하던 녀석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디카시#길고양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