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닫힌 무한, 결코 헤매는 일 없는 미로.
모든 구획에 똑같은 번지가 매겨진 너만의 지도.
때문에 너는 길을 잃더라도 헤맬 수는 없다.
<불타버린 지도>는 표면적인 구성만 보자면 한 남자의 미스터리한 실종을 쫓는 추리물이다. 네무로 히로시라는 대연상사 과장이 길 한 가운데에서 실종되고 그의 아내 네무로 하루가 꽤나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조사를 의뢰한다. 흥신소 직원은 마치 남 일을 대하는 듯한 미적지근한 하루의 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남동생의 등장, 여기에 히로시의 소지품에서 나왔다는 카페 '동백'의 성냥갑을 제외하고는 진척되지 않는 증거 확보에 애를 먹는다.
작품 속 수사는 세 가지 관점에서 진척되지 못한다. 첫 번째는 무관심이다. 아내는 남편의 실종 후 몇 개월간의 일을 모두 동생에게 일임한다. 조사 의뢰 역시 동생의 입김이 들어갔으며 남편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직원에게 동생이 가장 중요한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아내의 모습에는 걱정이나 긴장, 염려나 슬픔은 찾아볼 수 없다. 직원이 흔적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말을 꺼낼 때만 그녀는 남편에 대해 마치 기억해내듯 정보를 말한다. 그녀는 마치 타인처럼 남편을 말하고 그의 실종을 대한다.
두 번째는 거짓이다. 추리의 과정에 있어 발견된 증거나 증인이 진실이라면 수사는 빠르게 진척된다. 하지만 그 진위여부에 거짓이 껴 있다면 혼란을 겪게 된다. 직원은 마지막으로 히로시를 만나기로 한 젊은 남자 직원 다시로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다. 하루의 남동생이 사건에 휘말려 죽은 상황에서 붙임성 있고 친근한 다시로는 히로시를 찾기 위한 중요한 인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다시로의 말에 거짓이 섞여 있음을 감지한 순간 진척된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시로가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혼동을 겪는 이유는 개인의 존재감에 있다. 도시에서 그리고 회사에서 다시로는 본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매일 도시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타인들 속에서 존재라는 길을 잃은 다시로는 히로시를 통해 본인의 존재감을 내비치기 위해 거짓을 반복한다. 히로시의 실종이 존재를 찾을 기회라 여긴 것이다.
세 번째는 상실이다. 이 작품이 발간되었던 1960년대 당시 일본은 도시의 인구 급증으로 인한 실종 사건이 빈번했다 한다. 작가는 이 실종을 도시에서의 상실로 풀어낸다. 아스팔트와 아파트로 이루어진 도시는 인간 소외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도시로 몰린 인구와 산업화는 인간을 하나의 도구와 상품으로 격하시켰고 아파트의 벽과 층계는 그 안에 갇혀 소통을 잃어버리는 망각을 일으켰다. 히로시의 실종은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 아닌 현상이다. 그리고 흥신소 직원은 이 실체가 없는 현상의 답을 찾다 본인을 바라보게 된다.
흥신소는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타인의 뒤를 밟아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일을 한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될 선이 있지만 그 선에 상관없이 한 명의 인간에 대해 너무나 많은 걸 알게 된다. 헌데 네무로 히로시에 대해서 직원은 알지 못한다. 그의 아내도, 아내의 남동생도, 함께 일하는 직원 다시로도 정확히 히로시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이런 의문은 직원이 자신의 지도를 바라보게 만든다.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지도가 있다.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 자신이 경험한 기억에 따라 지도는 모양을 갖춘다. 헌데 히로시의 지도는 그 방향도 모양도 알 수 없다. 직원은 자신의 지도 역시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헤어진 아내를 찾아가 그 지도를 채우려 하지만 그 형상도 알 수 없게 불타버렸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실종자를 찾으려던 조사원은 오히려 본인이 실종자임을 확인하고 실종자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 아베 고보는 작품의 대부분을 도시의 묘사에 할애한다. 그에게 도시란 획일적이고 꽉 막힌 공간임과 동시에 인간을 소멸시키는 장소이다. 그는 조사원의 시각에서 도시를 세세하게 시각화함으로 일상적인 공간을 낯설게 만든다. 이 낯섦은 도시를 미로로 만들면서 그 안에서 길을 잃은 인간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불타버린 지도'는 방향은 잃었으나 헤맬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꿈꾸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와 관련된 자아라는 방향성을 잃어버리지만 직장에 다니고 일을 하며 사회라는 단위 안에서 하나의 부속품처럼 하루하루를 갇혀 지내기에 헤매지 않는다. <불타버린 지도>는 추리 소설의 구조 속에서 인간 존재의 상실을 통해 실존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