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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6년간 제주에서 삶의 둥지를 틀고 살았던 적이 있다. 남도의 섬, 제주도는 아주 특별한 섬이었기에 신이 내게 선물로 주신 시간과도 같았다. 연고 하나도 없는 곳이었지만, 6년을 하루같이 지냈다.

그곳에서 나는 두 번의 굵직한 태풍을 만났는데 2002년 '루사'와 2003년 '매미'가 그것이었다. 섬을 벗어나는 방법은 항공편이나 배편 외에는 없다. 평상시에는 육지에 사는 가족들의 애경사 때 오가는 일은 별문제가 없었지만, 태풍이 오거나 기상이 악화하면 섬에 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 두 번의 큰 태풍을 맞이하면서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꼭 가야만 하는데 갈 수 없을 수 있는 곳이 섬'이라는 생각이었다.

신혼여행을 온 것처럼 제주생활을 했는데, 연이은 두 번의 태풍은 육지의 장점을 떠올리게 했다. 육지에서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마음만 먹고 가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 그러나 섬은 기상도 맞아야 하고, 배편이나 항공편도 정해진 시간이 있다. 비행기만 타면 1시간도 안 걸려 육지에 도착한다지만, 섬과 육지는 체감 상으로 아주 먼 거리였고, 제주도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육지로 나갈 일이 줄어들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출발, 65시간을 달려 베트남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히 항공편을 이용하리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김정은이 준 충격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베트남 하노이로 출발했다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1면에 게재했다. 사진은 밝은 표정의 김 위원장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김정은 뒷편), 오른쪽으로 최룡해 당 부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등의 환송을 받고 있는 모습.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베트남 하노이로 출발했다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1면에 게재했다. 사진은 밝은 표정의 김 위원장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김정은 뒷편), 오른쪽으로 최룡해 당 부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등의 환송을 받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맨 처음에는 북한 항공기의 기계적인 결함 문제인가 싶었고, 설령 그렇다면 중국 편 항공기를 이용해도 될 터인데 하는 생각이었다. 외국여행을 할 때에 '단 한 번도' 항공편이나 배편이 아닌 열차를 이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육로로 외국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였다. 그런 경험 자체가 없고, 그런 문이 막혀 있었으니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평양을 가는 꿈'을 노래하긴 했지만, 피상적인 생각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분단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 나라가 본래 대륙과 연결된 나라임을 망각했던 것이다. 철조망에 가로막혀 섬 아닌 섬의 나라에 살면서도 사면 바다에 둘러싸인 곳만 섬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대륙으로 통하는 길이 막혔으니, 결국 우리는 분단의 세월 동안 섬 아닌 섬나라에서 살았고, 나의 의식도 그렇게 길들었던 것이다. 분단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증오하는 내게도 깊이 각인돼 있었던 것이다.

특별열차로 하노이로 갈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이후에도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평양에서 마침내 특별열차가 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세계지도가 머리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침 그날 어느 월간지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기'를 읽었던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여행하고, 여력이 된다면 파리를 거쳐 유럽여행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꿨다. 이런 꿈을 꾸면서도 여전히,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항공편을 이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특별열차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분단의 장벽이 무너진다면,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아도 유럽은 물론이고 동남아, 러시아 모두 육로로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했다. 이런 당연한 생각을 이제야 하다니, 나는 섬 아니 섬나라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이었구나, 평화란 
 
판문역으로 향하는 남측 열차 26일 오전 북측 판문역에서 열리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 참석자 등을 실은 열차가  도라산역 CIQ를 지나 판문역으로 향하고 있다.
판문역으로 향하는 남측 열차26일 오전 북측 판문역에서 열리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 참석자 등을 실은 열차가 도라산역 CIQ를 지나 판문역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남북한 철도가 연결되고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면, 여행뿐 아니라 각종 물류 역시도 철도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 효과들이 남북한 모두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올지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이런 것이었구나, 평화통일이란 이래서 필요하고, 전 단계로 나가기 위한 정전협정이 이래서 필요한 것이구나 깨달았다.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뭐 그렇게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느냐고 하실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다. 나는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나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반공 웅변대회와 반공 포스터 그리기가 일상이었고, 유신헌법 암송하고, 고등학교 때에도 교련복을 입고 교련교육을 받은 세대다.

1980년대 대학에 들어가 1987년 6월 항쟁까지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나름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한 사람으로 살고자 발버둥쳤다. 그리고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에는 이미 기성세대였지만, 주말이면 광화문 광장에 나가 촛불 하나를 더했다.

지금도 태극기 집회를 하는 극우보수들의 행동을 보면 화가 치밀어 스트레스를 받는, 소위 저들이 말하는 '종북좌빨'에 해당하는 사고방식을 가졌다. 스스로 '중도진보'라고 생각하는,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나름 시대의 정신과 흐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자 노력하는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특별열차 사건'(?)은 이렇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미 머리로는 그렇게 돼야 한다고 했으며, 글로도 통일되면 유럽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고 수없이 주장했음에도 내 머리에는 그냥 이론으로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실현될 수 있을 가능성 앞에 서 있으니 흥분되는 것이다.

대륙으로 간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길

그러나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거나 그것을 수단으로 먹고살았던 이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소식일 것이다. 그들은 얼마만큼 그들의 사고방식이 경직돼 있는지 알지 못한다. 반통일 세력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냉전논리와 반공 이데올로기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이다.

나는 그것이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에게서 멈추길 바랐지만, 이런 반공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재생산돼 20대 젊은이 중에서도 그릇된 역사의식에 빠져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지난 23일 '5.18망언 범국민규탄대회'가 열리는 광장의 반대편에서 봤다. 

그들의 편협한 주장들과 혐오스러운 구호는 경악한 것들이어서 글로 옮기는 것조차도 싫다. 검은 선글라스에 군복 입은 노년의 병사(?)들을 보는 것도 속이 불편한데, 거기에 20대 젊은이들이 함께 있으니... 민주화의 최대수혜자들은 그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분단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일, 이것은 어쩌면 정전협정을 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큰 틀에서 정전협정과 평화통일을 위한 초석을 놓는 회담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남북 간에도 암울한 대립의 역사를 넘어서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일들이 확장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남북 간의 철도가 연결되고 서울에서 아니, 저기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유럽까지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아이들은 서울역에서 부산역에서 유럽행 열차뿐 아니라 동남아,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환승하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 그리하여 섬나라가 아닌 대륙의 나라임을 의심치 않는 대한민국이 속히 오길 소망한다.

#2차북미회담#정전협정#평화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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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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