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는 영변 핵시설의 폐기에 합의할 수 있을까? 북의 최대 핵시설 단지인 영변 핵시설은 비핵화 협상의 주된 의제다. 영변 핵시설은 우라늄 채광을 비롯해 이를 높은 온도로 녹이는 정련, 변환, 농축, 금속화, 핵연료 제조의 과정을 거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21일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 별관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협력적 위협감소(CTR) : 기술적 과정과 공간전환'이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최근 영변 핵시설이 1차적인 비핵화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영변 핵시설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데, 사실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도 상당한 비핵화 성과로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영변 핵시설이 전체 북한 핵시설에서 50%밖에 안 된다거나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평가는 잘못됐다. 영변 핵시설 폐기가 결코 스몰딜이 아니다"라고 힘을 줬다.
그는 또 "핵무기를 만드는 전체 공정에서 핵물질을 만들고 활용하는 비중이 90% 달할 정도로 중요한 과정"이라며 "핵 물질을 만드는 핵심적 원천인 영변 핵시설이 전체 핵 공정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홍 실장의 말처럼 영변 핵시설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농축우라늄 생산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영변에는 5메가와트 원자로를 포함해 플루토늄, 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북에 영변 핵시설 외에도 우라늄을 생산하는 곳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플루토늄 제조 시설은 영변에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가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에 합의한다면, 비핵화에 큰 진전을 보는 셈이다.
홍 실장은 "플루토늄 생산은 수소폭탄의 소형화나 원자탄을 만들 때 필요한 삼중 수소 등 필수적인 요소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영변 핵시설이 폐기되면 북의 핵 시설 가치는 지속해서 감소할 수밖에 없다"라고 짚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실장 역시 "영변 핵시설은 북핵 능력과 관련한 핵심시설"이라며 "2차 핵 위기 당시 6자회담에서 영변 시설 동결 논의까지는 이뤄졌지만, 결국 검증·사찰에 실패했다. 영변 핵시설을 검증·사찰한다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능화, 시간 오래 걸리지 않아"
그렇다면 영변 핵시설 폐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얼마일까. 안진수 전 원자력통제기술원 책임연구원은 '불능화'와 '폐기'를 구분해 설명했다. 그는 "핵연료 제조시설 중 농축과 관련한 부대 시설을 해체하거나 재처리 시설을 해체하는 것은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든다"라며 "영구적 불능화는 그렇지 않다. (불능화는) 기술적으로 단기간에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하는 원심분리기의 불능화 역시 어렵지 않다고 주장했다. 안 전 연구위원은 "원심분리기는 정밀한 기계다. 한 번 자르면 다시 용접해서 못 쓴다. 그 자리에서 잘라버려도 된다. 크게 비용이 들지 않고, 방사성도 강하지 않아 방염복만 입고 가서 잘라도 큰 문제는 없다"라고 부연했다.
안 전 연구위원은 또 영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의 경우 2350만 달러(264억 원) 이상의 폐기 비용이 들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지난 1993년부터 2014년까지 22년간 연구용 재처리시설(WAK) 해체가 진행된 독일의 경우 16억 달러(약 2조 원) 가량의 해체 비용이 들었다고 분석했다.
'검증의 모순'도 있다.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어떤 한 가지 방법으로 검증을 100% 하기는 어렵다. 채광에서 핵실험까지 핵물질을 총 얼마나 사용했는지 추정하는 건 검증의 시작"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핵 개발 프로그램은 전부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 (검증의) 중간 과정에서 확신 없이 이를 드러내면, 나중에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라고 부연했다. 핵 검증이 공학적으로 100% 완벽할 수 없는데,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생기면 상호 신뢰가 무너지는 모순점이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