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재미를 맛집 순례에 맡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이웃의 하루 식비가 1만 원인지, 1만5000원인지가 궁금하다. 1주일 동안 한 푼 쓰지 않은 날이 몇 번이었는지가 초유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건조기의 신세계를 경험해 봤는지 아닌지, 혹은 새로 생긴 초밥집에 가 봤는지는 발설 금지!
돈 더 많이 쓴 사람보다, 가장 적게 쓴 사람이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모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돈 안 쓰는' 이야기를 하러 뭉친, 절약 모임의 구성원들이다.
절약 모임이란 단어부터 생소하다. 하지만 유별날 이유도 없다. 독서 모임, 재테크 모임, 영어 회화 모임과 마찬가지다. 혼자 노력 할 때보다 함께 하면 더 오래 실천할 수 있고, 더 많은 지식도 나눌 수 있기에 모였을 뿐이다.
'절약 모임'이라 이름 붙이지 않았으나, 비슷한 성격의 모임도 이미 여럿 있다. 재테크 카페를 중심으로 지역별 '부자 습관' 모임, '저축 모임' 등이 진행 중이다. 혹은 온라인으로 재테크 카페에 실천 인증글을 올리기도 한다.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들이 강의를 개설하거나, 소수의 인원만 모아 가계부 다이어트 모임을 꾸렸다.
그러나 기존 절약 모임들은 대도시 이야기였다.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 사는 내 주변에는 절약 모임을 찾을 수 없었다. 인구 9만 동해시가 서울 같은 메가 시티로 바뀌길 언제 기다리겠는가. 스스로를 구제하는 심정으로 절약 모임을 만들었다.
1. 구성원 모집
구성원을 모으려면 지인들에게 권하거나, SNS(지역 맘카페,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를 이용해 모집글을 올리면 된다.
나의 경우, 블로그를 이용했다. 작은 도시이기도 하고, 개인의 블로그라 모집이 될거라는 큰 기대를 하진 못 했다. 그런데 밤 9시에 올린 '동해 한 달 절약 모임 모집' 글에 새벽 1시까지 댓글이 달렸다. 모집 시작 4시간 채 안 되어, 4명의 절약 모임 구성원이 모였다. 한 푼 아끼며 사는 나에게 절약 모임이 절실했던 만큼, 누군가의 사정도 마찬가지었다.
2. 시간과 장소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씩, 4주를 만난다. 절약모임 1기의 경우 멤버가 운영하는 꽃집에서, 2기의 경우 카페를 이용하고 있다. 상황이 허락하면, 멤버 중 한 명의 집에서 모이기도 한다.
3. 목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식비. 이것만 고정지출로 만들어보는 게 목표다. 식비는 얼마 쓰는지 가늠도 안 되는 변동 지출의 대표주자다. 한 달 식비 예산만 알고 있어도 가계를 꾸리기가 훨씬 수월하다. 더불어 식재료를 덜 사는 만큼 마트에 가지 않으니, 식비 외 다른 지출도 줄어든다는 속셈도 있다.
4. 진행 방법
'절약에 대한 낭만적 철학과 차가운 기술'을 주제로 잡았다. 모임 시간 1시간 중 30분은 절약에 대한 철학을, 나머지 30분은 기술을 나눈다.
왜 절약하는지, 경제적 자유란 무엇인지, 생산적 취미의 경험, 그리고 흔들림 없이 덜 쓰는 삶을 이어가는 노하우가 우리 모임의 '철학 주제'다.
절약 기술은 바로 '실천'이다. 하루 식비 예산을 정한 후, 매일 식비 가계부를 썼다. 식비 가계부에는 날짜, 지출 내역, 지출액, 하루 잔액, 누적 잔액을 적었다. 누적 잔액을 흑자로 만드는 게임이라도 하듯, 우리는 돈 덜 쓰는 과제를 하루하루 해나갔다. 또 외식을 하지 않은 날 3천원, 카페에 가지 않은 날 1천원씩 자투리 적금도 하고 있다.
"외식 한 번 자유롭지 않은 일상, 무슨 재미로 살아요?"
외식 한 번 자유롭지 않은 일상. 그렇게 살면 인생이 재밌기는 하냐고 묻는다. 의아하시겠지만, 우리는 재밌다. 그저 인생의 재미를 사장님이 구워주시는 삼겹살에 맡기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세컨 차에도, 넓은 집에도, 많은 옷가지에도, 환장하게 귀여운 문구류에도 맡기지 않는다.
물론 남이 해주는 밥상을 마다할 주부가 어디 있을까. 벚꽃잎이 흔들리는만큼 쇼핑앱 속 시폰 원피스에 마음은 출렁거린다. 그러나 절약 모임을 이어가면서 깨달았다. 삶의 재미가 오직 많은 돈을 벌어야 가능하다면, 월급 오르기를 언제 기다리겠는가. 그렇다고 번 돈 이상으로 신용카드를 긁는다면 미래가 없지 않은가.
절약 모임의 한 멤버는 지금 당장 식기 세척기를 사는 것보다 뱃 속 둘째아이 산후조리원비를 카드 빚 없이 마련하는 즐거움을 안다. 또 다른 멤버는 여행 좋아하는 식구들을 위해 캐라반 살 돈을 모으는 게, 카페의 향긋한 커피 한 잔보다 달콤하다. 집을 마련하느라 받은 대출금을 방구석 머리카락 치우듯, 차츰 없애나가는 쾌감도 짜릿하다.
나의 경우, 절약으로 시간을 샀다. 5세, 3세 두 아이를 키우는 우리 부부는 '쉴 수 있는 개인 시간'을 얻기 위해 아내인 내가 1년 무급 휴직을 택했다.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된 만큼 수입은 반토막 났다. 그러나 시간을 얻었다. 맞벌이 시절에는 퇴근 후 쉴 틈 없이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쟁처럼 치렀다.
지금은 다르다. 낮 동안은 휴직자인 내가 집안 일을 '대충' 해놓고 쉰다. 집안 일을 '작정하고' 하면 끝도 없다. 대충 해야 쉴 수 있다. 안 아플 만큼만 더럽게, 행복할 만큼만 깨끗하게 사는 게 목표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은 등원한 고요한 집에서 믹스 커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첫 아이 출산 후, 4년 만에 온전히 쉬는 거다.
저녁에는 남편 차례다.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한 남편을 집에서 쉬게 한다. 물론 정말 마냥 아무 일도 안 하는 건 아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기저귀에서부터 밥 먹이는 것까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담자는 아내인 나다. 두 아이를 동시에 돌봐야 할 때 빼고는 남편에게 손 대지 말라고 부탁한다.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하지 마!"
남편이 설렐 만한 박력 있는 멋진 모습으로 소리친다. 내가 쉰 만큼 남편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돈 없이 살기 어려운 만큼, 여가 없이 살기도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 4인 가족은 나의 전담 노동 없이 쉬기 어렵다. 절약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원하지 않는 맞벌이를 이어나가야 했을 것이다.
최소한의 소비를 이어간 덕에, 한 달 100만원 정도로 변동지출(식비, 의료비, 의류비, 유류비, 여가비, 생활잡화비, 교통비, 접대비)을 쓴다. 외벌이로도 한 달 살고도 돈이 남아 저축한다. 가계부로 가족을 구했다. 절약 덕분에 워라밸을 되찾았다.
돈을 써야 대접받는 세상에서 '돈 아껴 씁시다!'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외로운 일이다. 돈 많이 쓰지 말자고 말하는 순간,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오해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 낙인 속에서 에어 프라이기를 사지 않고, 꿋꿋하게 프라이팬에 돈가스를 튀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이것은 궁상인가, 합리적 소비인가'를 검열하게 된다.
그러나 함께 하면 힘이 세다. 외로운 절약가들이 모여, 서로의 무지출 데이를 축하한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무지출 데이에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얼마나 더 소유했는지가 아닌, 건강한 목표를 위해 인내할 수 있는가로 서로를 북돋우는 모임이라 귀하다.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에서 말했듯, '우리는 서로 같은 별을 함께 바라만 보아도 힘이 나는' 사람들이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dahyun0421)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