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고국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후손들을 초청했다. 경기도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위대한 여정'을 주제로 3.1운동과 임정100주년 기념식, 학술, 문화예술 행사를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개최한다. 이에 독립운동가와 강제이주 한인동포 후손 107여명이 경기도를 찾았다.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는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모국을 떠나 세계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아가는 '한민족 이산'을 의미한다. 19세기 중반 만주로의 이주로부터 시작돼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조국을 등져야 했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오늘날 그 수가 750만 여명에 이른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인 최재형(1860~1920). 극심한 가난으로 인해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로 이주한 그는 17세 때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장사를 통해 돈을 모았다. 그는 연해주에 정착한 한인들 사이에서 러시아어가 유창하다고 알려진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러시아에 고용된 한인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한인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또 러시아 군관계 넓은 인맥과 두터운 신임으로 군납회사 및 농장을 운영해 명망이 높은 사업가였다.
러일전쟁 후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자 국민회를 조직하여 회장이 되고 이범윤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집했다. 항일의병 활동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거금을 내놓고 폐간되었던 '대동공보'를 재발행하고 한인학교를 설립했다. 1919년 독립단을 조직하고 무장투쟁을 준비하던 그는 이듬해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 때 러시아에 있는 한인의병들을 총규합하여 시가전을 벌이다가 순국했다.
한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인 하얼빈 의거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배후에서 지원한 것으로도 알려진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
경기도를 방문한 한국인 후손 가운데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손자 발렌틴 최(82)씨를 지난 12일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만났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주변 사람들 살피는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분이였습니다. "
발렌틴 최씨는 자신의 고모 올가 최가 남긴 자서전을 통해 할아버지 최재형을 더 잘 알게 됐다. 그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삶을 담은 자서전을 출간할 계획이기도 하다.
그는 고모가 남긴 책에 보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당시 할아버지가 잡히는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다"고 말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을 반대 방향으로 가게 하고 자신은 일본군을 유인해 가족들을 지켰다"고 전했다.
"그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현지 고려인들이 도움 받아"
나라를 위해 자신의 부유한 삶을 버리고 목숨까지 바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삶이 그에겐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그에게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았냐"고 질문하자 그는 씨익 웃으며 "(그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현지 고려인들이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을 다니는 혜택을 받게 됐다"며 오히려 자부심을 나타냈다.
끝으로 발렌틴 최씨는 "분단된 남과 북이 할아버지인 최재형 선생님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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