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
가족의 달이 다가오니 친구끼리 한 번 약속을 잡기도 쉽지가 않다. 다들 결혼하고 아내이자 며느리로 살아가는 터라, 아무래도 5월의 주말은 대부분 가족과 선약이 잡혀 있다.
결혼하고 찾아온 변화 중 하나는 가족 행사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결혼 전에는 바쁘면 건너뛰거나 꼭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시간이 맞는 아무 때나 가족과 함께 보내곤 했던 것이, 결혼 후에는 갑자기 특정 행사를 의무적으로 꼭 챙겨야 하는 것처럼 됐다.
주변을 보면 남편들은 결혼 전엔 신경 쓰지도 않던 행사를 꼬박꼬박 챙기려 하고, 시가 행사는 참석하면서 친정 행사를 등한시할 수 없으니 양가를 번갈아 오가다 보면 한 계절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는 부부가 많다. 물론 일 년에 몇 번 정도는 이렇게라도 평소 바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게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의무감으로 밀어붙이는 만남은 아무래도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꼭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까
한 친구의 시어머니는 결혼 초부터 그들 부부가 매주 주말 시가에 오길 원하셨다고 한다. 원래 다니던 교회가 시가 근처에 있으니 같이 예배도 하고 얼굴을 보자는 이유였다. 친구는 처음 몇 달 동안 주말마다 파주와 안산을 왕복하며 '(남편의) 가족과 함께' 휴일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 둘 다 지쳐 자연스럽게 그 패턴을 유지할 수는 없게 됐고,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친구는 자신의 생일날 부부끼리 여행을 갔는데, 시어머니는 시가에서 생일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심하셨다.
그날 이후로 친구는 착한 며느리 노릇을 완전히 포기해 버렸지만, 여전히 친구의 시어머니께서는 중요한 날은 '가족끼리'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신단다. 어버이날은 물론이고 크리스마스, 새해맞이까지 시가에서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자주 시부모님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시부모님이 그들 부부를 독립적인 가정으로 존중하느냐에 있었다.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남편과 함께 살기로 한 것뿐, 시가 식구들이 한순간에 '내' 가족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생일날 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한들, 당연히 며느리 입장에선 '내' 부모님을 만나고 싶은 것 아니겠는가? 가끔 어떤 시부모님은 며느리에게도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시는 것 같다.
결혼하면 양가 부모님을 얼마나 자주 뵈어야 할까? 우리 부부도 시가와 친정을 가능한 한 공평하게 번갈아가면서 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더더욱 양가 부모님 댁을 자주 오가기는 어렵다.
한 달에 한 번쯤 만난다고 생각하면 그리 자주도 아닌 것 같지만, 일하는 부부에게 달마다 주어지는 네 번의 주말은 짧다. 둘만의 시간도 필요하기에 그중 두 번을 부모님과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꼭 챙겨야 하는 가족 행사만 손꼽아도 양가 부모님 생신, 어버이날, 명절 등을 오가다 보면 의외로 한 해가 빠듯하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부모님을 살뜰히 챙기는 자식이 되고 싶기는 하지만, 우리 부부는 여전히 서로의 부모님을 뵙는 것이 내 부모님을 만나는 것만큼 편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남편도 같이 오는 거지?
그래도 결혼 후 시부모님과 서너 해를 함께 보내서 이제는 꽤 친근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지만, 가끔 시가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 호출당할 때면 지레 마음이 무겁다. 사교성 없는 내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름조차 모르는 어른들 앞에서 배시시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채우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분들도 나라는 사람에게 그리 깊은 관심이 있으실 것 같진 않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은 나보다 남편에게 의미가 있는 가족들이기에 이 자리에는 남편만 참석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두 사람이 결혼하면 양가 방문은 반드시 함께 다녀야 할까? 부부는 꼭 일심동체여야 할까?
게다가 결혼 초엔 부모님의 대화 상대를 해 줄 아내가 없으면 혼자서는 굳이 가족 행사를 그리 열심히 참석하지 않는 남편의 태도를 발견하고 너무 얄미운 순간도 있었다. 감정 노동은 하지 않고 효도는 하고 싶은 남편의 속내가 뻔해서 시댁에 가면 네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굳이 해야 하기도 했다.
남편에게도 얼마간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내 부모님과의 만남에 나 역시 매번 동행을 요구할 수 없어서, 하지만 그보다는 자주 엄마를 챙기고 싶어서, 나도 가끔은 혼자서 엄마를 보러 간다.
얼마 전에도 여유가 생겨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일 때문에 서울에서 살다 보니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경기도 수원 친정집까지 발걸음이 뜸해졌다. 엄마에게 주말에 시간이 괜찮은지 묻자, 역시나 엄마는 반신반의하는 투로 예상했던 질문을 던졌다.
"남편도 같이 오는 거지?"
"아니, 나 혼자 가려고 하는데."
"왜? 싸웠니?"
내가 혼자 엄마를 보러 간다고 하면 엄마는 늘 싸웠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엄마가 내 말을 믿지 않고 걱정할까 싶어 또 괜히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 부부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씩 혼자서 엄마를 보러 가고 싶다. 결혼 후 친정이 꼭 남편과 싸우고 나서 도망가듯 짐 싸 들고 찾아가야 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부모님은 뜸하더라도 꼭 부부가 사이좋게 같이 움직이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편하신 모양이다. 아빠는 내가 남편을 챙기지 않고 혼자 친정에 왔다고 화를 낸 적도 있었다. 한편으론 부모님의 마음을 알긴 하면서도, 때론 불편하고 어렵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부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명절 역시 각자의 집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명절에 오로지 '며느리'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내게는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는 쉬는 날이지만 내게는 부담스러운 가족 행사라는 사실도 우리의 불평등한 지위를 매번 재확인시켰다.
그 뒤 다시 명절이 다가왔을 때, 시어머니는 혼자 시골에 내려가겠다는 남편을 극구 만류하셨다. 혼자 올 거면 차라리 오지 말고 둘이서 쉬라는 말씀이었다.
"부부가 항상 같이 있어야지."
물론 우리는 함께 부모님을 뵈러 가는 날이 더 많지만, 언제나 함께하기에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자리일 때도 있다. 혹은 부모님을 뵙는 날들이 자식에겐 너무 적지만 배우자에겐 너무 잦은 횟수일 수도 있다. 명절이나 생일, 어버이날을 매번 한쪽 부모님과 함께 보낸다면 그 불평등이 서로에 대한 서운함으로 쌓이기도 한다.
배우자의 가족을 내 가족처럼 편하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없다면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인 걸까? 결혼이라는 하나의 경계점을 지나는 순간 무조건 서로의 가족으로 편입돼야 하는 걸까? 눈에 선명히 보이는 불평등이나 불편함을 묵묵히 감수한 채로?
결혼한 지 3년이 조금 넘은 우리에게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 채 가까워지지 못한 가족과의 서먹함을 이해하는 배우자여야 하고, 그러면서도 부모님의 사랑에 기꺼이 보답하는 좋은 자식이어야 한다. 두 가지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서 가끔 우리는 서로의 배우자이자 각자 부모님의 아들, 딸이 돼 따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가끔 각자의 부모님을 각자 만나는 것, 불평등하고 불편한 제도에 서로를 억지로 밀어 넣지 않는 것은 서로 사이가 안 좋거나 소홀해서가 아니다. 도리어 우리의 관계를 공정하고 견고히 하기 위해 우리 부부가 결정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나 역시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가능하면 싫은 것을 억지로 참거나 서로에게 강요하고 싶진 않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원칙과 사회가 요구하는 결혼 제도 사이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타협점은 대체 어디쯤에 있을까. 아직은 막연하기만 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결혼 제도가 개개인의 행복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누군가를 위해 버티고 견뎌야 할 일들이 더 많은 게 결혼이라면 우리는 점점 더 결혼을 통해 부부 당사자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다소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나는, 결혼이라는 옷이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형태가 되도록 재단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