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이 활동하던 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고 있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에는 진보 가치의 왜곡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외면이다.
대학진학률이 세계 두 번째이고, 경제 수준이 '5030클럽'에 일곱 번째로 가입할 만큼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데도 그렇다. 교육과 경제력에는 국제 상위 수준인데 의식과 행동 패턴은 여전히 후진국형이다.
한국사회(인)의 보수성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유교(주자학)를 국교화하면서 500년 사직을 유지한 조선왕조의 적폐에서 기인한다. 조선왕조는 개혁 인물들을 처단하고 심지어 개신 유학이나 양명학까지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조광조의 개혁, 율곡의 개혁안, 최제우의 동학이 수용되었다면 나라가 망하는 비극은 막았을 것이다.
수구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개혁을 거부했다. 거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반역ㆍ용공 등의 딱지를 붙여 처형한다. 힘에 부치면 외세를 끌어들여서라도 그 짓을 해왔다. 그래서 한국사에서는 개혁→진보가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하여, 사회가 정체되고 지도층이 사대화되고, 퇴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개혁의 기회를 갖지 못함으로써 국망ㆍ국치를 겪게 된 것은 민족사의 큰 비극이다.
동학ㆍ만민공동회ㆍ갑오개혁 중에서 하나만이라도 성공했다면 국치는 면했을 것이었다. 해방 후 친일파에 업힌 이승만 아닌 김구ㆍ김규식ㆍ여운형이 집권했다면 우리 현대사는 크게 달랐을 것이었다. 근현대사에서 보수(수구)의 죄업은 너무 깊고 양이 많고 질이 나쁘다.
이같은 '전통'으로 승자가 되어온 보수세력은 4ㆍ19혁명을 계기로 국민의 각성과 미약하나마 진보세력이 등장하면서 위기를 느끼게 되고, 변질을 거듭하면서 타락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보수층을 기반으로 자리 잡은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의 군부정권은 물리력으로 돌리더라도, 이명박ㆍ박근혜의 반헌법, 부패 타락을 옹호하며 자성은커녕 개혁세력을 좌파로 몰아치는 반이성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세계사는 보수의 바탕에서 진보의 가치에 의해 발전해 왔다. 프랑스혁명기의 사상가 마르퀴 드 콩도르세는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에서 역사발전을 10개의 시대로 분류한다.
① 정태적 부족사회에서 농업과 알파벳의 발견 ② 그리스인들의 재능의 개화와 쇠퇴 ③ 중세의 오랜 퇴보 ④ 창조력의 부활과 르네상스 ⑤ 인쇄술의 발명 ⑥ 과학의 종교로부터 해방 (중략) ⑨ 데카르트에서 프랑스 대혁명에 이르는 폭발적 전설의 정점 ⑩ 합리적 예언에 기초한 인류의 무한한 진보.
콩도르세는 이 책에서 두 종류의 몽매주의(Obscurantism)를 문제로 삼는다.
① 이념적 몽매주의와 ② 현실적 예속 관계로서의 몽매주의가 그것이다. ①의 경우 자신들은 막상 국가정보원의 대공 첩보예산까지 빼돌려 사복을 채우거나 군입대도 (이런저런 핑계로) 하지 않았으면서 입만 열면 국가안보, 좌파척결이다.
②의 경우 자신들의 정치적 종조(宗祖)에 해당하는 박정희가 남로당 군사책임자로서 사형선고까지 받은 사실은 묻어둔 채 다른 사람(집단)의 경우는 과장 날조하여 법망을 씌웠다. 지금도 남북화해 세력을 좌파로 매도한다. 그들에게 '좌파'란 공산주의자를 일컫는다.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은 그동안 가시밭길을 헤쳐왔다. 여운형은 암살당하고 조봉암은 사법살인되었다. 진보라기보다는 개혁주의 쪽에 가까운 김대중은 수중고혼이 될 뻔하고, 노무현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 자살의 길로 내몰려 끝내 투신했다. 그 외에 진보당 인사들과 혁신계가 당했던 수난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통합진보당(통진당)의 이석기 전 의원은 지금도 감옥에 있다.
노회찬은 이런 풍토에서 진보의 길을 택하고 줄기차게 수구세력에 돌직구를 날렸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에서는 '껌값도' 안 되는 4천만 원의 정치자금 수수를 이유로 투신의 길을 택했다.
노회찬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출세의 길이 아닌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을 취득하여 용접공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것부터가 범상한 청년이 아니었다. 평생을 진보진영에서 우리 사회가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애를 썼다.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려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2년반 여의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노희찬은 죽을 때까지 진보진영에서 '몽매주의' 세력과 싸웠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공화주의,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 여성도 노동자들도 평등한 관계에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는 뜻에서였다.
우리 사회가 정체된 수구가 아닌 진보의 가치로서 앞으로 나가고 옆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세상다운 세상을 일구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서 보수를 참칭한 수구의 민낯을 벗기고 그들이 부당하게 차지한 기득권을 내려놓게 하려는 것이 진보운동의 요체이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고매한 이론이나 정책이 아닌 '삼겹살 판갈이'에서 국민의 공감을 받을 만큼 이론가 아닌 서민 정치인이었다. 2004년 3월 20일 17대 총선 당시 KBS(한국방송)의 심야토론에 나와 정권교체를 주장하면서 한 말이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오랜 세월 수구세력이 지배해온 한국 사회에서는 지금도 '진보'라면 왠지 왼쪽을 생각하고 좌파를 연상케 한다. 수구 신문ㆍ수구 지식인들의 세뇌 탓이다. 노회찬의 진보에 대한 해석이다.
진보가 별것이던가?
구석기 시대에 돌을 깎고 갈아서 연장으로 쓰면 그것이 진보 아니었던가?
신분 계급이 엄격했던 고려중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며 계급을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했던 만적의 꿈이 바로 진보 아니었나?
많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민주화시대의 한국 정치에서도 진보와 보수는 경제문제, 즉 먹고 살아가는 사회체제의 노선문제로 서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우선시 하느냐, 다수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 개선을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일자리, 교육, 의료, 주거정책이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