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 의정활동은 날이 갈수록 속력이 붙었다.
기자들이 그의 행보를 주시하고 발언대에 서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원들도 주목하였다. 그의 대정부 질의나 법률안 제안 설명은 예리하고 논리적이면서도 살벌하지 않았다. 유머가 깃들이고 더러는 위트를 섞어 촌철살인식이어서 그만큼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등원 초부터 노동자ㆍ장애인ㆍ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금껏 살아온 길이고 방식이었다. 모름지기 정치는 '정의의 구현'이고 사회적 강자보다 약자들의 편에서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인식이었다.
노회찬은 2005년 9월 장애인 단체의 숙원이었던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역시 '장애인 권리 확대'에 대한 현실적 요구를 국회가 입법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려 한 것이었다. 여러 난관을 헤치고 2007년 3월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으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 행위가 금지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할 수 있게 되었다. (주석 9)
민주노동당은 총선 당시 무상교육ㆍ무상의료ㆍ부유세 신설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이의 실현을 위해 국회에서 노력했으나 10명의 의원으로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국회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는 세평 그대로였다.
당 내외에서 따가운 비판의 소리가 나왔으나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대부분의 의원에게 재벌은 여전히 성역이었고, 족벌신문들은 부유세 신설을 주장하면 '좌경프레임'으로 몰았다.
노회찬은 참여연대 회원 상대의 특별강연에서 '동물의 왕국'에 비유하며 부유세 도입을 주장하는 강펀치를 날렸다.
암소갈비 먹는 사람, 짜장면 먹는 사람, 굶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옆에서 굶고 있는데 암소갈비 뜯어도 됩니까? 암소갈비만 뜯는 사람들이 암소갈비 대신 불고기 먹어라, 이거에요. 그러면 그만큼의 차액으로 굶고 있는 옆의 사람에겐 라면이라도 사 먹이자는 겁니다. 부유세가 바로 이런 겁니다.
동물의 왕국에선 힘센 동물이 잡은 만큼 먹고, 힘없는 동물은 굶어 죽거나 잡아먹힙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나눠 가질 줄 알기 때문입니다.
내 옆집 사람이 굶고 있는데, 나만 배부르면 그것이 행복입니까? (주석 10)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이 한때 20%까지 올라갔다가 2005년 10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지지율의 하락현상이 나타났다. 지지자들 중에는 민주노동당이 국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빈약성은 생각하지 않고 성과만을 기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제17대 국회는 초선의원이 187명이나 되었지만, 그들 역시 다선의원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국민이나 정의 편보다 정파 의식에 갇히거나 정치 귀족 반열에 편입되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금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으나, 걸핏하면 국회의 문을 닫고 해외로 나가거나 무사안일에 빠졌다. 노회찬은 어느 날(2004년 11월 6일)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누가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라 하였는가?
국회가 추안거에 들어간 지 열흘이 되었다. 며칠 전 부산에서 체불임금 44만 원을 받지 못한 건설노동자 한 사람이 분에 못 이겨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그런 국민들에게 국회의원 일당이 하루 30만 원이라는 사실은 국가기밀로 묻어둬야 한다.
국회가 열리지 않은 지난 열흘 동안에도 국회 운영비로 하루 1억원씩 혈세 100억이 꼬박 쓰였다는 사실도 대외비로 처리되어 정한다. 장사가 안된다고, 세금 내려달라고 솥단지 떼어 들고 시위에 나선 요식업자들이 이 사실을 알면 LPG통을 들고 국회로 몰려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석 11)
노회찬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품이다. 혁명보다는 개혁주의자이고, 과격성 보다는 차분히 추진하는 성향이다. 당내에서는 온건파에 속한다. 그 대신 실력을 갖추고 질서를 통해 목표에 접근하고자 노력한다. 해서 의정활동에 최선을 기울인다.
노회찬은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 등 경제 약자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활동을 성실히 수행했다.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위한 '주택법 개정안',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억제하고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확대하는 '하도급 거래 공정화법 개정안', 경찰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고 있던 소방공무원들의 권익을 확대하기 위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등은 모두 국회를 통과했다.(주석 12)
주석
9> 박찬규, 앞의 책, 285쪽.
10> 『노회찬의 진심』, 357쪽.
11> 『노회찬의 진심』, 114쪽.
12> 박찬규, 앞의 책.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