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의 상징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아직 공간은 그대로입니다. 현재 민주인권기념관 조성을 위한 다양한 연구용역 공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맞춰 남영동 대공분실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글을 보냅니다.[편집자말] |
기억에는 '40년 법칙'이 작동한다. 40년은 성인으로서 어떤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자기 생을 돌아보는 때다. 독일의 과거청산에서 분수령이 된 역사가논쟁, '과거를 외면하면 맹목적이 된다'고 경고한 바이체커 대통령의 연설도 나치 패망 40주년인 1985년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 법칙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유독 모진 때문일까? 그나마 5․18민주화운동의 경우는 좀 나은 편이다. 가해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은 아니지만, 몇 분의 용기어린 고백이 이제 막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영동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여기를 포함해 전국 곳곳의 경찰청 산하 대공분실과 구 중앙정보부 시설에서 강제연행·구금·고문·살인치사 사건들이 무수하게 자행되었지만, 이 사건들을 명령하고 기획하고 집행했던 사람들 가운데 사죄의 발언을 한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길을 연 미국의 역사가 힐베르크(Raul Hilberg)는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의 증언들을 재구성한다고 해서 국가범죄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군이 노획한 방대한 양의 나치문서 분석에 10년의 세월을 바친 그의 역저 <유럽 유대인의 파괴>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거대한 살인의 메커니즘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경우가 다르다. 이미 많은 기록이 파기되었고, 핵심 가해자의 증언도 찾아보기 어렵다. 가해시설도 마찬가지다. 남영동 구 대공분실이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이곳에 끌려와 극한의 테러를 경험한 사람이 393명이다. 민주와 통일을 염원했다는 이유로 각처의 대공시설에서 기본권을 유린당한 분들의 수는 아직도 정확하게 가늠되지 않는다.
주변 지형 활용한 민족-민주-인권-평화 클러스터 구축해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망각의 관행이나 선택적 기억의 편향과 단절하기 위해서도 남영동 구 대공분실의 복원과 보존은 절실한 사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 6․10민주항쟁 기념사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시민사회의 오랜 노력을 의식하며 민주인권기념관을 남영동에 조성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의 문제다. 국가범죄의 현장을 국민기억의 컨테이너로 바꿀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토포그래피(topography)에 주목해야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하나의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이 일대의 역사 지형 속에서 조망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도보 1.7㎞ 거리에 백범기념관과 효창공원이 있고, 900m 떨어진 청파동에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있다.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효창공원은 2024년까지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남영동 배후의 이 지대를 묶는 키워드는 민족이다. 또 바로 앞 한강대로 건너편에는 전쟁기념관과 용산 미군기지가 있다. 미8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가 있는 미군기지는 2023년에 우리 국민에게 반환될 예정이다. 전쟁기념관을 평화박물관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곧 반환될 80만 평의 본체 부지는 특별법에 따라 이미 생태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거대한 생태의 구릉에 평화와 통일의 색을 입히자는 제안도 있다.
이 계획과 구상들을 하나로 잇는다면, 서울의 허파지대가 확 바뀌게 된다. 민족-민주-인권-생태-평화의 메가 클러스터가 탄생하는 것이다. 효창동-청파동-남영동-용산공원-남산-장충단을 잇는 이 역사-평화의 가로축이 북악산-종묘-남산-용산공원-한강-동작동 현충원으로 이어지는 생태-역사의 세로축과 만나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이 거대한 십자 축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와 인권의 기억 창출로 제 기능을 다할 것이다.
세상에 없던 기념관을 만들자
다음으로 우리나라 기념관을 옥죄어왔던 '선례의 덫'에서 탈출해야 한다. 토목과 건축에는 막대한 돈을 할애하면서도 연간 예산 배분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정부와 예산당국, 경상비 위주 관행에 따른 사업비와 학예 인력의 태부족, 패널과 쇼윈도 중심의 교과서적 전시가 덫의 주요 내용이다.
특징없는 기념관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해외의 성공사례들을 주목할 선례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러나 '덫'으로부터의 탈출이 기념관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세상에 없던 기념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과감한 사고가 필요하다.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
첫째, 청각에 초점을 두었으면 좋겠다. 육중한 철문, 철제 손잡이에 의존해서 5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원형계단은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체험형 기념관의 자산이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촉각과 후각은 물론 시각마저도 청각에 종속된다.
영국인들에게 일차대전은, 그리고 독일인들에게 이차대전은 방공호의 기억이었다. 사이렌 소리가 그 중심에 있다. 그래서 영국의 제국전쟁박물관 중심에는 방공호 체험장이 있다. 남영동 5층의 취조실들 가운데 몇 개는 수돗물 떨어지는 소리, 자신의 심장 소리마저 크게 들을 수 있는 텅 빈 공간으로 남겨두면 어떨까?
삽디(Moshe Safdie)가 설계한 예루살렘의 야드바셈 지하 어린이기념관처럼,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짧은 인적사항들을 그 빈 취조실에서 듣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현재의 흑벽돌 7층 건물은 무엇으로 채워 넣기보다는 적절하게 비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공명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둘째, 아카이브 자산을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제까지 90만 점 이상의 자료를 수집해왔다. 이 가운데 교육적 가치가 높은 사진과 영상, 편지와 엽서, 일기와 메모, 조서와 재판기록을 선별해서 학습에 활용하면 어떨까?
개가식 도서관처럼 일부 아카이브 자료들을 아예 전시공간에 편입하면, 전시-연구-교육의 밀도 높은 체험형 학습이 가능할 것이다. 남영동의 아우라는 건물과 경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진정성을 갖춘 자료를 손으로 만질 때 학생들은 탐정이자 역사가로서 기이했던 과거와 대면한다. 이 예외적 체험을 통해 학생들은 은밀히 자행된 국가범죄의 비판적 증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와 같은 증인의 재생산 없이는 그 어떤 기억의 세대간 전승도 불가능하다.
미래세대에게 전망을 제시하는 '교육' 공간으로
기념의 목표가 생동하는 기억의 창출이라면, 모든 기념행위의 초점은 젊은 세대에 맞춰야 한다. 아스만(Aleida Assmann)은 문화적 기억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중요한 사건기억도 이내 소멸하고 만다고 강조했다. 사건의 현장, 건물, 경관은 기억의 저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시의적절한 활성화 과정이 없다면, 그 어떤 저장기억도 시대의 기억으로 올라설 수 없다.
민주화운동 기억의 퇴조 징후는 이미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조부모 세대의 한국전쟁 체험기억에 우리 민주화운동 세대가 반발했던 것과 유사하게, 이제 부모가 된 우리세대의 민주와 독재 체험기억은 자녀세대로부터 종종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사자 중심의 회고적 기억은 젊은 세대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끝없이 번역되어야 한다. 5․18이 직면한 이 딜레마를 남영동도 피해갈 수 없다. 현재적 연관과 미래적 전망의 제시가 없다면, 그 어떤 기념사업도 무망하다. 연관과 전망을 제시하는 것은 교육이다.
남영동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7층 건물의 복원과 보존에는 아무런 이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원본적 성격이, 아우라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또 그곳을 찾아올 마음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미 그곳에 저장된 기억에 귀 기울일 마음이 있다. 그러나 기념에서 아우라의 힘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경관의 힘을 맹신해서도 안 된다. 남영동은 종교적 성지나 역사적 단절을 느끼게 하는 폐사지나 궁궐터가 아니다.
체험세대의 회고적 기억과 학습세대의 전망적 기억 간의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나는 곳이 남영동 테니스장이다. 부지 전체의 원형적 유지를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입장에서 테니스장은 구조화된 악의 일상성과 평범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로 간주된다. 바로 그곳에서 고문기술자들이 체력을 단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고문이 자행되던 5층 취조실과 햇볕 내리쬐는 야외 테니스장, 취조실에서 고문 기술자들의 얼굴에 흐르는 땀과 야외에서 운동하며 흘리는 땀의 교차적 대조는 한눈에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영상과 이미지 장르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퇴락한 테니스장에 서서, 혹은 과거의 그 순간처럼 사용할 수 있게 복원된 테니스장에 서서 고문이 자행되던 흑색 7층 건물을 바라보는 것을 중시하는 태도는 회고적 기억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 과거 시대와 다른 문제로 고민하고 그 역사적 시대와 다른 꿈을 꾸는 비체험 세대에게도 그와 같은 원형보존의 방법이 효과적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비체험 세대에게는 영화 <1987> 속 그 장면에 해설사의 이야기가 더해진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원형 복원과 보존은 대공분실 건물과 그 주변이면 충분하다. 이 7층 건물은 그 자체로서 국가폭력으로 점철된 기괴한 과거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 거대한 기억의 컨테이너 속에서 젊은이들은 최근 과거사의 기이한 느낌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많은 학생들의 보고가 그렇다. 여기가 인권기념관으로서 7층 건물의 역할이다. 여기서 방문객이 얻게 될 불편한 느낌은 아카이브 자료에 기반한 충실한 전시, 현재적 연관에 초점을 둔 활동교육, 고문 피해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설명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악의 일상성과 구조성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악의 집행인들을 퇴장시킨 민주화운동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그려볼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남영동 부지 한 켠에 조성되면 좋을 민주기념관의 역할이다.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옛 건물에서 민주주의적 미래를 전망하는 새 건물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 건축물에서 유리창을 통해 흑색의 옛 건축물을 바라보며 역사의 단절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과거는 그렇게 해서 미래와 이어지고, 체험세대의 회고적 기억은 미래세대의 전망적 기억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