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 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
결혼 4년 차. 첫 신혼집 계약 2년 만료 후 이사했기 때문에 지금 사는 곳은 두 번째 신혼집이다. 가만히 집안을 둘러보면 첫 신혼집에서 사용하다가 그대로 가지고 온 것들도 있고, 이사를 하면서 2년 만에 버리고 새로 산 것들도 있다. 결혼할 때 혼수로 사서 지금까지 쭉 사용하고 있는 건 주로 비싸고 몸집이 커서 쉽게 버릴 수 없는 가구나 가전들인데, 문제는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혼수는 비싸고 좋은 걸 사야 하나
예전에 인터넷 쇼핑을 처음 시작할 즈음에만 해도 실패율이 아주 높았다. 사진에서는 분명 괜찮은 것 같아서 구매했는데 실제로 받아보면 별로일 때도 있고, 옷은 괜찮은데 막상 입어보니 나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인 경우도 있었다. 여러 차례 쇼핑을 하다 보니 이제 상세 페이지에서 옷 재질이나 스타일을 보면 실제 퀄리티가 괜찮을지 어떨지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결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의 쇼핑은 잘 어울리는 옷이나 더 맛있는 떡볶이를 고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결혼 준비는 크게 '결혼식'이라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과, 실질적인 거주를 위한 '신혼집' 준비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신혼집 준비는 '집'을 마련하는 것뿐 아니라 온갖 살림을 새로 구비해야 하니 인생 최대 규모의 쇼핑이라고 봐야 했다. 게다가 다들 '일단 사면 오래 쓰는 거니까 이왕이면 비싸더라도 좋은 걸 사라'고 했다.
같은 신혼부부들끼리 동네에서나 온라인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해 유용한 가전 정보를 공유하고 같은 제품을 구매하는 일도 흔했다. 신혼집에 건조기는 필수라던데, 음식물 처리기가 그렇게 유용하다던데… 범람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가전이 꼭 필요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문제는 신혼집에 필요한 물건은 거의 다 내가 처음 쇼핑해 보는 항목들이라는 것이었다. 냉장고, 침대, 옷장 세트 등 신혼집을 채워야 하는 주된 가구들은 크고 무겁고 비쌌는데, 내게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알 길이 없었다.
결국 살림을 해본 엄마의 조언을 얻거나, 매장에서 '요즘 잘 팔리는 제품'을 추천받는 정도였다. 엄마는 '냉장고는 무조건 커야 하고 세탁기는 통돌이를 써야 한다'고 했고, 매장에서는 '이 에어컨을 사시면 5만 원짜리 상품권을 드리겠다'고 했다.
물론 신혼부부 중에서도 이미 살림에 능통하거나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 경우가 있겠지만, 우리 부부는 대부분의 가전 가구를 구매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첫 신혼집을 꾸린 뒤 2년 후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돌아본 결과,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데 구매했거나 내 취향이 아닌데 신혼부부에게 추천한다고 해서 구매한 것들도 있었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필요하겠지'라는 막연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과 아닌 것
결혼 후 실제로 살아 보니 지금 우리 집에서 가장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물건은 가장 비싸고 덩치가 큰 양문형 냉장고다. 엄마가 결혼 선물로 사준 것이다. 그땐 나도 신혼집에는 어련히 이렇게 큰 냉장고가 있어야 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맞벌이 신혼부부인 우리는 냉장고를 절반도 채우지 않고 사용했고, 어떤 시기엔 반의반도 활용하지 않을 때도 있다.
왠지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샀던 화장대는 드라이기 거치대 정도로 활용하다가 결국 이사하면서 버렸고, 선물 받았던 스테인리스 냄비 세트는 길들이기 어려워서 지금까지 싱크대 수납장에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결국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실질적으로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할 수 없거나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방치된 셈이다.
오히려 잘 샀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한 제품들이다. 당시 소파나 식탁, 거실 테이블, 책장 등은 자취방에서 혼자 쓰던 걸 가져오거나 인터넷에서 비싸도 10만 원이 넘지 않는 저렴한 제품으로 구매했었다. 결혼 후 2년이 지나니 소파는 고양이 발톱에 다 긁혔고 테이블은 금이 갔고 책장은 무너졌다. 나는 그것들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사하면서 그동안 종종 눈여겨 봐두었던 큼직한 가구들을 다시 샀다. 고양이가 캣타워처럼 쓸 수 있는 커다란 책장이나,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내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 사용하는 원목 테이블 같은 것들이다.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내가 유용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잘 산' 리스트로 꼽을 수 있다.
결혼 준비, 부담보다 즐거움이었으면
결혼은 '평생에 단 한 번'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남들이 하는 건 왠지 나도 빠뜨리면 아쉬울 것 같고, 로망에 걸맞은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첫 시작을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주변에서도 결혼 준비를 한다고 하면 '혼수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며 나답지 않은 구매를 부추긴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추천받은 제품보다는 개인의 필요나 취향에 따라 구매한 게 만족스럽기 마련이다. 사실 결혼 초에는 나 스스로도 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나 취향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나는 내가 잡동사니를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인 줄 알고 각종 소품을 사는 것에 몰두하기도 했었는데, 살다 보니 청소나 정리정돈에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오히려 최대한 물건을 줄이는 것이 산뜻했다.
많은 부부들이 결혼 준비를 스트레스로 느끼고, 그 과정을 즐기기보다 식이 끝나면 '드디어 끝'이라며 홀가분해 하곤 하는 것 같다. 겨우 두 사람이 결혼식이라는 행사 준비부터 새 살림 준비까지 전부 다 해내는 것이니, 그 수많은 선택의 향연 속에서 지치는 것은 당연하리라.
하지만 그 시간이 괴로운 과정으로 남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결혼 준비가 힘든 이유는 각종 정보 검색과 숱한 선택 과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험해본 적 없는 낯선 일들을 모두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결혼이 일생일대의 커다란 이벤트이긴 하지만, 결혼 전 몇 달 동안의 '결혼 준비'를 통해 '신혼집에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까지 떠밀리듯 결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의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굳이 비싸고 좋은 것을 구비하는 것보다, 살면서 시간을 들여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알아가는 것도 어찌 보면 결혼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일환 아닐까.
요즘엔 실제로 부부의 취향이나 개성에 따라 신혼집 인테리어도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거실에는 꼭 TV와 소파가 있어야 한다든가, 신혼집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 사이즈의 가전이 있어야 한다든가 하는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나만의 집을 꾸미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 준비' 속에서 모두가 일괄적인 단계를 밟아 나갈 필요는 없을 테니, 조금은 느긋하더라도 차근차근 '우리다움'을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