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 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
엄마와 아빠가 모처럼 주말에 쉬는 날이 겹쳤다며 가족 휴가를 가자고 했다. 우리 가족은 어릴 때부터 항상 한여름 성수기 한복판에 휴가를 가곤 했다. 어딜 가든 너무 비싸니까 숙박까지 하지는 못하고, 아침 일찍 출발해 당일치기로 돌아보고 집에 오는 게 우리 가족 휴가의 패턴이었다.
그러다 나와 동생이 연이어 결혼을 하면서 몇 해 동안은 이렇다 하게 휴가를 챙기지 못했다. 올해는 모처럼 시간이 맞아 온 가족이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결혼했으니 부부가 함께 가면 좋겠지만, 남편이 이직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첫 주말은 집에서 쉬고 싶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남편과 얘기해본 뒤 이번 가족 휴가는 나 혼자만 참여하겠다고 부모님께 알렸다.
물론 부모님도 아쉬워하시고 나도 남편에게 사위로서 기대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강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위든 며느리든, 우리가 결혼했다고 해서 서로의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이 친자식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동생도 결혼한 아내를 두고 혼자 가족 휴가에 참여했다. 부모님은 사위, 며느리도 이제 가족인데 따로 다녀도 되겠냐고 물었지만, 우리가 결혼했다고 해서 가족 모임에 늘 '세트'로 함께 참여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부모님이 알아주셨으면 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부모님과 남동생, 그리고 나까지 네 식구가 모여 함께 보낸 하루는 충분히 좋았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결혼한 자식들과 부모님의 조합이 어색한 그림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30년을 넘게 함께한 가장 근원적인 가족 구성이었다.
결혼하면 시가 사람? 당연하진 않습니다
나도 물론 시부모님과 휴가를 간 적이 있고, 결혼을 통해 만난 남편의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나름대로 즐거웠다. 하지만 나는 그 가족 내에서 유일하게 혈연이 통하지 않은 관계이고, 어릴 때부터 쭉 함께 살아온 식구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함께하길 택했지만, 만약 그것이 내가 며느리이기 때문에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아마 일정 부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 같다.
실제로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은 물론이고 가족 휴가조차 며느리에게는 의무로 강요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 후 며느리가 된 친구들도 시가 식구들과 휴가를 가는 일에 부담스러운 심정을 토로하곤 했다. 그런 휴가는 진정한 휴식이라기보다, 며느리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효도 미션'인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가 편안하게 쉬려면 누군가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데, 많은 며느리들이 그게 바로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다른 친구 한 명은 얼마 전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아들이 출장 중이니 며느리라도 혼자 와서 함께 휴가를 보내자고 하셨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도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으시는 듯 아무 때나 친구를 소환하시곤 한다. 처음에는 거절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던 친구도 지금은 일이 있어 안 된다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여자는 결혼하면 남자 집안의 귀신이 되는 것'이라는, 요즘 시대에는 듣기 어려운 말씀을 하신 적도 있었다. 물론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 며느리는 당연히 친정보다 시가 행사를 우선해 남편의 부모님을 챙겨야 했다. 여전히 명절 문화가 그러하듯이. 하지만 정말 결혼하면 여자는 자동으로 시가에 소속돼야 하는 것일까? 남자든 여자든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본래의 가족을 우선순위에 둘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혼하며 일부 개편되는 가족 구성을 즉시 받아들이고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 과정에서 나의 원래 가족보다 배우자의 부모님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규칙은 더욱 기묘하다. 우리가 서로의 부모님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고마운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 되면 불편한 것처럼, 휴가라는 명목이라 해도 배우자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디까지가 나의 가족일까
어릴 때 학교에서 가족 그림 그리기 같은 걸 숙제로 내주면 망설이지 않고 아빠와 엄마, 남동생까지 우리 네 가족을 그렸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가족의 경계가 참 애매하기도 하고, 그들을 어디까지 내 울타리 안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남편의 가족은 어디까지가 내 가족일까? 그의 여동생의 남편, 그의 아버지의 동생과 그분의 아내까지, 혈연이나 결혼으로 이어진 이들은 모두 한 가족인 것일까?
그런 공동체적인 의식을 갖는 것이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우리가 관계를 맺을 때 중요한 것은 결코 촌수가 아니다. 내가 명절에 그의 친척들을 모두 만나는 것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들이 남편의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내게 너무 낯선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설명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결혼을 하면 상대방의 가족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들을 위해 노력하고, 인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부모님 역시 당신의 삶보다 자식들의 끼니와 미래를 더욱 걱정한다. 부모라는 이유로 커다란 희생의 가치가 별것 아닌 것처럼 당연시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가족을 서로 행복하게 만들기보다, 모두가 불편과 희생을 감수해 애써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가족은 가장 안전한 나의 울타리이자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내 편이지만, 그렇다고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내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행복과 각자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한편으로는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배우자의 가족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시가 모임에 굳이 참석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면, '당신도 시어머니가 될 것이고, 남자 형제나 아들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게 될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에게는 부모님이 꿈꾸는 그림이 있으리라는 것을, 남동생 부부에게는 그들이 결정한 결혼의 규칙이 있으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 안에서 나는 부모님의 착실한 딸이 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우리 부부만의 규칙을 우선시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며느리나 사위라는 새로운 지위는 우리를 자신답지 못하게, 때로는 무리하게 만들 때가 많았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디선가 본 역할을 흉내 내기에 바쁘기도 했다. 우리가 선택한 결혼이지만, 우리가 원할 땐 결혼이 만들어낸 어색한 가족 역할에서 벗어날 수도 있어야 오히려 자유로운 마음으로 서로의 가족을 아낄 수도 있지 않을까?
어른들은 '결혼하면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것'이라지만, 굳이 불편한 삶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나는 결혼의 모든 의무를 덜어내야 우리의 결혼이, 또 진정한 가족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