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아이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강하니까, 엄마는 그래야 하니까. 다들 애 낳고 키우며 살아가니까.
하지만 막상 엄마가 돼보니 나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이 작은 아이가 대체 왜 이리 우는 건지, 대체 왜 잠을 안 자는 건지, 매일 매순간 나의 무능을 확인해야 했다.
책에서 해답을 얻어보려 해도 육아책의 주어는 온통 아이였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것을 끝없이 나열했다. 아이가 조금만 정상 범주에서 어긋나도 엄마 탓, 엄마가 돼서 그러면 안 되지, 애 잘못되면 책임질 거야?… 강요와 겁주기가 난무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인데, 서툴고 모르는 것투성이인데. 숨이 막혔다. 책을 덮고 SNS를 열면 좋은 엄마, 완벽한 엄마(로 보이는 이들)만 가득했다. 나만 비정상 같았다.
나만 애 키우는 거 힘든 거 아니지?
주변에 도움받을 가족도, 수시로 수다 떨 조리원 동기도 없었지만 내게는 다행히 안식처가 있었다. 같은 시기(2015~2016년) 출산한 회사 동료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휴직을 함께 보냈다. 재직중이던(현재 나와 최인성 기자는 퇴사 후 이직했다) 언론사 이름을 따서 '오마이베이비'(줄여서 오마베)라고 이름 붙인 모임에는 무언의 원칙이 있었다. 비난하지 말 것. 아이보다 엄마를 먼저 생각할 것.
"자연분만? 집착하지 마. 어차피 엄마 마음대로 안 돼. 모유수유? 젖 안 나오는데 굳이 애쓰지 마. 수면교육? 엄마가 마음 편한 게 제일 중요하지. 어린이집? 너무 죄책감 갖지 마."
"나만 애 키우는 거 힘든 거 아니지? 나도 힘들어. 나도나도. 다들 그래."
누구누구 엄마 이전에 내 이름으로 먼저 관계를 맺은 동료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위안이었다.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라서 불행한 건 나뿐만이 아니구나, 엄마됨은 누구에게나 혼란스러운 일이구나. 오마베에서는 늘 안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엄마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해
육아휴직 복귀 후, 우리는 사내에 '육페(육아페미니즘)'라는 이름의 사내동아리를 만들었다. 2주에 한 번, 점심시간에 함께 본 책, 영화를 나누며 엄마를 둘러싼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고 토론했다.
그러면서 확신하게 됐다. 엄마됨이 힘든 건 유별나거나 나약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에게 '완벽한 엄마'라는 모성상을 강요하는 사회구조 때문이라는 것. 여성들이 비출산을 택하는 건 어쩌면 너무나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
세상은 엄마에게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다.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오직 아이만을 위해 살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만큼이나 나 자신도 소중했다.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엄마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 콘텐츠를 통해서.
기자, 디자이너 출신 네 명의 엄마(홍현진, 최인성, 이주영, 봉주영)는 '마더티브'라는 온라인 매거진을 만들었다. 마더티브는 'Mother+Narrative'의 합성어로, 엄마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고, 엄마도 돌봄이 필요하다. 우리는 엄마들에게 공감과 위로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는 콘텐츠를 고민했다.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푸른향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 책은 임신, 출산, 육아를 전지적 엄마시점에서 재구성한다. 태교, 자연분만, 모유수유, 조리원, 친정엄마, 어린이집, 남편과의 반반육아, 커리어, 둘째... 임신, 출산, 육아 각 시기에서 엄마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고민과 갈등에 대해 키워드별로 현실적인 조언과 제안을 건넨다. 아이발달백과가 아니라 엄마발달백과다.
뒤에 올 엄마들에게
지난해 여름부터 1년 가까이 마더티브 브런치에 연재한 글을 토대로 책을 엮으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세 가지였다.
첫 번째,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말하기.
지하철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왜 모유수유 안 하냐고 혼나 본 적 있는가. 나는 있다. 엄마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다는 걸 엄마가 되고서야 알았다. 무분별한 비난은 덤이다.
적어도 우리는 엄마들에게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짐을 얹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처음은 힘들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위안을 주고 싶었다.
대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뺀 시간에 엄마인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제안했다. 책 중간중간 엄마의 영혼을 풍요롭게 해줄 책과 영화를 소개한 것도 그 때문이다. '태교 말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한 임산부는 용기를 내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다녀왔다고 했다.
두 번째,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
엄마는 모두 다르고 아이도 다 다르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것이 단 하나의 정답'이라는 확신에 찬 육아정보가 흘러 넘친다.
이 육아법만 실천하면 천국이 열릴 거라 현혹하고, 이 육아템만 사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소비를 조장한다. 엄마의 불안감을 파고드는 마케팅이다.
출산 몇 년이 지나 '출산용품 다시보기'를 작성하면서 우리는 몇 번이고 탄식했다. '아 우리가 정말 호갱이었구나.'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적의 육아법이나 육아템 같은 건 세상에 없었다.
우리는 엄마 네 명의 각기 다른 사례를 통해서 엄마가 된다는 경험은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의 임신, 출산, 육아 경험을 참고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며 자기에게 맞는 방식을 주체적으로 찾아가면 되는 거라고.
세 번째, 질문하고 싶었다.
우리는 육아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조금 먼저 엄마가 된 사람들이다. 엄마가 된 지 3~4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육아에 허덕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장대잔치를 벌인다(그새 한 명은 둘째도 낳았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밥과 잠을 줄이며 기획회의를 하고 콘텐츠를 만들었다. 어린이집 방학이나 전염병이 돌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험을 치열하게 기록한 건 질문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비혼-비출산이 늘어나는 사회. 어쩌다 엄마가 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사회가 강요하는 정답이 아니라 더 나은, 더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고 싶었다. 네 명의 엄마는 여전히 그 해답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고민이 뒤에 올 엄마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마더티브 브런치에도 올립니다.